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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일상 -19.3.6.수

불투명한 일상 -신성-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것들의 거대한 것들을 향한 반란 작아서 잊혀졌던 그들의 거대한 등장에 빡빡한 내 일상은 더욱 비좁다 보이지 않아서 무시했던 투명함들이 불투명한 액체속에 나를 담그며 거대한 수압속으로 나를 침몰시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들이닥칠 죽음을 묵상한다 가늘고 길게 죽을 것이냐 짧고 굵게 죽을 것이냐 놓여진 선택지를 이리저리 쳐다본다 잠잠히 늙어죽는 건 평안이 아니구나 사력을 다해 달리다 헐레벌떡 죽어야겠구나 저멀리 놓여진 죽음을 빨리 되감아본다 하늘엔 먼지가 덮히고 불투명한 일상이 내 인생을 가린다 나는 숨이 멎는 순간 그 죽음을 꺼내본다 짧고 굵게 짜릿하게 살다 죽는것이다 간만의 굳게 결단에 힘을 주어 마침표를 찍는다 다시 나의 하늘엔 먼지가 덮히고 나는 콜록대..

지나고 보면 -19.3.5.화

지나고 보면 -신성-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 막막했던거 걱정했던거 어떻게든 지나서 일상이 되더라 지나고 보면 아무일도 아니더라 근데 지나봐야 알겠더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좀더 웃기로 했어 좀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 지나고 보면 아무일도 아니니까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일이니까 미리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로 했어 지나고 나서 또 속았네 할까봐 미리 웃음을 머금기로 했어 지나는 순간 바로 웃을 수 있게끔 저멀리 놓인 웃음을 미리 좀 주욱 당겨쓰기로 했어 혹시 웃음 빚이 늘었으면 더 크게 웃어댈려고 혹시 내가 속았으면 더 미친듯이 웃어댈려고 *경찰과 안산 출장도 잘 마치고 인사발령도 무난히 나서 걱정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절정을 지나며 -19.3.4.월

절정을 지나며 -신성- 세상에 모든 것을 먹고 마시거라 단, 동산 중앙의 사과만 먹지말거라 사과를 깨무는 순간 깨져버린 금기 축복은 받되 누리지 못하는 괴리의 저주가 내린다 마음껏 먹되 넘기지는 마라 눕기는 눕되 잠은 자지 마라 사랑은 하되 관계는 마라 자위는 하되 사정은 마라 솟구치는 마그마를 주워담을 수 없어 분출해야했던 광기의 화산처럼 자극의 짜릿함은 결국 종말을 부른다 꼭 가야만하는 다음 정차역처럼 냅다 달리는 욕망 내 것이기에 당연히 내가 멈출 수 있는 것인양 시작의 도화선을 너무 쉽게 붙여버렸다 절정의 피스톤을 멈출 자가 있는가 더 빨라지는 절정의 절벽에서 나는 추락하고 낙하하며 환희의 비명을 지르며 웃어댄다 점점 다가오는 절정의 순간이여 근질거리는 오감을 막고 저기 앞까지 다가온 혓바닥이여 ..

세뇌의 스킬 -19.3.3.일

세뇌의 스킬 -신성- 먹이감을 찾아라 착하고 부지런한, 쓸만한 자를 찾아라 성실한 자는 세뇌도 후에도 성실할 것이다 그런 자중에 자만한, 방심한 자를 찾아라 친해져라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게 일상을 공유하라 운동, 악기, 공부, 그런 평범한게 무난하다 친밀함은 어떤 불신도 깨뜨릴 비장의 무기다 비밀을 유지하라 적에게 먹이감을 노리는 걸 들켜선 안된다 친분과 동정으로 비밀스런 협조를 구하라 선량한 먹이감은 덪으로 홀로 들어갈 것이다 조금씩 빠뜨려라 경전을 조각내 원하는 논리를 만들어라 완전한 전체의 부분이 오류일꺼란 생각은 못할 것이다 비유와 일반화는 좋은 세뇌법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게, 빨간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원하는 결론을 향해 하나씩 시인시키며 이끌어라 틀에 가두어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솔직한 연기자 -19.3.2.토

솔직한 연기자 -신성- 나는 나로 살고 팠는데 내가 원하는대로 살기엔 이미 걸렀네 그건 철이 들때 알아버린 사실 내가 원하는대로 못산다면 남이 원하는대로 살아주고자 했는데 한정된 자원에 그것도 쉽지 않네 결국 늘어가는 건 연기력 뿐이야 사랑해 너무 좋아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 난 관대하니까 다 받아줄께 감정을 숨기는 연기부터 날 바꾸는 연기까지 자연스러웠지 연기가 끝나고 샤워를 할때면 화장이 지워진 내가 거울에 보이더라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은 나체의 맨모습이 유리에 비치더라 난 얼만큼 날 포기해야할까 너에게 깍이고 세상에 깍여서 동글동글 동글해진 나 언젠가 너무 닳아서 조그만 나만 남진 않을까 걱정이 돼 늘어가는 연기력에 액션씬도 연애씬도 무난히 소화하지만 언제나 일상과 만남이란 대본이 부담스런 난 나에..

스케쥴 서퍼 -19.3.1.금

스케쥴 서퍼 -신성- 어릴땐 먹고 자고 놀고 단순한 일정 아니 일정이 없었지 학생이 되어서 시간표를 짜고 일정에 끼워 맞추는 법을 배웠지 직장을 다니면서는 일정을 쪼개고 쪼개어도 매일 늘어나는 일정을 쳐내기 바쁘다 일정이란게 쉽게 노크를 하고 들어와선 이제 끝났으니까 끝내고파도 붙박이처럼 붙어서 날 조정하고 있다 일정은 일의 파도가 되어 끊임없이 밀려오고 난 평소 유능한 서퍼처럼 익숙하게 넘고 넘어간다 해변에 다다를 때도 됐는데 수평선으로 밀려가는 느낌 내가 쓰러지길 바라는듯 쉬지않고 몰아친다 누가 내 일정을 지워줄 것인가 빠지지 않으려 균형잡기 다급한 날 대신해 밀려오는 프로세스들을 죽여달라 부탁한다 잠잔한 호수로 날 데려가달라 애원한다 -죽여야할 프로세스 목록- [기상], 스트레칭, 정리, 아침운동,..

계획대로 깜짝 -19.2.28.목

계획대로 깜짝 -신성- 기분대로 네가 따라 오지 않아 커피처럼 쪼르륵 반쯤 네게 부어주고 싶은 심정 계획대로 네가 따라 오지 않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까 서로 아는 만큼만 끄덕이는 한계 이기분 저기분, 내맘 니맘, 이사람 저사람 널린 돌발변수들은 미처 몰랐던 신비한 상자 갑자기 열려서 당황스러워 울다 웃다 기겁하고 순간인줄만 알았던 오늘은 참 넓고 길고 휘황찬란 했어 내일도 계획대로 안 되겠지 한순간 모든게 와르르 끝나도 이상하지 않게 야심찬 각오를 단단히 묶어보지만 한 우주의 접접에서 열려버린 내 눈동자는 또 휘둥그레 커지겠지 *북미정상회담도 결렬되고 난다던 인사발령도 안나고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기엔 변수들이 너무 산재해 있다​ ​

둘이 눕다 -19.2.27.수

둘이 눕다 -신성- 하루종일 옥신각신 하던 둘이가 오늘도 한 침대에 돌아와 누웠다 다시는 안볼것처럼 돌아선지 몇시간인데 화해도 말도 없이 등을 맞대고 잠이 든다 파기할 수 없는 서로를 향해 분노하고 격분하고 저주하다가 다시금 한 침대에 누워 한 잠을 잔다 포개어진 둘은 하나가 된다 잠든 그림자를 쳐다보노라 그놈도 이제 주름이 깊게 패였다 더 사랑해 줄껄 그랬나 자다깨 잠든 몸을 쳐다보노라 이놈도 이제 까무잡잡해졌다 까만 머리결을 스다듬다 이내 잠이 든다 몸부림과 잠꼬대에 서로가 뒤엉켜도 의식하지 않는 서로는 한없이 따뜻하다 새 아침이 밝았다 기상의 진동소리에 하나는 둘이 되고 갈 바 목적지를 놓고 한바탕 싸우고선 서로의 갈 길로 떠나버렸다 긴장되는 하루의 시작 오늘밤은 침대를 데펴놔야겠다 *공과 사, 절..

전야(前夜) -19.2.26.화

전야(前夜) -신성- 곧 비밀이 열린다 부푼 꿈도 푸른 계획도 일체의 발설은 허락되지 않는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내일은 입을 열지 않는다 옛따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라 그 흔한 동냥도 오늘에게 던져주지 않는다 내일이 옹알이할 때를 기다리는 밤 비밀이 얼레리 꼴레리할 때를 야리는 밤 웃을지 울을지 망설였다네 시퍼런 확률의 날이 아른거리는 밤 잠들어라 단잠을 자거라 오늘이 죽어야 내일이 산다매 상황에 울고 웃는 건 초보지 않니? 상황이 움직이는 건 하수지 않니? 좌던 우던 자정이 열리면 뛰쳐들어가자 꿈꾸던 내일이든 참담한 오늘이든 뛰쳐들어가자 우선 살고 봐야지 전야(前夜) 깜깜할수록 별이 반짝인다던 먹구름이 뒤덮여도 별이 보였다던 밤이야 매일 알몸으로 코골고 이를 갈아대던 그 흔한 밤이야 새벽이 와야 세상이 ..

가공자 -19.2.25.월

가공자 -신성- 이쁘게 그림을 그려놓으면 그는 덧칠을 한 후 자기 이름을 넣었어요 제게 말하지도 않고 말이죠 화가 나서 한마디 하려다 말았어요 다음에 자기 그림에다 똑같이 복수해줄까 하다 똑같은 사람같아 치사해서 참았어요 자신은 처세술에 능하다고 생각하겠지? 일도 잘 하고 홍보도 잘 한다 착각하겠지? 이젠 그렇게 그냥 놔둘래요 더이상 제 입을 더럽히긴 싫거든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건 제게 넘 피곤한 일인거 같아요 내 감정을 그에게 쏟기엔 시간이 아깝네요 화내고 욱해도 그는 바뀌지 않을테니까요 내일은 그냥 웃으며 말할래요 잘 마무리해줘서 고마워요 빠듯한 제 일을 도와줘서 고마워요 바빴는데 덕분에 잘 처리됐네요 그냥 웃으며 지나갈래요 어려운 내 마음도 가벼이 그냥 지나가길 바래요 아무일 없었던듯 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