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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수박들 -19.3.26.화

내 인생의 수박들 -신성- 여름밤이였구나 더위에 잠못드는 소쩍새가 울면은 청마루에 모여앉은 우리네 하루도 구슬펐지 흐르는 눈물 흐르는 땀을 무엇으로 닦으며 위로해 주었던가 고단했던 생 우리네 하루를 담은 수박이여 고단했던 길 우리네 지구를 닮은 수박이여 한 여름밤 우리는 흥에 겨워 박 타던 흥부가 되었어라 거대한 물을 안고 우리품으로 굴러온 수박 그는 알더라 줄기에서 떨어져 태어나는 순간 우물 냉수에서 건져내 지는 순간 어찌 생을 살고 끝낼지 이미 다 알고 있더라 십자가에 흘리던 피와 살처럼 신나게 자신의 육즙을 파먹고 살으라 하네 물로된 인간에게 물을 뺏은 노동을 꾸짓으며 다시 주어질 내일을 파먹고 꿈꾸라 하네 숟가락으로 파먹고 설탕을 뿌리며 파먹고 애착과 집착과 즙착을 다해 주어진 수박 그 육즙을 먹..

서열 정리 -19.3.25.월

서열 정리 -신성- 가야할 길이 너무 달라 반대편에 설 수 밖에 없던 이들 앙숙이요 숙적이라 거창한 타이틀을 걸고 둘중 하나는 사라져야 끝날 운명이라 단정한 서로를 향해 창날을 들이댄다 너무 잘 알기에 눈에 가시같은 서로를 정리하는 시간 빨리 하는게 좋을지 천천히 하는게 좋을지 고민하다 드러나다 다시 숨는 발톱들 수면위 일렁이는 서로의 파문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단판으로 사활을 걸지않는 새가슴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사랑할 수 없다고, 너는 내 왠수라 질러버린 첫번째 기억의 단추. 어느새 그어진 국경선 사이 쌓여만 가는 담벼락을 보며 으르렁 거리다 또 쉬어버린 목구멍으로 으르렁 거리다 또 상처뿐인 몸뚱이 털을 곧추 세우며 으르렁 거린다 언젠가 사라진 서로가 사무치게 그립도록 선을 침노하며 피터지게 싸우는..

반복, 동일, 기억 -19.3.24.일

반복, 동일, 기억 -신성- 누가 나를 가두었나 기억이 난다 분명 어제의 그 시간 그 곳을 지나는게야 벗어나려면 기억을 지워야해 지우자 오늘을, 어제를, 나를 이 돌고 도는 반복을 벗어나야해 동일한 복사의 저주를, 누군가 녹화된 내 CCTV를 그대로 복붙한 듯한 관음 나의 은밀함을 즐기는 그대는 나를 닮아서 싫소 가두어진 나는 시간의 틀속을 돌고 돌아 감가상각이란 허물을 뒤집어 쓰고 마모마모마모마모 안돼안돼안돼안돼 외치는 비명은 그냥 추임새처럼 동굴을 울려대다 노화노화노화노화 늙어 죽겠지 마음도 같이 돌고 돌아버리지 왜 너만 따로 놀아서 이리 힘든 시간을 보내는건지 영원, 그 비현실적인 꿈을 들먹거려선 안됐어 꺼져! 애초에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주리를 틀어서라도 영원을 찾아내 죽였어야 했어 지금은 영..

긴 주례를 지나며 -19.3.23.토

긴 주례를 지나며 -신성- 성혼을 선포하면 끝났을 결혼식이 한번뿐이란 희소성 하나 때문에 주례조차 이리 긴 걸 보면 짧고 굵은 감동이란 참으로 어렵구나 핵심만 이야기하면 끝났을 인생길이 주인공이 죽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하루를 이리 반복해서 주는 걸 보면 짧고 굵은 생이란 참으로 어렵구나 *회사 동료 결혼식을 다녀왔는데 주례 하시는 분이 참 길게도 준비하셨구나 ​

당신의 수습 기자 -19.3.22.금

당신의 수습 기자 -신성- 지금 막 일이 터졌는데 어딜 도망가시는거죠? 저기, 한 말씀 부탁합니다 또 사고가 났는데 왜 핑계만 대고 피하는거죠? 한두번도 아니고 슬슬 짜증이 나는데 언제까지 뒤치닥 거리를 해야되죠? 다 때려치고 싶은데 저기, 한 말씀 부탁합니다 다 보이는 일인데 왜 모른 척 하시는거죠? 진짜 안보이는 건 아니죠? 보이는 저만 신경쓰이는건가요? 성격 좋은 당신은 그냥 넘어가는 건가요? 잔소리하는 저만 나쁜 사람인가요? 저도 같이 개길까요? 저도 같이 배쨀까요? 이제 저도 하기싫어요 긴 수습 기간에 너무 지쳐 버렸어요 그래도 무덤덤한 당신,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은 없으세요? 또 당신은 황급히 자리를 뜨고 그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오늘도 난 당신의 수습 기자 *누군가가 계속 펑크를 내고 지..

여유 못찾기 -19.3.21.목

여유 못찾기 -신성- 길어서 잡힐 것 같은 여유를 분주히 찾아 다녔네 문득 발견한 여유는 놓치기 일쑤 그런 반복된 짧은 동거는 더 큰 상실감으로 밀려왔네 저 넓은 하늘엔 두둥실 구름이 떠가는구나 저 넓은 대지엔 한송이 꽃이 피었구나 저 넓은 바다엔 한마리 고래가 노니는구나 그마저도 그들에겐 분주함 같아라 어쩌면 여유는 여유를 찾지 않는데 있는지도 모르지 *팀원들 모두 사업하랴 일하랴 바쁜데 해결방안이 잘 안보인다​

우리 젖어들다 -19.3.20.수

우리 젖어들다 -신성- 한 마리 고기가 육지를 헤엄치다 익숙한듯 마른 땅을 쏜살같이 헤엄쳐 네모난 상자속으로 쏙 들어간다 거기서 아가미를 뻐금거리며 하루란 긴 시간을 숨가쁘게 보낸다 타들어가는 갈증을 헤치고 불이나케 마른 육지를 헤엄쳐 와선 집이란 어항 속으로 쏙 들어온다 왜 젖지 못하나 물로 된 몸도 투명함을 버리고 육지인 마냥 투박한 흙색을 입고 흙위에 살다 흙으로 돌아가는 고기들. 눈가의 물방울조차 젖지 못하고 땅바닥에 흘러 꽂히고 마는 비운의 고기들. 왜 젖어들지 못하나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던데 죽으러 가는 길은 엄마 뱃속 같을까 천국은 양수처럼 가득찬 물속을 헤엄치고 있으려나 모든 것이 가득차 있는 그곳에선 맘껏 젖어들 수 있겠지 경계와 경계를 허물고 너와 나 다같이 스며들며 젖을 수 있겠지 ..

물귀신 공략법 -19.3.19.화

물귀신 공략법 -신성- 침몰하는 무게는 버려라 익숙해진 배 딱딱한 가슴 무거워진 머리 가라앉는 몸뚱이는 버려라 영혼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몸은 진실하지 못했다 영혼을 부둥켜안고 추락하며 저 깊은 어둠속으로 가라앉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침전하는 몸에 쏟아 부었나 잊어야지 하면서도 또 달라붙는 몸뚱이 이제는 버리고 올라가야 한다 함께 침전하지 말자 더이상은 침전하지 말자 투자했던 본전 생각은 버리고 얼굴도 버리고 머리도 버리고 가슴도 버리고 근육도 버리고 하나 영혼만은 살아서 물귀신이 되지 말아라 *여인아 너를 정죄하던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너의 농부 -19.3.18.월

너의 농부 -신성- 내 눈동자에 네가 뿌려져 네 모습이 자라고 내 귓가에 네가 뿌려져 네 말이 자라고 내 가슴에 네가 뿌려져 네 마음이 자란다 어떤 향기일까 꽃이 필때를 기다린다 섯불리 향기 없다 꽃이 피지 않는다 뽑지 않으리 연이은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한 계절 주어진 시간 너를 가꾸리 촉촉히 스미어든 눈물 개울 가볍게 진동하는 웃음 하늘 따뜻하게 비추는 마음 햇살 자라나는 네 모습에 땀흘리는 한 농부가 있으리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서 나와 다르다고 섣부르게 판단하기 보다 그들이 향기날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

네 마음에 닿을 때까지 -19.3.17.일

네 마음에 닿을 때까지 -신성- 나름의 열정으로 열심히 달렸건만 넌 왜 칭찬 한마디 격려 하나 건네주지 않을까? 허물어진 결핍속에 열등감이 밀려와도 넌 그 작은 구멍 하나조차 왜 막아주지 않을까? 일은 자꾸만 꼬여 가는데 넌 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까? 한탄하며 울고 울어도 네 모습은 보이지 않아 이젠 기댈데가 너 밖에 없는데 정말 너 밖에 없는데 힘들어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웃으며 함께 걸어가고픈데 내 인생은 너 없이 안되는 걸 뼈져리게 느끼는데 이제 너 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울먹이며 뒤돌아서는 순간 그제서야 내 곁에 있는 네 모습을 봤어 요술랩프의 지니처럼 그저 소원을 들어주는 관계 부르면 나오고 부족하면 채워주는 단순한 관계 대신 나이고, 나여야만 하는, 나 아니면 안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