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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 네 공전 -24.2.20.(화)

네 자전, 네 공전 -박원주 밥이 입을 스쳐 지나가고 매끼니마다 메뉴가 머리속을 공전하고 있다. 하루가 자전하는지 자신이 자전하는지 모를 매일의 반복 속에 무수한 존재들이 서로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서로 부딪하지 말자. 서로 정해진 운명에 따르기로 하자. 지구가 달의 한면만 바라보듯이 나는 너의 밝은 면만 보며 웃고싶다. 무수한 일들이 별똥별처럼 쏟아져도 나는 한줌의 분화구 없이 불태워버렸다. 떨어지는 일들은 불타려 태어났나보다. 모든 일을 없애고 하루가 또 자전하고 나면 어디서 일들이 또 나타나 내 주위를 돌고 있다. 갑자기 큰게 툭 떨어지면 파괴력이 크겠지만 조심스레 톡톡 떨어지는 일은 별똥별이 된다. 야근하는 밤하늘에 은하수가 밝다. 박다냐 발다냐 꼬여가는 일처럼 혀도 꼬이고 무수한 걱정들이 자전..

갈림길에 서서 -24.2.19.(월)

갈림길에 서서 -박원주- 어디로 가야할지 매순간 갈림길. 선택의 기로에선 하나를 사랑하고 하나를 버린다. 상실은 사랑으로 달래도 울어서 다음 갈래길 다음 갈래길 멀리 멀리 떠나 보낸다. 떠나면 모든 게 잊혀지겠지. 지나면 모든 게 별거없겠지. 가지가 땅에서 멀어지듯이 뿌리가 지면서 멀어지듯이 이전의 과거를 잊고자 멀리 멀리 나로부터 도망쳐갔다. 나그네로 와서일까? 정박한 일상에 쉽게 지쳐서 떠나고 잊고 떠나고 잊고 주소가 알려진 나는 떠나기 바빴다. 무수한 갈래길이 핏줄처럼 뛰자 역마살이 낀 나그네는 또 떠낼 채비를 해야했다. 어딘가도 모를 목적지를 향해서 어딘가 툭 떨어진 나를 찾아서. * 직원이 퇴사를 한다는데 여친과의 결혼을 부모님이 반대해서 영국으로 도피를 한다는데 과연 최선인지 조금의 충고로 참..

고문관 에피소드 -24.2.18.(일)

고문관 에피소드 -박원주- 나와 너의 다름처럼 우리란 경계는 참 좁고도 좁다. 모두가 같아야 된다는 속좁은 응용력으로 모두 같은 인간을 만들려 복붙을 시작한다. 용납되지 않는 다름은 투쟁과 전쟁일 뿐. 갈굼과 개김사이 고문관이 불쑥 태어나 버렸다. 모두가 이상하다한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모두가 다르다고 낙인찍었던 그가 견뎠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떨떨한 동거를 시작했다. 색다른 풍경 속 색다른 보석이 된 고문관. 내 연애사엔 꼭 필요했던 한때의 연인처럼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고문관. 바로 너였다. * 목사님이 군대에서 교회 간다고 이병때 갈굼 당한 이야기를 너무 리얼하게 해서 아이들이 설교보다 그 이야기만 생각난단다.

발품 -24.2.17.(토)

발품 -박원주- 아이에게 솜사탕을 사주고 잠시뒤 ”내꺼니까 먹지마.“ 눈을 흘긴다. 내 것?! 어디까지가 내 것인가? 엄마가 배아파 낳은 몸이 내 것인가? 지구가 선사해준 땅이 내 땅인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시간이 내 시간인가? 빈 손으로 와서 누군가에게 받은 돈이 내 돈인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생명, 존재, 영혼이 내 것인가? 내 것이라 하기엔 너무 근거가 부족한 내 것들이라 불리는 것들. 그래서 걸었다. 내 발자국이 남으면 남들이 자기꺼라 우기지 않을 거 같아서, 내 땀방울이 흘리면 내가 쓴 중고는 내 것일 거 같아서, 내 흔적을 묻히면 내 것이라 불러도 덜 미안할 것 같아서, 그래서 걸었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흐릿한 풍경 속을 걸으며 내 것이라 불렸던 것들에게 강아지처럼 틈틈히 내 자취를 ..

시한부 하루 -24.2.16.(금)

시한부 하루 -박원주-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정오. 벌써 하루의 절반이 지났다. 하루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을 시간을 아는 건 다행이지만 곧 마칠 시한부 하루는 계속 침몰하고 있다. 죽음이 생각을, 생각이 오후를 점령하자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들은 파업을 선언했다. 우유부단했던 오전처럼 보낼 시간이 없다. 오전을 곱씹으며 반성할 여유도 없다. 새롭게 알차게 남은 반을 꾸며도 하루는 정해진 끝을 향해 계속 흘렀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자정. 눈을 감았다. 결국 오늘이 죽었다. 블럭 하나에 무너진 높다란 젠가처럼 작은 틈 하나에 터져버린 거대한 댐처럼 꽁초 하나에 다 타버린 울창한 숲처럼 원인 모를 찰나에 멀..

해부학 시간 -24.2.15.(목)

해부학 시간 -박원주- “거울아 거울아 이제 난 어떡하면 좋겠니?” 거울을 앞에 두고 싸인 나를 벗는다. 거울은 나를 제일 잘 알고있다. 벗은 날 많이 봐와서일까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하다. 벗고 싶어 하나둘 옷을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피부를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머리를 벗는다. 널부러진 나를 주섬주섬 헤집으며 해부학 시간에 쿵쾅대던 그 심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무얼 사랑하고 있니?’ 심장을 룰렛처럼 돌리며 어디를 향해 뛸지 묻는다. 돌고 도는 피처럼 돌고 도는 사랑은 정처가 없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머리를 알코올에 꺼냈다 담갔다 반복하며 머리에 쓰여진 글자를 읽어보려다 알코올에 흥건히 고인 여러 글자들을 건지며 남은 미련을 끼워맞춘다. ‘나는 무얼 느끼며 살고 있니?..

어린 싸움 -24.2.14.(수)

어린 싸움 -박원주- 아이가 내게 총을 겨눈다. 섣불리 다가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아이 눈치를 피해 총구를 피해도 즐거운 냥 날 따라 총구를 까딱인다. 갖은 애교로 설득을 해도 알턱없는 네살 아이는 웃기만 한다. “솜사탕!“ ”아이스크림!“ ”젤리!“ 아주 단순하고 협상 가능한 단어들을 발포한다. 아이는 총구를 내리고 머뭇거리다 현실성 없는 총알만 남발하는 날 째려보며 빵! 결국 내 심장을 맞춘다. 졌다. 다친 나를 눕히며 의사놀이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뽀뽀를 선사한다. * 말안 듣는 아이랑 싸우다 삐진 와이프를 보며 아이를 어찌 가르쳐야할지 참 고민이 많아진다.

앉을 자리 -24.2.13.(화)

앉을 자리 -박원주- 호수를 걸으며 이쁜 풍경을 보다 커피 한잔, 운치 한잔 할만한 앉을 자리를 찾는다. 여기? 아니다. 좀더 가보자. 여기? 아니다. 좀더 가보자. 결국 호수를 한바퀴 다 돌아버렸다. 다음에는 꼭 앉아야지. 다음에는 꼭 한잔해야지. 호수를 따라 서너잔 독백을 남겨두었다. 돌아가는 손목시계 초침을 보다 다음 여정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 서호 오른쪽으로 돌아 산책을 하니 그늘도 많고 카페도 많고 쩐꾸옥 사원도 구경하고 즐거웠다. 이쁜 카페에서 카피한잔 못한게 아쉽다.

절정의 고백 -24.2.12.(월)

절정의 고백 -박원주- 하늘로 올라간 폭죽은 펑! 절정의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아야 했다. 뜨겁게 달궈진 냄비는 약속된 온도에 끓어 맛난 요리가 되어야 했다. 벗겨진 다음, 핥은 다음, 반복된 다음, 쥬르륵! 터지는 과즙 캔디처럼 무덤덤한 여정도 절정을 지나 한 때의 추억이라 불려져야 했다. 절정없는 순간들은 기억도 흔적도 없는 어찌 먹었는지도 모르는 어느 밥맛 같았다. 즐거웠던 순간들은 웃음으로 피어야 했다. 뛰느라 고생한 심장에게 뛰느라 수고한 다리에게 웃음소리 한 발작 들려줘야 했다. 절정을 먹고 사는 나그네 인생에게 그 짧은 환희 후 주어지는 나지막한 쉼을 허락해야 했다. ”오늘도 재밌었어!“ 그 절정의 고백을 듣고 하루를 마쳐야 했다. * 뗏 연휴에 관광지가 문을 안 열었을까봐 갔던 유명한 곳..

사탕 까먹 -24.2.11.(일)

사탕 까먹 -박원주- 알 사탕도 까먹고 금 사탕도 까먹고 발렌타인 사탕도 까먹고 레알 츄루 핵 중요 사탕도 까먹고 모두 다 까먹어서 영구치 이빨 대신 반구치 인생이 썩었다. 마라탕!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목사님 말씀도 돌아서면 까먹고 중요한 일도 까먹고 망각이 일상이 되네. 목사님이 설교 때 마라나타 이애기를 하니까 아이들이 마리탕 이야기만 하는 수준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