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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새해 -24.2.10.(토)

하루살이 새해 -박원주- 요란한 폭죽소리에 새해가 태어났다. 폭죽이 그치자 새해가 폭죽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고대하던 중생들이 십자가에 못박을 걸 알아서일까? 매년 부활한다 말해도 믿지 않아서일까? 찰나의 생을 마친 새해는 미련없이 과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거리에 걸린 새해 메세지는 케케묵은 뉘우스가 되고 ”지구가 돌아 새해가 왔다“는 갈릴레이의 외침도 “당연한거 아닌가?” 묵은 김치 삭듯 시어 버렸다. 출렁이던 첫 흥분과 절정은 퍼지고 퍼지고 다시 잔잔한 일상처럼 고요해졌다. 새해는 헌해를 꺼내놓고 다시 져버렸다. 다시 밤을 맞은 마음에 해보다 달이 밝다. 새해는 언제쯤 내 마음에 두둥실 진짜 새해를 띄워줄려나? * 베트남은 구정이 새해의 기준이라 축하의 의미가 크다. 연휴도 길어서 일주일을 쉰다.

입맛 과녁 -24.2.9.(금)

입맛 과녁 -박원주- 뭐먹지? 서로의 입맛이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르고. 뭐먹지? 결국은 못 정한 채 냉장고 김치를 꺼낸다. 매끼니마다 반복되는 주관식 질문.. 정답없이 공백으로 빈속을 채운다. 뭐먹지? 입이 두개라 모든 입을 만족시킬 순 없구나.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메뉴 어때?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어때? 서로의 혓바닥에 세겨진 지문을 더듬는다. 네 혀를 보고 꿀꺽 삼키는 내 혀. 내가 맛있어 하는 너를 맛있어 하는구나. 맞아. 식당은 그저 혀가 맛날 굿판일 뿐이지. 메뉴는 그저 혀가 엉킬 주문일 뿐이지. 누가 땡기는 메뉴를 찰나에 주문해도 함께 즐기는 혓바닥이 정답기만 하구나. 이젠 서로의 입맛이 맛나는 메뉴로구나.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광란의 파티로구나. * 간만에 따히엔 맥주거리를 따라 ..

5일장 장바구니 -24.2.8.(목)

5일장 장바구니 -박원주- 간만에 선 5일장을 나서며 밀려오는 고민에 머리가 찰싹인다. 잘 산게 맞겠지? 맛없진 않겠지? 안먹고 버리진 않겠지? 많이 산 건 아니겠지? 들고가기 무겁진 않겠지? 냉장고에 다 들어가겠지? 혹시 부족하면 어쩌지? 뭐 빠뜨린 건 없겠지? 5일장 봇짐에도 고민이 이정도구나. 긴 인생 여정에 고민은 얼마나 많을려나. 장바구니를 싸고 고민을 이고 장바구니를 나르고 고민을 풀고 사소한 5일장에 인생짐 무게를 가늠해 본다. 적당히 싸야겠다. 완벽하지 말아야겠다. 내맘같지 않으니 놓아주며 가야겠다. 다시 장이 서기전 모든 짐을 비워야겠다. * 뗏 연휴가 일주일인데 마트랑 식당이 많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미리 미리 일주일치 장을 보았다.

오늘의 결재 -24.2.7.(수)

오늘의 결재 -박원주- 텍스트로 너를 보여다오. 딱딱한 화면 위에 한장의 편지를 쓴다. 흔한 그림 하나 이모티콘도 없이 내 목소리도 미소도 전해주지 못한 채 나를 어필해야하는 짧은 미팅이 시작된다. “어디서 왔습니다.” 과거사를 발가벗겨 ‘관련 근거’라 둘러대고 축약된 텍스트 맨몸뚱이 하나로 간절히 간택되길 상소문을 올린다. ”안된다고 말하지마!“ 짧은 편지 한장에 미련처럼 메아리처럼 덕지덕지 ‘붙임’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판결 이내 예, 아니오로 끝난다. ‘예’라는 답변은 당연한 ‘예’로 넘겨도 단순한 ‘노(No)’에는 분노가 치밀고 속좁게 이전의 노까지 끄집어내 불평을 쏟는다. 무사히 넘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까? 모든 걸 잃고 처음으로 리셋 할까? 도박처럼 행운처럼 한장의 종이에 운명이 걸렸다...

미리 mm 결론잼 -24.2.6.(화)

미리 mm 결론잼 -박원주- 미리 미리 해두면 인생이 참 편해요. 내일일을 오늘 하면 내일은 쉴 수 있죠. 방학 숙제도 미리 미리 해두면 방학이 자유로워요. 졸업도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미리 미리 해두면 인생이 여유로워요. 내일 밥도 미리 자시고 내일 잠도 미리 자시고 다음 사랑도 다음 기쁨도 미리 미리 오늘 다 마감해 두세요. 아참. 미리 미리 니가 죽으시면 인생도 더 더 자유롭습니다! 그럼. 미리 미리. 끝! * 미리 미리 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오늘 할일이랑 내일 할 일이랑 따로따로 정해져 있어서 모든 걸 미리 미리 할 수는 없네.

끓는 시간 -24.2.5.(월)

끓는 시간 -박원주- 시간이 끓고 있다. 마지막 한줌 증기로 날아가 버릴 내 시간이 끓고 있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냄비안 개구리처럼 넓은 내 시간 속을 헤엄치다 헤엄치다 눈치없이 같이 폴폴 끓어 버렸다. 끓을 줄 알았던 내 공간은 차갑게 식어가고 낡아가는 존재들은 함께 삐끄덕 삐꺼덕 고장나 멈춰서야만 했다. 공간을 시간은 꺼내주고 싶었다. 시간을 공간은 꺼내주고 싶었다. 멀리선 나는 가까운 나를 꺼내주고 싶었다. 바라보이는 안타까운 상대들을 구원하고 다독이고 싶었다. 언젠가 흩어질 구름을 붙잡고 언젠가 져버릴 꽃송이를 붙잡고 언젠가 흘러갈 시냇물을 붙잡고 잠시 도화지에 슥슥삭삭 그려넣으며 멈춰세워 한마디 건네보고 싶었다. 멀어지는 추억 잊혀질 기억에게 더 멀어져 잡으면 아스러져 버리기 전에 다소곳이 두..

쇼킹 질리 -24.2.4.(일)

쇼킹 질리 -박원주- 밥이 질리지 않아 계속 계속 먹었지. 일상이 쇼킹하지 않아 매일 매일 살았지. 맛없는 것 같아도 맛이 없어서 다행인 반복들이였지. 일상이 무난하고 재미가 무난하고 꿈이 무난해서 질리지 않았나보다. 계속 누군가를 오래참고 사랑했나 보다. 진리를 강요받고 행복을 강요받고 성공과 땀방울을 강요받아서 어느새 질려버린 어른아이들. 어느때 그게 좋아서 “사랑해” 고백할 시간을 주어야지. 기나긴 고요가 지나고 들리는 어느 종소리 쯔음에 가고픈 어디로 훌쩍 떠나도 아무말도 아무짓도 하지말고 두어야지. 오랜 사이가 오오랠 인생이 질리지 않게끔. * 아이에게 중요하다고 마냥 강요만 하고 매일 숙제처럼 시키면 그 중요성을 깨닫기도 전에 질려버린다는 목사님의 말씀.

꼴(goal)찌 -24.2.3.(토)

꼴(goal)찌 -박원주- 꼴찌야 골찌야 너랑 나랑 만나면 내가 꼴찌야 회사에서 일하면 내가 꼴찌야 간만에 일등이야? 60억 인구중에 못하는 건 일등이야 꼴찌를 하고나서 알았지. 여태 넘어진 내 몸뚱이만 보다가 날 일으켜세우는 이유들을 보았지. 넘어진 지평선에 내눈이 맞을 때 넘어진 모래 너머 수평선을 보았지. 모든 것이 시작되는 출발선. 계속 다시 살 수 있는 불멸의 선. 모든 걸 해탈한 순간을 느꼈지. 계속 다시 시작하면 된다. 계속 다시 태어나면 된다. 어딘가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 자체가 목적이다. 떠오르는 진짜 골(goal)을 보고 다음 골(goal)대를 향해 달려갔다. 우주란 커다란 골대 아래 놓여진 수평선. 어디든 공만 차면 되는거였다. * 모임 골프 대회에서 꼴등을 했다. 연습을 했는데도 꼴..

땜빵하는 나그네 -24.2.2.(금)

땜빵하는 나그네 -박원주- 할 사람이 없어서 대타로 뛰고 원하는 걸 못해서 차선을 하고 갑의 “찬스!” 외침에 헌신을 강요받고 정(正)의 빈자리에 떠도는 부(副)의 한(恨)들. 잠깐 비운 자리라 눌러앉을 수도 없구나. 그토록 가고픈 자리지만 오를 수도 없구나. 같은 땅방울을 흘려도 잊혀지고 마는구나. 때워지지 않는 땜빵에서 바람이 분다. 잊지말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땜빵이였던 걸. 아빠의 뒤를 이은 아빠의 땜빵. 전임자의 뒤를 이은 전임자의 땜빵. 이전 세입자를 이은 세입자의 땜빵. 영원할 것 같았던 1인자가 어느새 지면 위대한 1인자가 되어버린 기막힌 반전. 땜빵으로 때워져도 억울해 말자. 빈자리에 끼워져도 불평해 말자. 땜빵에서 태어나 땜빵을 하다 땜빵으로 가는 인생. 나그네길 땜빵이 다 그런거니..

무림 생존기 -24.2.1.(목)

무림 생존기 -박원주- “하산하거라. 이제 가르칠 게 없구나. 힘들면 찾아오거라.” 정글같은 무림 속. 이론 끝, 실전 시작이다. 자면서도 더듬이를 세워야 한다. 무림 고수를 모두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읭? 이론과 동떨어진 현실에 급 현타가 온다. 미션 임파서블. 영화 속 주인공이 가능할까? No! 결론은 삼십육계 줄행랑. 피하는게 상책이지. 잠자는 사자는 건들질 말아야지. 배우지 않아도 모가지를 겨눈 칼날이 가르쳐준 득도의 은혜. 앗. 자객이다! “이젠 실전이군. 후후훗!” 후다다닥~! * 골프 레슨을 2사이클 돌아 18회만에 끝마쳤다. 이제는 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