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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사람 -24.3.20.(수)

화난 사람 -박원주- 화가 나 화냈더니 왜 화내냔다. 웃는 건 되지만 화내는 건 안된단다. 화가 나도 꾸욱 참아야한단다. 그러는 그를 보니 어느새 화를 내고 있다. 그지? 화내는 건 당연한 거지? 화도 내고 풀고 그러는거지? 그게 사람이지? 우리 서로 너무 좋은 것만 보여주려 했지? 좋든 나쁘든 함께하는거지?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한 그 맹세 잊지 않은거지? 화 풀어~ * 와이프에게 화가 나서 화를 냈더니 많이 서운해 한다. 어찌 풀어야하나 고민이다.

ㄱㄱ계단 -24.3.19.(화)

계단 -박원주- 평평한 길을 원했는데 계단이 놓여있다. 이 높다란 계단을 어찌 올라갈까 한참을 쳐다본다. 왜 이리 일이 많으냐 왜 이리 오르막이냐 불평을 한참 했더니 계단이 말한다. 올라오라고 오를 수 있다고 굽은 손을 내게 내민다. ㄱ자 손이 내 발에 꼭 맞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한손 한손 꼭꼭 맞잡는다. 높이 올라 세상을 바라본다 내게 잠시 나는 걸 보여주려했구나. 계단을 내려오며 세상을 보니 모든 게 계단이다. 연속인 줄 알았던 시간, 직선인 줄 알았던 세상, 모든 게 다 계단이다. 오르고 쉬고 오르고 쉬고 1,0,1,0, 나도 너도 계단이다. 모두가 계단이다. * 일이 많고 왜이리 오르막이냐고 불평을 했더니 계단이 내게 말했다.

아기의 탄생 -24.3.18.(월)

아기의 탄생 -박원주- 아기가 태어났다. 덩그러니 놓인 아기를 보며 누구 애기인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를 닮지 않아서 그냥 두었다. 아기가 운다. 시끄럽게 우는 아기가 안스러워 주의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가슴에 빈 젖을 물리며 아기를 달랜다. 아기가 웃는다. 귀여워 같이 웃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불쌍해서 나는 울었다. 아이도 나를 따라 같이 울었다. 아기가 날 쳐다본다. 물끄러미 나를 보는 아기가 어느새 나를 닮아있다. 아이고 내새끼 내새끼였구나. 날 닮았으니 아빠라 부르렴 하다가 그래도 될까 모르겠다 후회를 한다. 내 살기도 버거운데 널 어찌하면 좋으냐 날 어찌하면 좋으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불쌍해서 나는 울었다. 아이도 나를 따라 같이 울었다. * 신입이 들어왔는데 어찌 가르쳐야..

다 알고 할까? -24.3.17.(일)

다 알고 할까? -박원주- 뭘 다 알고 하려니 늦고 뭘 다 알고 하기도 어려워 그냥 뭣도 모르고 하기로 했다. 무슨 의미도 모르고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가 당연히 해야하니 본능처럼 하고있다. 시행착오도 많고 오류도 많은 내 삶. 그렇게 삶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삶이 소비되었다. 의미를 알고 살기엔 살기가 바쁘고 의미도 모르고 살기엔 내가 없는 처음도 끝도 없이 흘러간 내 하루. * 중학생 세례식을 보며 저 어린아이들이 뭘 알고 세례를 받을까 생각이 들었다. 뭘 다 알아야한다고 하기엔 그렇지 못한 내삶을 본다.

거대한 병원 -24.3.16.(토)

거대한 병원 -박원주- 병원에 점심 대기가 길어 막막했더니 푸드코트 쿠폰 하나에 위로를 받는다. 병원 뷔페인데 너무 맛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많이 오나? 정원도 놀이터도 너무 이쁘다. 이래서 사람들이 많이 오나? 병원도 바깥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너무 멀쩡해 보였다. 아픈대도 모두 멀쩡한 척 살았구나. 조금이든 많이든 모두 아팠구나. 죽어가는 인생이 아픈 건 당연하겠지. 모두가 병원에 꼭 와야했구나. 조금씩 자라는 무언가가 날 침노하기 전에 매일 침상에 날 누이고 진찰해봐야겠다. 몸을 고치듯 생각을 고치고 병원 정문을 나서는데 세상이 마치 거대한 병원같다. * 와이프가 아파서 병원가서 기다리고 간김에 아이 감기도 진찰하고 이도 치료하고 병원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면접관 -24.3.15.(금)

면접관 -박원주- 천국 입구를 센캐가 지키고 있다. 면접 후 합격자만 들어갈 수 있다. 어떤 기준으로 들어가는지는 모두 알지만 그 기준에 맞는지는 센캐들만 알았다. #1차: 너 자신을 알라 당신은 누구인가요? 네. 저는 서른살 서울 박아무개입니다. 그게 다인가요? 네. 뭐가 더 필요한가요? 탈락입니다. 왜죠? 중복자 탈락입니다. 자신을 더 자세히 알고 차별화해서 지원하세요. #2차: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외모, 학력, 제력, 성격, 열정.. 모두가 자신을 자랑하기 바쁘다. 능력만큼 오해가 많은 단어가 없구나. 무언가 많다는 건 뭔가는 적다는 반증. 가진만큼 더 절실하지 않기에 착하고 충성되지 못한 그들은 모두 탈락했다. #3차: 카멜레온 색출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지원한 사람이 있구나. 당신은 이곳에..

정적을 없애다 -24.3.14.(목)

정적을 없애다 -박원주- 가장 작은 입이 제일 시끄럽다. 눈도 귀도 정적이 싫어 떠드는 입을 가만히 듣고있다. 정적이 흐르면 자신을 쳐다볼까봐 어수선한 머리속을 들여다볼까봐 빈 가슴속에 손을 넣을까봐 쉴새없이 떠드는 입으로 자신을 가렸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우울증 걸리겠다는 둥 오토바이 타다 경찰에 걸려 벌금을 냈다는 둥 바다에 둥둥 입만 동동 띄운 채 벌거벗은 나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머리가 됐다 다리가 됐다 입이 분주하다. 입이 떠들고 입이 웃고 나를 먹고 서로를 먹고 우리를 먹었다. 모든 연기를 마친 입은 우리를 꼭 담은 채 자신이 머물던 정적 속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그토록 싫어했던 정적을 나들은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다. 허기진 입이 또 글감을 우걱우걱 쑤셔넣으며 다음 만날 우리를 준비하고 있다..

기브 앤 테이크 -24.3.13.(수)

기브(give) 앤 테이크(take) -박원주- 세상만사 기브 앤 테이크. 주거니 받거니 오고 가는 거래가 정확히 딱딱 맞다. 물물교환. 세상만사 기브 앤 테이크. 단순한 공식인데 까먹고 있었구나. 난 무얼 주고 받을까? 넌 무얼 주고 받을까? 열리는 시장이 웅성웅성 요란하다. * 나라간 공식 행사에 참여하면 거래가 시작된다.

정의의 사도 -23.3.12.(화)

정의의 사도 -박원주- 어두운 밤. 쉿 아무도없다. 이제 내가 나설 때구나. 세상에 악을 이제 뿌리뽑겠다. 짧은 심판 후 갈아둔 칼날로 소심한 응징을 한다. 저놈이 악이다. 저놈 잡아라! 긴긴 밤을 쉴새없이 달리며 악을 악으로 갚는다. 악은 질긴 놈이군. 밑 빠진 독에 물붓듯 없어지지 않는다. 그 독에 콩나물처럼 어느새 가득찼다. 밤을 지샌 나만 피곤하다. 나만 피곤하게 밤을 지새고 말았다. 악을 위한 정의의 투자가 많이 과했다. 어짜피 망할 놈 잠시 심판을 보류해야지. 심판은 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정의가 가볍도록 자유를 줬다. 긴긴 밤 다시 단잠을 청했다. * 세면장에서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어 소심한 복수를 했다. 악을 악으로 갚는건 부담스럽다.

유월절 그밤 -24.03.11.(월)

유월절(pass over) 그밤 -박원주- 문설주에 피를 바른다. 누구 피인지 출처는 모르지만 어디서 맡아 본 냄새가 내 피냄새같다. 피가 흐르는 건 신경쓰이지 않았다. 부디 이 문제가, 이 닥친 재앙이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할 뿐이였다. 오늘 밤만 넘기면 된다. 이 어두움만 지나면 된다. 꿈같은 하룻밤 이 밤만 넘기면 된다. 이 죽음만 한번 넘기면 험난했던 여정도 이젠 내리막길이다. 이 밤이 깊구나. 이 밤이 길구나. 가지않는 밤이 째각째각 심장소리만큼 요란하다. 오늘밤만 넘어가거라. 이 어두움만 지나가거라. 이 밤만 넘어가거라. 이 문제만 이 재앙만 이 죽음만 넘어가거라. 내일 아침 여명을 내게 밝혀 다오. 이 밤이 깊다. 이 밤이 길다. 가지않는 밤이 째각째각 심장소리만큼 요란하다. * 여러 문제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