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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회사 -23.12.12.(화)

기계 회사 -박원주- 회사가 기계처럼 움직인다. 사람들이 부속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최소 투입, 최대 산출을 위해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오직 이윤을 위해 세상은 움직인다. 낡고 저조한 부품은 교체된다. 내 옆의 부품도 교체됐다. 새로 들어온 부품이 아귀를 맞추자 아무일 없었듯 또 굴러간다. 빠르고 신속하게 별탈없이 완료됐다. 한 생각이 내 머리를 맴돈다. ‘나도 언젠가는 낡을텐데..’ ’나도 언젠가는 교체될텐데..‘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겠지..’ 그 생각이 내 머리를 채운다. 퇴근하고 싶다. * 회사에서 내년도 방침을 바꿔서 기존 인력을 내보내기로 통보가 왔다. 동료들에게 전달을 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다.

줬다 뺏기 -23.12.11.(월)

줬다 뺏기 -박원주- 가장 억울한 일 중 하나가 줬다 뺐는 거랬지. 산해진미도 유흥도 한번 맛보면 헤어나오기 어렵지. 근데 가만보니 삶이 딱 그짝이네. 젊음도 줬다 뺏고 건강도 줬다 뺏고 생명도 줬다 뺏고 결국 다 가져봤다가 죽을 때 다 뺏기는게 우리 인생이네.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게 인생이냐. 구천을 떠도는 귀신도 떠돌만 했다. 아 내 인생도 억울하구나. 아 네 인생도 원통하구나. * 옆 회사 분이랑 샤브샤브를 먹으며 몸보신을 했다. 나이가 드니 건강이 안좋으시다고 하시는데 남일 같지 않다.

형상기억 인간 -23.12.10.(일)

형상기억 인간 -박원주- 추운 겨울날 개구리가 얼어서 죽었다. 봄이 되어 개구리는 녹아서 살아났다. 사람이 죽어서 흙이 되었다. 오랜 세월 후 사람이 흙에서 다시 살아났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그러게. 어떻게 존재가 생겨났을까? 어떻게 생명이 생겨났을까? 어떻게 영혼이 생겨났을까? 아무도 과거를 모르는구나. 아무도 미래를 모르는구나. 아무도 존재도, 생명도, 영혼도 어찌 생겼는지 아는 이 없구나. 갑자기 수많은 생명체가 생겼다는데 그깟 사람 하나 살리는거야 식은 죽 먹기지. 갑자기 무한한 우주가 생겼다는데 그깟 사람 하나 만드는거야 식은 죽 먹기지. 갑자기 오묘한 자연법칙이 생겼다는데 그깟 영혼 하나 넣는거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러니 개구리보다 사람이 낫기로 하자. 아쉽게 이 생에서 끝내지 않기로..

나 벗기 -23.12.9.(토)

나 벗기 -박원주- 태어나 그리 크게 운게 가진게 하나 없어서였을까? 열심히도 날 위해 살았구나. 무얼 위해 살까? 어디서 어디로 갈까? 찾을수록 알수록 그만큼 나를 벗었다. 채운 의미만큼 나를 비웠다. 부모란 사랑만큼 나를 벗고 배우자란 사랑만큼 나를 비우고 자녀란 사랑만큼 나를 벗고 신이란 사랑만큼 나를 비운다. 나를 모두다 벗어야 마치는 인생. 모든 걸 비워야 가벼운 인생. 무(에서) 왔으니 무(로) 가는게 인생. 내 중심에서 놓지 못한 것들. 붙들고 있기엔 언젠간 버거운 것들. 과거는 미련했고 현재는 우둔하며 미래는 어리석을 나의 것. 불순물처럼 이는 바람에 요동칠 내 번뇌들. 가치를 위해 나를 버린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 충성, 온유, 절제. 언젠가 나를 다 비우면 무엇이 ..

내가 졌다 -23.12.8.(금)

내가 졌다 -박원주- 불쑥 튀어나온 게시물 하나에 눈과 손가락이 홀려 따라간다. 클릭 한번에 각본은 뇌리에 전사되고 대리만족과 상상의 세계로 날 데려간다. 하나뿐인 몸뚱이, 한번뿐인 인생,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는 이곳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떨까? 나도 저러면 어떤 느낌일까? 설레일까? 짜릿할까? 황홀할까? 더 더 더더더. 마지막 게시물의 손짓에 아쉬운 듯 흘러내린 침을 닦는다. 절정을 향해 달리다 끝나버린 사랑처럼 모니터에 비친 날 쳐다보며 한마디 불쑥 내뱉는다. “에잇. 또 낚였네.” “내가 졌다.” *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을 안 할수는 없지만 쓸데없이 인터넷 하는 시간은 줄여야겠지.

망각의 즐거움 -23.12.7.(목)

망각의 즐거움 -박원주-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어제의 괴로움을 잊고 새로운 태양을 맞아서이고, 이곳을 지낼 수 있었던 건 이전의 익숙함을 잊고 새로운 곳을 정착해서이고, 그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이전의 사랑을 잊고 새로운 가슴으로 채워서이고, 나를 견뎌 살 수 있는 건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로운 나를 살아서이다. 난 매일 사탕처럼 까먹는 망각이 즐겁다. * 잘 잊는 거는 참 즐거운 일인데, 오늘이 결혼 기념일인 것도 까먹고 퇴근해서 와이프에게 많이 미안했다.

회식 별자리 -23.12.6.(수)

회식 별자리 -박원주-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사람들은 외로운 별되어 하나둘씩 까만 하늘로 올라간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별들은 은하수 강가에 모여 앉아 하나둘씩 사연을 풀어놓는다. 흘러가는 많은 물소리처럼, 모내기철 물 만난 개구리처럼, 조잘재잘 이별 저별 사연을 담았다 비웠다 흘러간다. 시끄러운 이야기는 아득히 멀다. 빛으로도 몇년 걸리는 곳에서 먼 옛날 이야기들을 재잘거린다. 그래서 속마음을 듣는데는 몇년이 걸리나보다. 그래도 속마음을 들려줘서 후련한가보다. 별들은 아득히 먼 은하수 강가에 앉아 내 이야기도 들려달라 재잘댄다. 그러나 밤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여기까지는 어떤 소리도 바람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반짝이는 눈망울로 날 내려다볼 뿐이다. 까만 밤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냥 반짝일 뿐이다. ..

반복 연습 -23.12.5.(화)

반복 연습 -박원주- 1편 수영: 헤엄치고 또 헤엄치면 물에 잘 뜰까? 축구: 차고 또 차면 골을 잘 넣을까? 골프: 치고 또 치면 공이 잘 맞을까? 2편 업무: 일하고 또 일하면 일이 끝날까? 사업: 벌고 또 벌면 부자가 될까? 사랑: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날 사랑할까? 3편 인생1: 살고 또 살면 잘 살까? 인생2: 살고 또 살면 내일 죽지 않을까? 인생3: 살고 또 잘 살면 죽은 후 다시 살까? * 골프 기본자세 반복 연습을 하는데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 채 잡는 것도 다르고 자세도 기마자세가 아니다.

포로 -23.12.5.(월)

포로 -박원주- #땅. 전쟁터 같은 일상을 날다 한발 총성에 격추 되고 말았다. 죽음을 향해 낙하하는 몸뚱이를 간신히 낙하산으로 붙들어 맨다. #무리. 웅성대는 아래 세상엔 내 편이 없구나. 바로 죽거나 고통스럽게 죽거나 문드러져 고통도 모르고 죽거나. 정해진 죽음을 맞기엔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됐다. #시선. 어떻게든 천천히 내려가자. 어떻게든 해맑게 내려가자. 내 발이 죽음에 닿기 전엔 희망으로 절망을 최대한 막아보자. #도박. 자유가 자유가 아닐지라도 죽음보다 나을꺼란 희망을 걸었다. 내일이 내일 오지 않을지라도 오늘보다 나을꺼란 희망을 걸었다. #포로. 포로가 되었다. 먹고 자고 싸고, 본능조차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난 무얼 할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난 무슨 의미가 있을..

내가 선악과 먹지 말랬지! -23.12.3.(일)

내가 선악과 먹지 말랬지! -박원주- 내가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고 먹지 말랬지! 왜 죽냐구? 신(神)인 내가 죽는다고 했으니까. 너가 네 뿌리에서 떠나버렸으니까. 죄는 맛보면 결국 죽어야 끝나니까. 왜 거기 뒀냐구? 선악과랑 생명나무랑 같이 둔 건 알지? 넌 그 중에서 지혜와 죽음을 선택했지. 왜 그냥 뒀냐구? 넌 로보트가 아니야. 무얼 먹고 안 먹곤 네 자유지. 널 조정하는 건 아무 의미없어. 왜 명령 했냐구? 엄마가 아이에게 명령하는 거지. 널 위해서 내 말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거지. 이제 어떡할꺼냐구? 너무 걱정하지마. 내겐 아직 생명나무가 많아. 언제든 내게로 와. 항상 널 기다리고 있을께. * 선악과는 알면 알 수록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