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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격리 실험 -23.12.2.(토)

완벽한 격리 실험 -박원주- 인간(人間)에게서 간을 뺐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선 절대 아니되느니라.” 거대한 대의명분은 병든 나를 정죄하고 가두었다. “어라? 간만 빼니 살만한가보지?” “음.. 저걸 어떻게 진짜 격리시키지?” 혼자 있다고 격리된게 아닌 걸 들켜버렸다. 공간의 문제가 아닌 걸 간파당해 버렸다.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을 다 빼앗을 작정인 것이다. 의로운 Job에게 닥쳤던 고난이 내게도 허락되었다. 진정한 격리 실험. 고문이 닥쳐!얻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게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 가족, 여행, 맛집, 운동, 자연, 카페.. 내가 이런걸 좋아했구나. 내가 이런데 시간을 많이썼구나. 내가 이때 많이 웃고 즐거웠구나. 난 날 즐겁게 해준 세상에 얼마나 기쁨을 줬을까? 난 ..

바이러스 족보 -23.12.1.(금)

바이러스 족보 -박원주- 독감 바이러스의 족보라. 내가 기침을 시작할 때에 11.1.쯤 되니라. 아는 대로는 아내의 바이러스요. 아내의 위는 딸이요. 딸의 위는 딸의 친구요. 딸의 친구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친구요. ...의 위는 아담이요.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라. 하나님. 바이러스는 제발 만들지 마시지. 콜록콜록. 바이러스 먼저 지옥에 보내주시지. 콜록콜록. 바이러스부터 착하게 살게 해주시지. 콜록콜록 예수님. 백신부터 좀 보내주세요. 콜록콜록. 아멘. 콜록콜록. * 기침이 계속 나서 병원에 가니 독감래서 당황했다.

무림 고수 하산기 -23.11.30.(목)

무림 고수 하산기 -박원주-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해선 초식을 마스터 해야 하산할 수 있다 초식1 : 몸 만들기 - 수영, 헬스, 요가, 필라테스, 크로스핏.. 초식2 : 공 다루기 - 축구, 농구, 배구, 탁구, 야구.. 초식3 - 도구 다루기(돈 쓰기) - 골프, 승마, 요트, 스쿠버다이빙, 카레이싱.. 하산의 길이 멀구나. * 골프 배우겠다고 프로에게 기본 똑딱이 자세를 배우는데 허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났다

요철과 굴곡 의 미 -23.11.29.(수)

요철과 굴곡 의 미 -박원주- 우리 모두가 곧지 않네. 다들 모난 요철과 굴곡을 지니고 사네. 왜 곧지 않느냐. 왜 모가 났느냐. 왜 돌고 돌아 가느냐. 굴곡진 해안선처럼 오르락 내리락 주가처럼 꼬였다 풀렸다 반복하는 인생길처럼 모두가 들쑥날쑥 요철을 품고 사네. 굴곡진 인생은 참 험난했었네. 이유도 모른채 굽이치는 기울기는 온전히 내가 운전대를 잡고 달려야했네. 꼬이고 꼬여서 어떻게 풀지도 몰랐지. 끊어버리고 끊어버리고 싶은데 끊어지지도 않았지. 누군가 리셋시켜 주길 간절히 기다렸었지. 굴곡은 곧아지기는 커녕 얼룩덜룩 울퉁불퉁 또다른 요철을 세기고 있었지. 언제 굴곡이 펴질까? 지금 회개하면 펴질까? 한번 회개하면 다 곧아질까? 계속 회개할 필요는 없는걸까? 언제것까지 회개해야 없어질까? 뭔가 찝찝한 ..

감염 실록 -23.11.28.(화)

감염 실록 -박원주- 세상에 역병이 돌았다. 죽을 뻔한 고비들을 넘겨 오늘까지 왔구나. 작은 기침에도 ‘이 놈의 전투력은 어느정도일까?’ 끓는 가래에도 ‘별일은 없겠지?’ 작은 미열에도 주마등 같은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역병이 지나가고 나는 또 감염되고 끙끙 앓고 몸과 영혼은 너덜너덜 상처 투성이가 된다. 팔 하나 다리 하나 잃지 않아 다행이다. 돌거나 미치거나 좀비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비염, 천식, 이명, 대상포진.. 연대기 역시처럼 동고동고 많구나. 상처와 후유증은 어느새 내 모습, 습관, 성격, 정체성, 내가 되었다. 세상에 또 역병이 돈다. 유행처럼 이 감염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을까? 이전에 날 감염시킨 한 습관처럼 내 아픔도 내 상처도 멋진 타투가 되어라...

밤(夜) 산책 -23.11.27.(월)

밤(夜) 산책 -박원주- 어둠이 내린다고 바로 밤이 오지 않네 눈을 감는다고 바로 잠이 오지않네 밤을 맞으러 떠나야 하네 아직 누이지 않은 몸뚱이를 누이고 아직 감지 않은 눈동자를 덮고 아직 꺼지지 않은 생각을 하나씩 끄고 아직 뛰는 심장은 잠시 멈추고 잠을 맞으러 떠나야 하네 그러다 죽으면 어쩌나 내일 못 일어나면 어쩌나 내일 고민은 내일 하고 오늘은 이만 죽어야하네 긴 동면 후 깨어날 개구리처럼 내일 또 새아침이 밝으면 투명한 눈동자를 한바퀴 굴리고 잘 잤다 기지개를 켜면 선물같은 새 몸을 입고 콩닥콩닥 새 심장이 뛰어다닐걸세 텅 빈 어두움 속에 눕는 걸, 마지막 남은 의지로 두 눈을 감는 걸, 끝내 놓치 못한 이성의 필름을 끊는 걸, 멈추지 않던, 멈출 수 없었던, 멈추면 안 되는 이 두근대는 심장..

신이 못하는 것들 -23.11.16.(일)

신이 못하는 것들 -박원주- 우주와 법칙과 생명까지 만든 전능한 신이 못하는 게 있단다. 무얼까? 전능한 신은 죽을 수 없단다. - 자신의 정의나 속성을 거스를 수 없겠지. 약속의 신은 자신이 뱉은 말을 어길 수 없단다. - 신이 인간에게 던진 말들은 결국 족쇄가 되었지. 착한 신은 죄나 악을 저지를 수 없단다. - 거짓말, 사기.. 현실의 절반쯤은 할 수가 없지. 사랑의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 수 없단다. -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막을 수 없지. 결국 전능한 신도 전능하지 않았네. 그래서 그런지 좀 짠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 오늘 새신자반에서 예수님에 대해 배우다가 신이 못하는 게 먼지 나에게 물어봐서 당황해서 어버버했다.

꼭 뭘 해야하는건 아냐 -23.11.25.(토)

꼭 뭘 해야하는 건 아냐 -박원주- 매일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쉬면 일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무얼 해야 하는건 아닌가? 어딜 나가야 하는건 아닌가? 무얼 먹어야 하는건 아닌가? 먹는 일도 일감이 되고 노는 일도 스케줄이 되어 버린다 쉬어도 돼. 자도 돼. 아무것 안해도 돼. 일하는 인간의 비애는 쉬지 못하는 관성에 있다. 간만에 웃다 놀다 자다 부시시 일어나 훌쩍 져버린 태양에 화들짝 놀라 애처럼 줄줄 흘려버린 시간을 주워담는다 괜찮아 아무일 안해도.. 괜찮아 잘못해도.. 괜찮아 그냥 쉬어도.. 하루하루 나로서, 누군가의 옆자리로서 살아있는 게 가장 큰 일이고 가장 큰 보람이였어. 이젠 좀 쉬는데 익숙해지자. * 주말 아이랑 놀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손가락으로 쓴 글씨 -23.11.24.(금)

손가락으로 쓴 글씨(요8:1-11) -박원주- 주님. 음행하다 잡힌 나와 함께 하셨던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돌로 치라 외치던 무리중에 날 구해주신 그 구원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정죄하는 이들 뿐인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신 그 창조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죽음을 넘나들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적고 계시던 주님. 혈서를 쓰듯 피로 죄를 알리려 하셨나요? 말로 천지를 창조하듯 글로 무얼 창조하고 계셨나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우리 죄를 세어보고 달아보고 찢으려 한건 아닌가요? 여러 상상과 고민들이 뿔처럼 자라다가도 침묵하신 그 주님의 생각과 고요속으로 내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나도 널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주님..

난 아무렇지 않은데 -23.11.23.(목)

난 아무렇지 않은데 -박원주- 난 고아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못배운줄 안다. 난 장애인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불쌍해 한다. 난 북한 사람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궁금한게 많다. 난 목사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 난 돌싱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조심스러워 한다. 난 죽었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슬퍼한다. * 어떤 분은 초면이 돌싱이라고 밝히셨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어느선까지 남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