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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하는 관광지 -23.9.23.(토)

충고하는 관광지 -박원주- 전쟁터 폭탄이 떨어지는 탑도 지식을 수양하던 학교도 왕이 국정을 논하던 왕궁도 지금은 흘러가버린 한때 지나가고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게 “너무 치열하게 살지말어라 쉬엄쉬엄 관광하듯 즐기며 살아라“ 토닥토닥 충고하는 관광지 * 지인분과 하노이 유명 관광지 투어를 했다. 지금은 다 지나가던 이들의 눈요기인 관광지가 새삼럽다

Job. 테트리스 -23.9.21.(목)

Job. 테트리스 -박원주- 인생이란 네모난 백지에 삐뚤어진 일들이 떨어진다 나는 힘껏 돌리고 돌리고 다음 떨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돌리고 돌리고 놓여진 현실위에 일을 끼워맞춘다 갖가지 일들이 끝없이 내려오고 인생의 여백은 빽빽히 채워져버린다 쳐내고 쳐내고 말끔한 여백의 미는 이상일 뿐이다 잠시 쳐내진 일들의 비명에 만족해 하며 단순한 일이 긴 막대기처럼 내려오면 히죽대며 오늘도 내려오는 하얀 일덩이를 돌리고 돌린다 * 행사를 잘 마치고 나니 홀가분하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일들을 쳐내는 것과 즐기는 것을 고민하는 숨고르기 시간.

무한 학습 -23.9.20.(수)

무한 학습 -박원주- 어릴 적 구구단, 자라서는 독서, 커서는 미디어, 봐도 봐도 끝없는 문명의 공장. 밀린 넷플릭스를 뇌리 속에 우겨 넣으며 일반적인 사람들에 나를 끼워 맞춘다 복사도 되지 않는, 죽어선 포맷 되어버리는, 저용량 호모 사피엔스 오늘도 끝없이 윤회하는 학습 목표 * 친구들이 넷플릭스 드라마를 추천하는데 그거 시즌 하나만 해도 몇일이 걸리는 시청시간이란다. 인기 드라마를 다 몰아보는건 무리다.

도는 사람들 -23.9.19.(화)

도는 사람들 -박원주- 시간은 흐른다는데 왜 도는 것 같을까? 시계가 돌고 사계절이 돌고 지구도 돌고 인생도 돌고 너도 돌고 나도 돌고 돌겠네 잘 돌다 멈추면 끝장난다기에 모두가 멈추지 않고 돌고 돌고 어지럽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돌고 돌고 잘도 돈다 * 더운 베트남도 선선한 가을 느낌이 왔다. 베트남의 겨울을 지내보면 난방 시설이 없어 10도에도 싸늘하게 느껴진다. 선선할 때를 누려야지

간절한 뿌리 -23.9.18.(월)

간절한 뿌리 -박원주- 허공에서 뿌리가 내린다 간절함이 자란다 언젠가는 닿을 지면을 향해 실처럼 가느다란 기도를 내린다 허공에서 뿌리를 내린다 절박함이 자란다 언젠가는 뭍힐 지면을 행해 애타는 손짓처럼 눈물을 흘린다 간절한 기도야 절박한 기도야 다시금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려다오 젖어버린 바다를 향해 잃어버린 꿈들을 향해 지면의 살결을 향해 따뜻했던 향수를 향해 다시금 뚫고 뚫어 울부짖으며 자라다오 * 베트남은 나무들마다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

잘 돌아 가시었다 -23.9.17.(일)

잘 돌아 가시었다 -박원주-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인생이 있다 않과 못의 차이일 뿐 어쩌면 우리는 죽지 않아서 사는 걸지도 모른다 유종의 미는 내가 결정하지 않고 와서 다행인 걸까? 죽어서 끝나버린 한 공소장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생의 끝자락들이 굿판을 마친 천조각처럼 횡한 하늘위로 나풀거리며 흩어진다 “잘 돌아 가시었다.” 그렇게 기나긴 한 여정을 끝맺는구나 “잘 놀다 갑니다요” 답변도 못 듣고 그렇게 기나긴 한 여정을 끝맺는구나 * 친지분이 돌아갔는데, 어찌 시골분들은 잘 돌아가셨다는 말이 덕담이 되어버린 걸까?

딸의 생일날 -23.9.16.(토)

딸의 생일날 -박원주- 아직은 케이크 촛불을 좋아하는 딸에게 계속 촛불을 껏다 켰다 노래를 불러준다 이렇게 항상 기뻐하거라 케이크의 달콤함처럼 생일날 노래소리처럼 촛불이 꺼진 후 일상을 걸어도 항상 생일날을 추억하며 또 다시 올 생일을 고대하며 매일 컸다 켜지는 태양의 촛불을 감사하며 매일 행복하거라 * 어린 딸은 생일날 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몇번을 켜고 끄고 노래부른다. 이런게 행복이겠지

나-각본, 연출, 배우 -23.9.15.(금)

나-각본, 연출, 배우 -박원주- 각본을 짜고 외우고 또 외운다 레디~컷! 현실은 어버버버~ 내가 짜도 난무하는 애드립 어쩔 그래서 신은 마음 편히 자유 의지란걸 줬는지도 모르겠다 “너 맘대로 살아 나도 컨트롤하기 힘들다” 카메라 앞 울고 웃던 배우의 표정들과 흘러가버리던 대사 하나하나가 별처럼 반짝대다 은하수처럼 찬란해진다 내 대본대로 내 연출대로 안되는 건 나란 배우에게 매일매일이 첫 연기라 그런거겠지? 내 인생이 첫 영화라 그런거겠지? * 오늘 티비 인터뷰를 했는데 미리 준비한 자료를 외워도 버벅 거리는 나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드네

쪼개진 조각 -23.9.14.(목)

쪼개진 조각 -박원주- 처음 나(무)는 반듯한 배경에 깔끔한 터전에 아름답게 자라길 바랬었지 점점 부서지고 깨지고 밟히면서 나(무)의 터전은 어느새 여기저기 널부러져 버렸지 사실 나(무)의 마음대로 터도 배경도 선택할 순 없었어 이젠 맞추기도 되돌리기도 힘든 깨진 조각과 함께 그냥 그려려니 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지 그런 시간을 나(무)는 버텼어 얼마쯤일까 깨진 타일 사이로 빗물이 스미고 깨진 틈 사이로 햇살이 비치더군 그때 나(무)는 흘러간 세월을 꼽씹어 보개됐어 자연은 항상 나(무)를 향해 오고 싶었나봐 나(무)가 꿈꾸던 기준들이 다 깨지고 벌어질 때에야 나(무)에게 비치고 스미며 나(무)를 더 자라고 꽃피게 했지 나(무)가 바라던 것보다 더 아름답게 말이야 이젠 주변에 깨진 조각들로 힘들어 하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