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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사람들 -23.9.19.(화)

도는 사람들 -박원주- 시간은 흐른다는데 왜 도는 것 같을까? 시계가 돌고 사계절이 돌고 지구도 돌고 인생도 돌고 너도 돌고 나도 돌고 돌겠네 잘 돌다 멈추면 끝장난다기에 모두가 멈추지 않고 돌고 돌고 어지럽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돌고 돌고 잘도 돈다 * 더운 베트남도 선선한 가을 느낌이 왔다. 베트남의 겨울을 지내보면 난방 시설이 없어 10도에도 싸늘하게 느껴진다. 선선할 때를 누려야지

간절한 뿌리 -23.9.18.(월)

간절한 뿌리 -박원주- 허공에서 뿌리가 내린다 간절함이 자란다 언젠가는 닿을 지면을 향해 실처럼 가느다란 기도를 내린다 허공에서 뿌리를 내린다 절박함이 자란다 언젠가는 뭍힐 지면을 행해 애타는 손짓처럼 눈물을 흘린다 간절한 기도야 절박한 기도야 다시금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려다오 젖어버린 바다를 향해 잃어버린 꿈들을 향해 지면의 살결을 향해 따뜻했던 향수를 향해 다시금 뚫고 뚫어 울부짖으며 자라다오 * 베트남은 나무들마다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

잘 돌아 가시었다 -23.9.17.(일)

잘 돌아 가시었다 -박원주-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인생이 있다 않과 못의 차이일 뿐 어쩌면 우리는 죽지 않아서 사는 걸지도 모른다 유종의 미는 내가 결정하지 않고 와서 다행인 걸까? 죽어서 끝나버린 한 공소장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생의 끝자락들이 굿판을 마친 천조각처럼 횡한 하늘위로 나풀거리며 흩어진다 “잘 돌아 가시었다.” 그렇게 기나긴 한 여정을 끝맺는구나 “잘 놀다 갑니다요” 답변도 못 듣고 그렇게 기나긴 한 여정을 끝맺는구나 * 친지분이 돌아갔는데, 어찌 시골분들은 잘 돌아가셨다는 말이 덕담이 되어버린 걸까?

딸의 생일날 -23.9.16.(토)

딸의 생일날 -박원주- 아직은 케이크 촛불을 좋아하는 딸에게 계속 촛불을 껏다 켰다 노래를 불러준다 이렇게 항상 기뻐하거라 케이크의 달콤함처럼 생일날 노래소리처럼 촛불이 꺼진 후 일상을 걸어도 항상 생일날을 추억하며 또 다시 올 생일을 고대하며 매일 컸다 켜지는 태양의 촛불을 감사하며 매일 행복하거라 * 어린 딸은 생일날 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몇번을 켜고 끄고 노래부른다. 이런게 행복이겠지

나-각본, 연출, 배우 -23.9.15.(금)

나-각본, 연출, 배우 -박원주- 각본을 짜고 외우고 또 외운다 레디~컷! 현실은 어버버버~ 내가 짜도 난무하는 애드립 어쩔 그래서 신은 마음 편히 자유 의지란걸 줬는지도 모르겠다 “너 맘대로 살아 나도 컨트롤하기 힘들다” 카메라 앞 울고 웃던 배우의 표정들과 흘러가버리던 대사 하나하나가 별처럼 반짝대다 은하수처럼 찬란해진다 내 대본대로 내 연출대로 안되는 건 나란 배우에게 매일매일이 첫 연기라 그런거겠지? 내 인생이 첫 영화라 그런거겠지? * 오늘 티비 인터뷰를 했는데 미리 준비한 자료를 외워도 버벅 거리는 나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드네

쪼개진 조각 -23.9.14.(목)

쪼개진 조각 -박원주- 처음 나(무)는 반듯한 배경에 깔끔한 터전에 아름답게 자라길 바랬었지 점점 부서지고 깨지고 밟히면서 나(무)의 터전은 어느새 여기저기 널부러져 버렸지 사실 나(무)의 마음대로 터도 배경도 선택할 순 없었어 이젠 맞추기도 되돌리기도 힘든 깨진 조각과 함께 그냥 그려려니 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지 그런 시간을 나(무)는 버텼어 얼마쯤일까 깨진 타일 사이로 빗물이 스미고 깨진 틈 사이로 햇살이 비치더군 그때 나(무)는 흘러간 세월을 꼽씹어 보개됐어 자연은 항상 나(무)를 향해 오고 싶었나봐 나(무)가 꿈꾸던 기준들이 다 깨지고 벌어질 때에야 나(무)에게 비치고 스미며 나(무)를 더 자라고 꽃피게 했지 나(무)가 바라던 것보다 더 아름답게 말이야 이젠 주변에 깨진 조각들로 힘들어 하진 않..

무리한 이별 -23.9.13.(수)

무리한 이별 -박원주- 떠나는 이에게, 잘 떠나라 하는 건 더 잘하라 하는 건 더 웃으라 하는 건 더 애쓰라 하는 건 잘 지내라 하는 건 다 무리한 요구겠지.. 홀가분히 떠나도록 떠나는 이는 그냥 두자 무언가를 더 바라는 건 미련이란 미련한 짐 한짐 지워 보내는 거지 언젠간 추억할 이야기라도 생각나게끔 흘러간 유수처럼 흘러가는 시간처럼 흘러갈 우리처럼 말없이 포옹없이 나로부터 너를 유유히 흘려 보내자 * 동료가 퇴사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게 좋을지 고민이된다. 그냥 두는 게 그나마의 추억을 잘 보듬는 거겠지

태초의 선물 -23.9.12.(화)

태초의 선물 -박원주- 세상에 수많은 꽃이 피었다. 저마다 핀 모양도 색도 향기도 다르다. 열리는 열매도 저마다 맛이 다르다. 세상에 무수한 사람처럼 신기하게 겹치는 캐릭터가 없다. 어떤 것은 꽃밭침, 어떤 것은 씨방을 먹는단다. 이름을 떠올리면 같이 떠오르는 저마다의 색다른 설정들. 태초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미리 준 선물. 먼훗날 내가 껍질이라는 상자를 열면 그 속에 담긴 새콤달콤한 선물을 먹으며 미소지을 그 나를 생각하며 지은 선물. 나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어떤 맛을 선사하고 싶다. 껍질을 열고 음미할 멋진 맛을 안겨주고 싶다 과일처럼 꽃처럼 선물이 되고 싶다 * 베트남에서는 열대 과일을 싸고 맛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안빈낙도.씨ver -23.9.11.(월)

안빈낙도.씨ver -박원주- 사람도 해바라기씨를 먹는다 씨를 잇 사이에 세워 깨물면 하찮은 알맹이가 톡 튀어나온다 참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멍하니 다람쥐가 된 나를 본다 씨를 먹고 시간을 먹고 일정을 먹고 나를 갈아먹고 다람쥐처럼 한낮 씨앗에 자족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히 좋으다 사람으로 살기에 지쳤었나 보다 시간을 채우기 지쳤었나 보다 나를 들고있기가 힘들었나 보다 멍하니 그냥 쉬고 싶었나 보다 그냥 숨만 쉬고 싶었나 보다 가만 있어도 된다고 다독이고 싶었나 보다 * 출장에 휴일 근무에 여러 일정에 지쳤었나 보다. 카페에서 먹는 해바라기씨가 이렇게 좋다. 베트남은 15천동(800원) 정도면 해바라기씨 한봉지를 먹을 수 있다. 행복.

마피아 둘이서 -23.9.10.(일)

마피아 둘이서 -박원주- 도착. 건물은 웅장한데 문이 잠겼다 행사는 하는데 안내가 없다 하객은 있는데 주인이 보이질 않는다 노래는 부르는데 흥이 없다 인사는 해 놓고 잘 가란 말이 없다 탈출. 하나만 그러면 그려려니 하련만 연이어 그러면 그려려니 하게되네 심사가 꼬인 건가? 허깨비가 씌인 건가? 오해를 한 건가? 남에게 각박한 건가? 엉키고 설킨 실타래 세상 “너가 마피아 아냐?” “응? ... 깜빡했네” 내가 마피아라 생각해야 덜 이상한 세상사 섬짓하구만 *어느 곳을 들렀는데 그냥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그렇다고 그려려니 하려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