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결재
-박원주-
텍스트로 너를 보여다오.
딱딱한 화면 위에 한장의 편지를 쓴다.
흔한 그림 하나 이모티콘도 없이
내 목소리도 미소도 전해주지 못한 채
나를 어필해야하는 짧은 미팅이 시작된다.
“어디서 왔습니다.”
과거사를 발가벗겨 ‘관련 근거’라 둘러대고
축약된 텍스트 맨몸뚱이 하나로
간절히 간택되길 상소문을 올린다.
”안된다고 말하지마!“
짧은 편지 한장에 미련처럼 메아리처럼
덕지덕지 ‘붙임’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판결 이내 예, 아니오로 끝난다.
‘예’라는 답변은 당연한 ‘예’로 넘겨도
단순한 ‘노(No)’에는 분노가 치밀고
속좁게 이전의 노까지 끄집어내 불평을 쏟는다.
무사히 넘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까?
모든 걸 잃고 처음으로 리셋 할까?
도박처럼 행운처럼
한장의 종이에 운명이 걸렸다.
다음 결재자, 다음 결재자,
넘어가는 손가락만 빤히 쳐다본다.
딸깍!
오늘의 결론은 여기까지.
수고 많았다.
내일 기안은 내일 생각할련다. 끝.
* 밀린 기안들을 올리느라 근거문서랑 영수증 챙기고 오타 확인하며 올렸더니 오늘도 야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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