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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눈 -24.3.29.(금)

눈치 없는 눈 -박원주- 눈이 눈앞에 음식을 보더니 다리에게 달려가라 달려가라 손에게 먹여달라 먹여달라 입에게 씹어달라 씹어달라 다리가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손이 슬그머니 눈을 가렸다. 입이 혀로 눈을 씻었다. 눈이 꿈인지 생신지 눈동자를 굴리자 다리가 침대에 다소곳이 누웠다. 손이 눈을 비비며 불을 껐다. 입이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다. 눈치없던 눈은 그제서야 눈을 감았다. * 무리하게 일정을 만들고 무리하게 요청하는 사람이 있지만 관계가 있어서 안들어줄 수 없어서 처리해주니 나도 무리하고 있어서 무리한다.

거저받은 기념품 -24.3.28.(목)

거저받은 기념품 -박원주- 기억을 나누려 선물을 집었다. 기억이 짧아서 기념품에 적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좋아할지 어울릴지 수없이 고민하다가 엄청 바빴어 그게 없었어 변명만 주워담다가 결국 손에 기념품 하나가 들려있다. 그에게 건네주자 방긋 웃는다. 그래 사길 잘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선물이 쌓여있다. 매일 누군가가 전해준 선물들. 나그네처럼 살던 내가 거저 받은 선물들. 그래 살길 잘했다. 하나하나 풀어보다 하루가 다간다. 내일 또 받을 기념품 생각에 내일을 기다린다. * 여행을 떠나 돌아올때 어떤 선물을 사갈지 항상 고민이 많아진다.

마음 추상화 -24.3.27.(수)

마음 추상화 -박원주- 붓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무얼 그리는 게 아닌 내 마음을 그린다. 그리고 보니 어렵고 난해한 내 마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의도인지 물어도 답이 없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럴 뿐이다. 그냥 내가 그리 놓여있을 뿐이다. 왜 그런지 무엇 때문에 그런지 나도 모른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럴 뿐이다. 그냥 내가 그리 놓여있을 뿐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했을 때 그때쯤 비싸게 내 마음을 사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두겠지. 어느 마음에. * 호치민 통일궁을 둘러보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다. 사실 나도 의미를 모른다. 작가가 사라진 지금 그 모든 의미를 알까 싶다.

생각 접붙이기 -24.3.26.(화)

생각 접붙이기 -박원주- 너에게 내 생각을 접붙인다. 언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르고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긴 쉽지 않다. 그냥 머리를 바꿀까? 네 목을 멀뚱히 쳐다본다. 어디쯤 짜르면 될까? 그냥 머리 속 뇌를 바꿀까? 오해없이 편견없이 내 생각과 같은 네 생각은 언제쯤 네 머리 속에 자랄 수 있을까? 한참을 내 생각을 접붙이다 너무 색다른 네 모습을 보고 과연 내 생각이 잘 열릴지 고심의 겨울이 길기만하다. * 행사를 하는데 동시통역이 잘 안되서 말이 많았다. 내년에 동시통역은 사전에 미리 면접을 해봐야겠다.

재밌는 정치 -24.3.25.(월)

재밌는 정치 -박원주- 고민이 반복되고 역사도 반복되고 사람 사는 게 모두 비슷해서 내게 집중하다가도 사람들은 어찌사나 눈이 돌아간다. 이랬음 좋겠다 말하는 게 이렇게 좀 해라 불평하는 게 그만 좀 싸우라 투덜대는 게 아직도 그모양이냐 한숨짓는 게 어쩌면 내게 하고픈 말일지도 모른채 나도 어느새 정치인 다 되었다. 나도 어느새 정치가 재밌다. * 나이 드신 분과 말을 하면 모든 화제는 다 여당 야당 시시비비로 흘러간다. 정치는 재밌다가도 재미가 없다.

물꼬 -24.3.24.(일)

물꼬 -박원주- 바다를 만들기로 했다. 파놓은 획을 따라 계획한 깊이를 따라 물살이 흐르길 물길을 달랜다. 미리 밟으면 길이 되겠지. 좀더 수월히 지나가겠지. 익숙히 흘러가겠지. 어떤 간절함을 쏟으며 빈 바다를 채워나갔다. 물꼬야. 언젠가 물이 지날때 이리로 흘려다오. 내 그린 지문을 따라 날 잊지않고 내게로 그 물을 흘려다오. 파고 또 파고 밟고 또 밟으며 바람의 길이 한 소리가 되듯이 딱 내가 지날 그정도 물꼬를 이으며 파고 또 파고 살고 또 살고 어딘가 끝날 한 점을 향해 바다를 그어나갔다. * 일년중 가장 큰 행사 준비로 바쁘다. 시간과 동선을 체크하며 무사히 행사가 마치길 응원했다.

푸는 시간 -24.3.3.23.(토)

푸는 시간 -박원주- 푼다. 쌓인 코를. 푼다. 뭉친 몸을. 푼다. 생긴 문제를. 푼다. 꼬인 실타래를. 푼다. 갖힌 나를. 언제 쌓였는지 뭉쳤는지 생겼는지 꼬였는지 갖혔는지 모를 풀이들 푼다. 내 머리 속 긴 시간을. * 와이프에게 화를 낸걸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이야기하며 서로 풀었다. 항상 부족한 나를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아내에게 너무 고맙다.

하청업자의 시간 -23.3.22.(금)

하청업자의 시간 -박원주- 바다가 섬을 삼켜 버렸다. 바다를 벌하기로 했더니 바다가 강물이 잘못했단다. 강물은 냇물이 잘못했단다. 냇물은 실개울이 잘못했단다. 실개울은 비가 잘못했단다. 비가 구름이 잘못했단다. 구름이 하늘이 잘못했단다. 하늘이 땅이 잘못했단다. 땅은 사람이 잘못했단다. 사람들이 내가 잘못했단다. 내 잘못이란다. 억울하게 옥에 갇히면 어찌할꼬 했더니 속에서 내 잘못이 아니란다. 날 이리 키운 부모 잘못이란다. 부모를 그리 키운 할매 할배 잘못이란다. 아담과 하와 잘못이란다. 모두 신의 잘못이란다. 바다는 죄로 넘실대는데 아무도 바다를 탓할 수 없었다. 모두가 죄인이기에 바다에 뛰어들 수 없었다. * 행사 준비를 하면서 기관들마다 요청사항들을 반영하고 체크하려니 실수가 많다. 하지만 기관마..

그리고 또는 -24.3.21.(목)

그리고 또는 -박원주- 그리고 또는 그리고.. 나 또는 너 그리고 나.. 바다 그리고 땅 또는 하늘 그리고 별 또는 바람.. 존재들이 겹쳤다 흩어졌다 반복하고 있다. 존재들이 경계를 그었다 지웠다 파도치고 있다. 어디까지 육지인지 어디까지 바다인지 출렁이는 파도는 해변에게 답해주지 않았다. 서로를 넘어가 서로가 되었다가 다시 서로를 넘어가 남남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다 한 몸이라 껴앉았다가 우리는 다르다 갈라서 소리를 지른다. 나는 너를 해석하고 너는 나를 해석하고 읽은 서로를 다시 맞춰 보아도 그도 파도처럼 출렁이며 해변이 되었다. 정확한 걸 좋아한다 선을 그어도 어느새 출렁이며 우리를 부수고 해변이 되었다. 어디까지 너이고 어디까지 나이냐 여기저기서 두리번 거리던 눈동자들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