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445

하향 평준화 기술 -23.11.18.(토)

하향 평준화 기술 -박원주-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잠도 많아지고 단어수도 줄어들고 단순한 놀이를 반복하다 결국 같은 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이같이 젊어지지 않고 아이같이 순수해지지 않고 아이같이 밝지도 않은 걸 보면 세상은 참 하향 평준화하는게 기술인가 보다. * 아이랑 같이 주말을 보내다보면 나도 애가 되었다.

고향엔 눈이 왔다는데 -23.11.17.(금)

고향엔 눈이 왔다는데 -박원주- 고향엔 눈이 왔다는데, 어머니 잘 지내시죠? 베트남은 이제 가을이라 선선하기만 합니다. 가끔 드는 가을 태양 빛에 옛 고향 생각이 문득 나네요. 고향엔 첫눈이 왔다는데, 어머니 무탈하시지요?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많습니다. 그래도 사고 없이 달리는게 신기합니다. 처음엔 낮설던 이방땅 야자수도 이젠 길가에 익숙한 가로수 같네요. 고향엔 첫눈이 왔다는데, 어머니 별일 없으시죠? 옛 추억처럼 첫눈이 눈가에 내리네요. 간밤에 소복소복 마당에 눈이 내렸었지요. 아궁이 군불에 익은 고구마도 까먹고 고양이 밟을 새라 온 마당을 휘 휘젖고서 동내 아이들 우르르 모아 온동네를 누볐지요. 눈썰매, 눈싸움, 눈사람, 썰매타기, 하루가 눈과 함께 내리고 하루가 눈과 함께 녹았지요. 고향엔 첫눈이..

약빨 인생 -23.11.16.(목)

약빨 인생 -박원주- 죽어가던 몸에 한발의 약이 슈류탄처럼 들어가 터진다. 몸 곳곳에 산탄이 박히고 죽음과 고통의 외다리 앞에서 이래 죽든 저래 살든 반반인 인생이 죽을 생각을 돌이켜 갑자기 살아보기로 한다. 죽어가던 몸이 약 한발에 사는구나. 메말랐던 몸이 약 한알에 사는구나. 쓰러졌던 몸이 약 한모금에 서는구나. 나도 약빨이 먹히어보자꾸나. 어디서 죽어버릴 인생에게 약 한알이 되어보자꾸나. 사막에 생수처럼 스미어 사라져도 누군가의 인생을 한번 적셔줄 눈물 한방울이 되어보자꾸나. 상처 하나에 목숨거는 세상에 피 한방울쯤 아까워 말자꾸나. *감기로 먹는 약이 한봉지에 알약이 7개나 된다

몸보신 제사상 -23.11.15.(수)

몸보신 제사상 -박원주- “몸에 좋은 거니 먹자” 중후한 냄비는 도자기공이 자신을 빚듯 정성껏 대추를 띄우고 버섯을 우리며 물이 포도주가 되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천년 묵은 지네를 위해 산채 바쳐진 제물처럼, 누군가의 진액을 마셔야 사는 드라큘라의 전설처럼, 몸에 좋다는 건 다 때려넣고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우리고 있다. 불쌍한 몸에 좋은 거사. 가엾은 몸에 좋은 거사. 한곳에서 땅만 먹고, 사시사철 시간을 먹고, 희귀함을 먹고 자라나선,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있던 야민인에게 결국 잡아 먹히고 마는구나. 몸에 좋으면 뭐든 먹겠다는 야만인은 오늘도 몸의 식탐을 위해 싱싱한 제물들을 찾아 해메이는데 멋모르는 중생들은 헬스다 비타민이다 싱싱한 제물 가꾸기에 여념이 없구나. * 보약 느낌나는 샤브샤브 집에..

구미호 속마음 -23.11.14.(화)

구미호 속마음 -박원주- 속마음을 꺼내어다오. 내가 억지로 꺼내면 네가 아플 속마음 이야기. 따끈따끈 심장에 담긴 속마음을 들려다오. 구구절절 겉마음은 세상 아까운 시간낭비. 수식 붙은 머리는 자를게. 사족 붙은 꼬리도 자를게. 알짜배기 몸통에서 갖 꺼낸 싱싱한 진실만 내 입에 넣어다오. * 쌍방간 이야기는 들어봐야 안다. 출장 다녀온 동려들의 비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속좁은 지구인 -23.11.13.(월)

속좁은 지구인 -박원주- 누구는 우주를 여행한다 하고 누구는 화성에 이주한다 하고 누구는 다른 우주를 발견하려 떠난다 한다. 난 항상 지구에만 살아 그런지 생각이 지구에만 머물러 있었다. 유한한 내 인생을 지구를 치며 반성했다. 우주는 저렇게 무한한데 이 좁디좁은 지구에서 성공하랴 쟁취하랴 아둥바둥 내 속이 너무 좁았다. 내 곁에 진정한 친구를 두고 참 좀생이 같이 살았다. 내 이웃은 우주였다. “누가 진정한 내 이웃이겠느냐?” “너도 그렇게 하라” “반갑다. 우주야!” * 일론 머스크는 다행성 종족을 만드는게 꿈이란다. 그런 설레이는 꿈은 우주라는 거대한 플로그에 꽂혔을때 가능하다. 나도 우주에 플러그인하자

비슷비슷 양찾기 -23.11.12.(일)

비슷비슷 양찾기 -박원주- 양을 잃어버렸다. 조금전 함께 있던 양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잃은 양을 찾으러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나. 가까스로 양을 찾아 안으며 가쁜 숨을 고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잠시뒤 다른 양들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관심에 잃은 양이 한두마리가 아니다. 양을 다 찾을 수 있을까? 양을 다 알 수는 있을까? 양을 다 알고는 있을까? 양들은 어떻게 생겼었나? 하루가 시작될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주었던 양을 떠올리고 내가 어릴적 갖 낳은 양도 떠올리고 초중고, 대학, 군대, 지금까지 내게 있던 양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긴가 민가 내 양들을 세고 또 세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신기하게 내가 기억한 양들은 모두 다음날 우리에 들어와 있었다. * 엘베에서 아이가 갑자..

시간의 보폭 -23.11.11.(토)

시간의 보폭 -박원주- 시간이 안 간다. 놀때는 그렇게도 빨리 가던 시간인데 흘려보내려 애를 쓰면 써도 써도 안간다. 왜 느려진 것일까? 똑같은 시간인데. 왜 힘겨운 것일까? 소중한 시간인데. 왜 기쁘지 않을까? 바뀐건 없는데. 바쁘게만 지내서 느린 게 이상한가? 즐거움만 쫒아서 힘든 게 이상한가? 모으고만 살아서 퍼주는게 이상한가? 가지않는 시간에 보폭을 맞춰도 느려지는 호흡에 심장을 맞춰도 시간이 안 간다. 시간이 참 안 간다. * 주말에 아이랑 놀아주는 시간은 참 안간다. 주말에 나혼자 놀던 때는 참 금방 주말이 갔었는데ㅎ

딱 0 맞추기 -23.11.10.(금)

딱 0 맞추기 -박원주 돈이 없으면 거지가 생기고 돈이 많으면 욕망이 생기고. 힘이 없으면 치욕이 생기고 힘이 남으면 교만이 생기고. 시간이 없으면 불안이 생기고 시간이 남으면 잡념이 생기고. 부족해도 문제, 남아도 문제. 딱 맞추긴 힘든 세상, 예측이 어렵다. 몇개 되지도 않는 내 소유를 꺼내 이리저리 테트리스를 끼워 맞춘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이 남을려나? * 간만에 시간이 남아도 잡념이 다가오지 않게 열업을 했다

아무일 없는 하루 -23.11.9.(목)

아무일 없는 하루 -박원주- 하루가 끝났는데 아무일도 없었다. 아무일이 없이 하루가 끝나도 되는걸까? 내가 뭔가 놓친 건 아닐까? 아직 어제 하루가 조금 남은건 아닐까? 좋은? 이상한? 나쁜?의 어디쯤 일까? 감사한? 평범한? 지루한?의 어디쯤 일까? 하루가 끝났는데 아무일도 없었다. * 아무일이 없이 하루가 끝나도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