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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졌다 -23.12.8.(금)

내가 졌다 -박원주- 불쑥 튀어나온 게시물 하나에 눈과 손가락이 홀려 따라간다. 클릭 한번에 각본은 뇌리에 전사되고 대리만족과 상상의 세계로 날 데려간다. 하나뿐인 몸뚱이, 한번뿐인 인생,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는 이곳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떨까? 나도 저러면 어떤 느낌일까? 설레일까? 짜릿할까? 황홀할까? 더 더 더더더. 마지막 게시물의 손짓에 아쉬운 듯 흘러내린 침을 닦는다. 절정을 향해 달리다 끝나버린 사랑처럼 모니터에 비친 날 쳐다보며 한마디 불쑥 내뱉는다. “에잇. 또 낚였네.” “내가 졌다.” *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을 안 할수는 없지만 쓸데없이 인터넷 하는 시간은 줄여야겠지.

망각의 즐거움 -23.12.7.(목)

망각의 즐거움 -박원주-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어제의 괴로움을 잊고 새로운 태양을 맞아서이고, 이곳을 지낼 수 있었던 건 이전의 익숙함을 잊고 새로운 곳을 정착해서이고, 그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건 이전의 사랑을 잊고 새로운 가슴으로 채워서이고, 나를 견뎌 살 수 있는 건 과거의 나를 잊고 새로운 나를 살아서이다. 난 매일 사탕처럼 까먹는 망각이 즐겁다. * 잘 잊는 거는 참 즐거운 일인데, 오늘이 결혼 기념일인 것도 까먹고 퇴근해서 와이프에게 많이 미안했다.

회식 별자리 -23.12.6.(수)

회식 별자리 -박원주-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사람들은 외로운 별되어 하나둘씩 까만 하늘로 올라간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별들은 은하수 강가에 모여 앉아 하나둘씩 사연을 풀어놓는다. 흘러가는 많은 물소리처럼, 모내기철 물 만난 개구리처럼, 조잘재잘 이별 저별 사연을 담았다 비웠다 흘러간다. 시끄러운 이야기는 아득히 멀다. 빛으로도 몇년 걸리는 곳에서 먼 옛날 이야기들을 재잘거린다. 그래서 속마음을 듣는데는 몇년이 걸리나보다. 그래도 속마음을 들려줘서 후련한가보다. 별들은 아득히 먼 은하수 강가에 앉아 내 이야기도 들려달라 재잘댄다. 그러나 밤하늘은 고요하기만 하다. 여기까지는 어떤 소리도 바람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반짝이는 눈망울로 날 내려다볼 뿐이다. 까만 밤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냥 반짝일 뿐이다. ..

반복 연습 -23.12.5.(화)

반복 연습 -박원주- 1편 수영: 헤엄치고 또 헤엄치면 물에 잘 뜰까? 축구: 차고 또 차면 골을 잘 넣을까? 골프: 치고 또 치면 공이 잘 맞을까? 2편 업무: 일하고 또 일하면 일이 끝날까? 사업: 벌고 또 벌면 부자가 될까? 사랑: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날 사랑할까? 3편 인생1: 살고 또 살면 잘 살까? 인생2: 살고 또 살면 내일 죽지 않을까? 인생3: 살고 또 잘 살면 죽은 후 다시 살까? * 골프 기본자세 반복 연습을 하는데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 채 잡는 것도 다르고 자세도 기마자세가 아니다.

포로 -23.12.5.(월)

포로 -박원주- #땅. 전쟁터 같은 일상을 날다 한발 총성에 격추 되고 말았다. 죽음을 향해 낙하하는 몸뚱이를 간신히 낙하산으로 붙들어 맨다. #무리. 웅성대는 아래 세상엔 내 편이 없구나. 바로 죽거나 고통스럽게 죽거나 문드러져 고통도 모르고 죽거나. 정해진 죽음을 맞기엔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됐다. #시선. 어떻게든 천천히 내려가자. 어떻게든 해맑게 내려가자. 내 발이 죽음에 닿기 전엔 희망으로 절망을 최대한 막아보자. #도박. 자유가 자유가 아닐지라도 죽음보다 나을꺼란 희망을 걸었다. 내일이 내일 오지 않을지라도 오늘보다 나을꺼란 희망을 걸었다. #포로. 포로가 되었다. 먹고 자고 싸고, 본능조차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난 무얼 할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난 무슨 의미가 있을..

내가 선악과 먹지 말랬지! -23.12.3.(일)

내가 선악과 먹지 말랬지! -박원주- 내가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고 먹지 말랬지! 왜 죽냐구? 신(神)인 내가 죽는다고 했으니까. 너가 네 뿌리에서 떠나버렸으니까. 죄는 맛보면 결국 죽어야 끝나니까. 왜 거기 뒀냐구? 선악과랑 생명나무랑 같이 둔 건 알지? 넌 그 중에서 지혜와 죽음을 선택했지. 왜 그냥 뒀냐구? 넌 로보트가 아니야. 무얼 먹고 안 먹곤 네 자유지. 널 조정하는 건 아무 의미없어. 왜 명령 했냐구? 엄마가 아이에게 명령하는 거지. 널 위해서 내 말을 기억하고 지키라는 거지. 이제 어떡할꺼냐구? 너무 걱정하지마. 내겐 아직 생명나무가 많아. 언제든 내게로 와. 항상 널 기다리고 있을께. * 선악과는 알면 알 수록 그 이야기가 참 재밌다.

완벽한 격리 실험 -23.12.2.(토)

완벽한 격리 실험 -박원주- 인간(人間)에게서 간을 뺐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선 절대 아니되느니라.” 거대한 대의명분은 병든 나를 정죄하고 가두었다. “어라? 간만 빼니 살만한가보지?” “음.. 저걸 어떻게 진짜 격리시키지?” 혼자 있다고 격리된게 아닌 걸 들켜버렸다. 공간의 문제가 아닌 걸 간파당해 버렸다.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을 다 빼앗을 작정인 것이다. 의로운 Job에게 닥쳤던 고난이 내게도 허락되었다. 진정한 격리 실험. 고문이 닥쳐!얻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게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 가족, 여행, 맛집, 운동, 자연, 카페.. 내가 이런걸 좋아했구나. 내가 이런데 시간을 많이썼구나. 내가 이때 많이 웃고 즐거웠구나. 난 날 즐겁게 해준 세상에 얼마나 기쁨을 줬을까? 난 ..

바이러스 족보 -23.12.1.(금)

바이러스 족보 -박원주- 독감 바이러스의 족보라. 내가 기침을 시작할 때에 11.1.쯤 되니라. 아는 대로는 아내의 바이러스요. 아내의 위는 딸이요. 딸의 위는 딸의 친구요. 딸의 친구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위는 딸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친구요. ...의 위는 아담이요.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라. 하나님. 바이러스는 제발 만들지 마시지. 콜록콜록. 바이러스 먼저 지옥에 보내주시지. 콜록콜록. 바이러스부터 착하게 살게 해주시지. 콜록콜록 예수님. 백신부터 좀 보내주세요. 콜록콜록. 아멘. 콜록콜록. * 기침이 계속 나서 병원에 가니 독감래서 당황했다.

무림 고수 하산기 -23.11.30.(목)

무림 고수 하산기 -박원주-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해선 초식을 마스터 해야 하산할 수 있다 초식1 : 몸 만들기 - 수영, 헬스, 요가, 필라테스, 크로스핏.. 초식2 : 공 다루기 - 축구, 농구, 배구, 탁구, 야구.. 초식3 - 도구 다루기(돈 쓰기) - 골프, 승마, 요트, 스쿠버다이빙, 카레이싱.. 하산의 길이 멀구나. * 골프 배우겠다고 프로에게 기본 똑딱이 자세를 배우는데 허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났다

요철과 굴곡 의 미 -23.11.29.(수)

요철과 굴곡 의 미 -박원주- 우리 모두가 곧지 않네. 다들 모난 요철과 굴곡을 지니고 사네. 왜 곧지 않느냐. 왜 모가 났느냐. 왜 돌고 돌아 가느냐. 굴곡진 해안선처럼 오르락 내리락 주가처럼 꼬였다 풀렸다 반복하는 인생길처럼 모두가 들쑥날쑥 요철을 품고 사네. 굴곡진 인생은 참 험난했었네. 이유도 모른채 굽이치는 기울기는 온전히 내가 운전대를 잡고 달려야했네. 꼬이고 꼬여서 어떻게 풀지도 몰랐지. 끊어버리고 끊어버리고 싶은데 끊어지지도 않았지. 누군가 리셋시켜 주길 간절히 기다렸었지. 굴곡은 곧아지기는 커녕 얼룩덜룩 울퉁불퉁 또다른 요철을 세기고 있었지. 언제 굴곡이 펴질까? 지금 회개하면 펴질까? 한번 회개하면 다 곧아질까? 계속 회개할 필요는 없는걸까? 언제것까지 회개해야 없어질까? 뭔가 찝찝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