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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실록 -23.11.28.(화)

감염 실록 -박원주- 세상에 역병이 돌았다. 죽을 뻔한 고비들을 넘겨 오늘까지 왔구나. 작은 기침에도 ‘이 놈의 전투력은 어느정도일까?’ 끓는 가래에도 ‘별일은 없겠지?’ 작은 미열에도 주마등 같은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역병이 지나가고 나는 또 감염되고 끙끙 앓고 몸과 영혼은 너덜너덜 상처 투성이가 된다. 팔 하나 다리 하나 잃지 않아 다행이다. 돌거나 미치거나 좀비가 되지 않아 다행이다. 비염, 천식, 이명, 대상포진.. 연대기 역시처럼 동고동고 많구나. 상처와 후유증은 어느새 내 모습, 습관, 성격, 정체성, 내가 되었다. 세상에 또 역병이 돈다. 유행처럼 이 감염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을까? 이전에 날 감염시킨 한 습관처럼 내 아픔도 내 상처도 멋진 타투가 되어라...

밤(夜) 산책 -23.11.27.(월)

밤(夜) 산책 -박원주- 어둠이 내린다고 바로 밤이 오지 않네 눈을 감는다고 바로 잠이 오지않네 밤을 맞으러 떠나야 하네 아직 누이지 않은 몸뚱이를 누이고 아직 감지 않은 눈동자를 덮고 아직 꺼지지 않은 생각을 하나씩 끄고 아직 뛰는 심장은 잠시 멈추고 잠을 맞으러 떠나야 하네 그러다 죽으면 어쩌나 내일 못 일어나면 어쩌나 내일 고민은 내일 하고 오늘은 이만 죽어야하네 긴 동면 후 깨어날 개구리처럼 내일 또 새아침이 밝으면 투명한 눈동자를 한바퀴 굴리고 잘 잤다 기지개를 켜면 선물같은 새 몸을 입고 콩닥콩닥 새 심장이 뛰어다닐걸세 텅 빈 어두움 속에 눕는 걸, 마지막 남은 의지로 두 눈을 감는 걸, 끝내 놓치 못한 이성의 필름을 끊는 걸, 멈추지 않던, 멈출 수 없었던, 멈추면 안 되는 이 두근대는 심장..

신이 못하는 것들 -23.11.16.(일)

신이 못하는 것들 -박원주- 우주와 법칙과 생명까지 만든 전능한 신이 못하는 게 있단다. 무얼까? 전능한 신은 죽을 수 없단다. - 자신의 정의나 속성을 거스를 수 없겠지. 약속의 신은 자신이 뱉은 말을 어길 수 없단다. - 신이 인간에게 던진 말들은 결국 족쇄가 되었지. 착한 신은 죄나 악을 저지를 수 없단다. - 거짓말, 사기.. 현실의 절반쯤은 할 수가 없지. 사랑의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 수 없단다. -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일을 막을 수 없지. 결국 전능한 신도 전능하지 않았네. 그래서 그런지 좀 짠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 오늘 새신자반에서 예수님에 대해 배우다가 신이 못하는 게 먼지 나에게 물어봐서 당황해서 어버버했다.

꼭 뭘 해야하는건 아냐 -23.11.25.(토)

꼭 뭘 해야하는 건 아냐 -박원주- 매일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쉬면 일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무얼 해야 하는건 아닌가? 어딜 나가야 하는건 아닌가? 무얼 먹어야 하는건 아닌가? 먹는 일도 일감이 되고 노는 일도 스케줄이 되어 버린다 쉬어도 돼. 자도 돼. 아무것 안해도 돼. 일하는 인간의 비애는 쉬지 못하는 관성에 있다. 간만에 웃다 놀다 자다 부시시 일어나 훌쩍 져버린 태양에 화들짝 놀라 애처럼 줄줄 흘려버린 시간을 주워담는다 괜찮아 아무일 안해도.. 괜찮아 잘못해도.. 괜찮아 그냥 쉬어도.. 하루하루 나로서, 누군가의 옆자리로서 살아있는 게 가장 큰 일이고 가장 큰 보람이였어. 이젠 좀 쉬는데 익숙해지자. * 주말 아이랑 놀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손가락으로 쓴 글씨 -23.11.24.(금)

손가락으로 쓴 글씨(요8:1-11) -박원주- 주님. 음행하다 잡힌 나와 함께 하셨던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돌로 치라 외치던 무리중에 날 구해주신 그 구원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정죄하는 이들 뿐인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신 그 창조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죽음을 넘나들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적고 계시던 주님. 혈서를 쓰듯 피로 죄를 알리려 하셨나요? 말로 천지를 창조하듯 글로 무얼 창조하고 계셨나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우리 죄를 세어보고 달아보고 찢으려 한건 아닌가요? 여러 상상과 고민들이 뿔처럼 자라다가도 침묵하신 그 주님의 생각과 고요속으로 내 생각과 행동을 내려놓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나도 널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주님..

난 아무렇지 않은데 -23.11.23.(목)

난 아무렇지 않은데 -박원주- 난 고아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못배운줄 안다. 난 장애인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불쌍해 한다. 난 북한 사람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궁금한게 많다. 난 목사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거리를 둔다. 난 돌싱이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조심스러워 한다. 난 죽었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 사람들은 슬퍼한다. * 어떤 분은 초면이 돌싱이라고 밝히셨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어느선까지 남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방심하다 온 현타 -23.11.22.(수)

방심하다 온 현타 -박원주- 나는 직장인이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다 짜투리 시간에 잠시 쉰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정치 연예인 기사도 읽고 유튜브 발리 여행간 BJ 영상을 보며 우헤헤 하고 인스타에 올라온 헬스 사진에 대리만족을 하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레벨도 올리고 잠시 낮잠도 자며 피로도 풀고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현타가 왔다. 그나마 날위해 할애된 이 시한폭탄같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맞을까? 그러다 또 현타가 온다. 한번뿐인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무얼 위해 쓰고 있는 걸까? 또 무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그러다 또 현타가 온다. 인간이란 영장류로 태어나서리 인생 대부분을 잠과 인터넷과 휴대폰과 기타 잡다한 것으로 보내는게 타당한 걸까? 저 숲속의 한마리 원숭이처럼 ..

사랑 오역해보기 -23.11.21.(화)

사랑 오역해보기 -박원주- 다른 나라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요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괜히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이예요 | |---------> 안녕하세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말을 쓰지요 같은 단어도 없고 순서도 길이도 다 달라요 번역기를 써도 오류가 많지요 사랑한다는 말도 처음엔 이상하게 발음될 거예요 아마 못찾는 단어도 있겠죠 그래도 눈빛, 표정, 몸짓, 친절은 통할 거예요 우리는 같은 사람이니까요 최대한 용기내서 진심을 전해보세요 사랑은 서로 다른 인생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죠 지금 눈앞에 선 그 사람의 인생 말이예요 그래서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역사도 공부하고 생물, 지리, 음악.. 배울게 많죠 에를 들면, - 태어나서 지금껏 어떻게 살았나 - 좋아하는 음식, 싫어..

마약 (My 惡) 끊기 -23.11.20.(월)

마약 (My 惡) 끊기 -박원주- 하루 24시간만 다짐하게 하소서. 절대 선으로 살 수 없는 내가 절대 악이라도 되지 않게 하소서. 선을 늘리고 악을 줄이며 그 노력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내가 되게 하소서. 내게 좋은 것(善)은 무엇인가요? 내게 도움이 되는 것. 나를 나되게 찾게 만드는 것. - 운동, 책, 산책, 자연, 명상, 그런 것이겠지요. 내게 나쁜 것(惡)은 무엇인가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나를 남처럼, 수많은 사람들처럼 만드는 것. - 티비, 별스타, 너투브, 잡터넷, 이런 것이겠지요. 내게 애매한 것(Medium)은 무엇인가요? 나에게 좋지도 니쁘지도 않은 것. 나를 현상 유지하고 살게 만드는 것. - 일, 가사, 식사, 일상, 그런 것이겠지요. 파도쳤던 오늘이 잠잠해지면, 내..

신과의 말싸움 -23.11.19.(일)

신과의 말싸움 -박원주- 선과 악이 파동치고 행복과 절망이 오가는 새옹지마의 인생길. 인간은 신에게,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는 겁니까?“ 따지고 신은 인간에게, “내 계획을 네가 다 알면 네가 신이냐?” 따진다. 둘 사이에서 누가 옳을까나? 인간이 틀렸다면 벼락 맞아 죽었을려나? 그런 쫌생이같은 신이라면 없는게 나을려나? 신은 영혼만 있다 하니 나중에 몸을 벗고 현피 떠서 판가름 해보자. * 욥기를 읽으면 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 신을 뜻을 해석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