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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하루 -24.2.16.(금)

시한부 하루 -박원주-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정오. 벌써 하루의 절반이 지났다. 하루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을 시간을 아는 건 다행이지만 곧 마칠 시한부 하루는 계속 침몰하고 있다. 죽음이 생각을, 생각이 오후를 점령하자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들은 파업을 선언했다. 우유부단했던 오전처럼 보낼 시간이 없다. 오전을 곱씹으며 반성할 여유도 없다. 새롭게 알차게 남은 반을 꾸며도 하루는 정해진 끝을 향해 계속 흘렀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자정. 눈을 감았다. 결국 오늘이 죽었다. 블럭 하나에 무너진 높다란 젠가처럼 작은 틈 하나에 터져버린 거대한 댐처럼 꽁초 하나에 다 타버린 울창한 숲처럼 원인 모를 찰나에 멀..

해부학 시간 -24.2.15.(목)

해부학 시간 -박원주- “거울아 거울아 이제 난 어떡하면 좋겠니?” 거울을 앞에 두고 싸인 나를 벗는다. 거울은 나를 제일 잘 알고있다. 벗은 날 많이 봐와서일까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하다. 벗고 싶어 하나둘 옷을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피부를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머리를 벗는다. 널부러진 나를 주섬주섬 헤집으며 해부학 시간에 쿵쾅대던 그 심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무얼 사랑하고 있니?’ 심장을 룰렛처럼 돌리며 어디를 향해 뛸지 묻는다. 돌고 도는 피처럼 돌고 도는 사랑은 정처가 없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머리를 알코올에 꺼냈다 담갔다 반복하며 머리에 쓰여진 글자를 읽어보려다 알코올에 흥건히 고인 여러 글자들을 건지며 남은 미련을 끼워맞춘다. ‘나는 무얼 느끼며 살고 있니?..

어린 싸움 -24.2.14.(수)

어린 싸움 -박원주- 아이가 내게 총을 겨눈다. 섣불리 다가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아이 눈치를 피해 총구를 피해도 즐거운 냥 날 따라 총구를 까딱인다. 갖은 애교로 설득을 해도 알턱없는 네살 아이는 웃기만 한다. “솜사탕!“ ”아이스크림!“ ”젤리!“ 아주 단순하고 협상 가능한 단어들을 발포한다. 아이는 총구를 내리고 머뭇거리다 현실성 없는 총알만 남발하는 날 째려보며 빵! 결국 내 심장을 맞춘다. 졌다. 다친 나를 눕히며 의사놀이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뽀뽀를 선사한다. * 말안 듣는 아이랑 싸우다 삐진 와이프를 보며 아이를 어찌 가르쳐야할지 참 고민이 많아진다.

앉을 자리 -24.2.13.(화)

앉을 자리 -박원주- 호수를 걸으며 이쁜 풍경을 보다 커피 한잔, 운치 한잔 할만한 앉을 자리를 찾는다. 여기? 아니다. 좀더 가보자. 여기? 아니다. 좀더 가보자. 결국 호수를 한바퀴 다 돌아버렸다. 다음에는 꼭 앉아야지. 다음에는 꼭 한잔해야지. 호수를 따라 서너잔 독백을 남겨두었다. 돌아가는 손목시계 초침을 보다 다음 여정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 서호 오른쪽으로 돌아 산책을 하니 그늘도 많고 카페도 많고 쩐꾸옥 사원도 구경하고 즐거웠다. 이쁜 카페에서 카피한잔 못한게 아쉽다.

절정의 고백 -24.2.12.(월)

절정의 고백 -박원주- 하늘로 올라간 폭죽은 펑! 절정의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아야 했다. 뜨겁게 달궈진 냄비는 약속된 온도에 끓어 맛난 요리가 되어야 했다. 벗겨진 다음, 핥은 다음, 반복된 다음, 쥬르륵! 터지는 과즙 캔디처럼 무덤덤한 여정도 절정을 지나 한 때의 추억이라 불려져야 했다. 절정없는 순간들은 기억도 흔적도 없는 어찌 먹었는지도 모르는 어느 밥맛 같았다. 즐거웠던 순간들은 웃음으로 피어야 했다. 뛰느라 고생한 심장에게 뛰느라 수고한 다리에게 웃음소리 한 발작 들려줘야 했다. 절정을 먹고 사는 나그네 인생에게 그 짧은 환희 후 주어지는 나지막한 쉼을 허락해야 했다. ”오늘도 재밌었어!“ 그 절정의 고백을 듣고 하루를 마쳐야 했다. * 뗏 연휴에 관광지가 문을 안 열었을까봐 갔던 유명한 곳..

사탕 까먹 -24.2.11.(일)

사탕 까먹 -박원주- 알 사탕도 까먹고 금 사탕도 까먹고 발렌타인 사탕도 까먹고 레알 츄루 핵 중요 사탕도 까먹고 모두 다 까먹어서 영구치 이빨 대신 반구치 인생이 썩었다. 마라탕!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목사님 말씀도 돌아서면 까먹고 중요한 일도 까먹고 망각이 일상이 되네. 목사님이 설교 때 마라나타 이애기를 하니까 아이들이 마리탕 이야기만 하는 수준같네.

하루살이 새해 -24.2.10.(토)

하루살이 새해 -박원주- 요란한 폭죽소리에 새해가 태어났다. 폭죽이 그치자 새해가 폭죽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고대하던 중생들이 십자가에 못박을 걸 알아서일까? 매년 부활한다 말해도 믿지 않아서일까? 찰나의 생을 마친 새해는 미련없이 과거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거리에 걸린 새해 메세지는 케케묵은 뉘우스가 되고 ”지구가 돌아 새해가 왔다“는 갈릴레이의 외침도 “당연한거 아닌가?” 묵은 김치 삭듯 시어 버렸다. 출렁이던 첫 흥분과 절정은 퍼지고 퍼지고 다시 잔잔한 일상처럼 고요해졌다. 새해는 헌해를 꺼내놓고 다시 져버렸다. 다시 밤을 맞은 마음에 해보다 달이 밝다. 새해는 언제쯤 내 마음에 두둥실 진짜 새해를 띄워줄려나? * 베트남은 구정이 새해의 기준이라 축하의 의미가 크다. 연휴도 길어서 일주일을 쉰다.

입맛 과녁 -24.2.9.(금)

입맛 과녁 -박원주- 뭐먹지? 서로의 입맛이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르고. 뭐먹지? 결국은 못 정한 채 냉장고 김치를 꺼낸다. 매끼니마다 반복되는 주관식 질문.. 정답없이 공백으로 빈속을 채운다. 뭐먹지? 입이 두개라 모든 입을 만족시킬 순 없구나.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메뉴 어때?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어때? 서로의 혓바닥에 세겨진 지문을 더듬는다. 네 혀를 보고 꿀꺽 삼키는 내 혀. 내가 맛있어 하는 너를 맛있어 하는구나. 맞아. 식당은 그저 혀가 맛날 굿판일 뿐이지. 메뉴는 그저 혀가 엉킬 주문일 뿐이지. 누가 땡기는 메뉴를 찰나에 주문해도 함께 즐기는 혓바닥이 정답기만 하구나. 이젠 서로의 입맛이 맛나는 메뉴로구나.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광란의 파티로구나. * 간만에 따히엔 맥주거리를 따라 ..

5일장 장바구니 -24.2.8.(목)

5일장 장바구니 -박원주- 간만에 선 5일장을 나서며 밀려오는 고민에 머리가 찰싹인다. 잘 산게 맞겠지? 맛없진 않겠지? 안먹고 버리진 않겠지? 많이 산 건 아니겠지? 들고가기 무겁진 않겠지? 냉장고에 다 들어가겠지? 혹시 부족하면 어쩌지? 뭐 빠뜨린 건 없겠지? 5일장 봇짐에도 고민이 이정도구나. 긴 인생 여정에 고민은 얼마나 많을려나. 장바구니를 싸고 고민을 이고 장바구니를 나르고 고민을 풀고 사소한 5일장에 인생짐 무게를 가늠해 본다. 적당히 싸야겠다. 완벽하지 말아야겠다. 내맘같지 않으니 놓아주며 가야겠다. 다시 장이 서기전 모든 짐을 비워야겠다. * 뗏 연휴가 일주일인데 마트랑 식당이 많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미리 미리 일주일치 장을 보았다.

오늘의 결재 -24.2.7.(수)

오늘의 결재 -박원주- 텍스트로 너를 보여다오. 딱딱한 화면 위에 한장의 편지를 쓴다. 흔한 그림 하나 이모티콘도 없이 내 목소리도 미소도 전해주지 못한 채 나를 어필해야하는 짧은 미팅이 시작된다. “어디서 왔습니다.” 과거사를 발가벗겨 ‘관련 근거’라 둘러대고 축약된 텍스트 맨몸뚱이 하나로 간절히 간택되길 상소문을 올린다. ”안된다고 말하지마!“ 짧은 편지 한장에 미련처럼 메아리처럼 덕지덕지 ‘붙임’들이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판결 이내 예, 아니오로 끝난다. ‘예’라는 답변은 당연한 ‘예’로 넘겨도 단순한 ‘노(No)’에는 분노가 치밀고 속좁게 이전의 노까지 끄집어내 불평을 쏟는다. 무사히 넘기고 안도의 한숨을 쉴까? 모든 걸 잃고 처음으로 리셋 할까? 도박처럼 행운처럼 한장의 종이에 운명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