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누가 누가 급하나? - 24.3.6.(수)

누가 누가 급하나? -박원주- 누가 누가 급하나? 똥누러 화장실 찾는 사람? 지진 나서 도망가는 사람? 다쳐서 응급실 가는 사람? 죽기전 유언 남기는 사람? 정답은? ‘내’가 제일 급하지:) 항상 상대보다 내가 더 간절하지. 근데 진짜 급한 일은 없어. 급한 탈을 쓰고 우릴 속일 뿐이지. 절대 세상에 급한 일이 없어. 모든 걸 신중히 천천히 처리해야지. 급하게 처리하다 수습한다 고생하지. 여유롭게 천천히 세상을 씹어먹어야지. * 내가 비자로 급하다고 담당자를 닥달하니 담당자는 그렇게 급하게 느끼지 못해 당황을 했다. 그래 세상에 급한 일이 어딧어 내가 급할 뿐이지.

조율중 -24.3.5.(화)

조율중 -박원주- 숲속에서 소리가 울린다. “네 소리구나.” 나도 함께 소리를 낸다. 네 소리가 점점 커진다. “괜찮아~” 네 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우리 서로 맞출까?” 크지도 높지도 않게 서로 소리를 맞춘다. 서로가 공명하는 적당한 화음. 아침 숲속에 새소리가 조잘댄다. * 행사로 주최 주관 본사 업체 참석자 모두의 의견과 목소리를 다 조율을 하려니 정신이 없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조율을 한다.

입장 차 -24.3.4.(월)

입장 차 -박원주-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가? 왜 규정을 지키지 않는가? 왜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가? 쯧쯔. 자기맘대로인 그들을 정죄했다. 왜 우리끼리 약속을 바꾸지 못하는가? 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가? 왜 옛 약속을 현재까지 고수하려 하는가? 쯧쯔. 유통성 없는 그들을 정죄했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할 여유가 없어서 자신만 보고 홀로 걸었을 뿐이다. 서로 보듬을 마음이 안 생겨서 우리가 더 높이 날지 못했을 뿐이다. 각박하게 살 필요는 없었지만 아직은 서로에게 믿음이 부족할 뿐이다. 옆 친구들에게. 나에게. * 회사 일을 하다보면 원칙주의자와 변칙주의자가 항상 충동한다. 서로가 해결보다 입장을 고수하기 시작하면 서로 피곤하다.

자연 치유력 -24.3.3.(일)

자연 치유력 -박원주- 물은 더러워져도 흐르고 흐르면 언젠가는 깨끗해졌다. 기억은 아파도 흐르고 흐르면 언젠가는 잊혀졌다. 스트레스도 쌓여도 흐르고 흐르면 언젠가 없어지겠지? 그렇게 흘려 보내지 못한 미련 그 붙잡은 손모가지를 자르지 못한 내가 그저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기만 하다. 단단한 바위가 고운 모래가 되듯 나를 짖누르는 무게가 부서지길 기도했다. 폭풍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오듯 나를 할퀴던 칼날들이 무뎌지길 기도했다. 이 간절한 기도조차 미련이 될까봐 눈을 번쩍 뜨고서 신을 보며 목청 귀청 마음이 쩌렁 울리게 간절히 외치며 기도드렸다. 흐르고 흘러 자연스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 주일인데 몸이 고된 정신없이 예배드리고 피로가 느적되었다. 마사지를 받고 좀 나아졌다.

왜 실전은 다른가? -24.3.2.(토)

왜 실전은 다른가? -박원주- 왜 실전은 다른가? 똑같은 환경같은데 왜 연습때랑 다른가? 왜 실전은 참혹하고 실상은 가혹한가? 장수가 칼솜씨로 전쟁을 이기려 했구나. 온실속 화초가 그냥 겨울을 맞으려 했구나.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공식으로 해결하려 했구나. 사랑을 이론으로 설명하려 했구나. 얼마나 다른지 부딪히지 않으면 모른다. 시야, 느낌, 상황, 관계, 심리.. 전쟁터의 피내음, 생로병사의 아픔..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깊은 바다, 망망한 우주..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실전의 상처로 장수가 태어났다. 다시 죽으러 나갈 용기가 장수를 만들었다. * 골프 필드를 나가면 연습 때와 다르게 공부터 안맞는다. 어떻게 치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공을 맞추겠다는 단순한 동물이 된다.

미련이 주웠다 -24.3.1.(금)

미련이 주웠다 -박원주- 거니는 풍경이 좋으다. 찬 바람에도 맞잡은 두손이 따뜻하구나. 맛나게 먹은 삼겹살을 계산하려는 찰나, 주머니 속 지갑이 사라져 버렸다. 모든 여정의 재구성. 기억을 더듬고 여정을 더듬고 모든 가망성을 열어두고 탐문을 시작한다. 잃은 건 내 죄지만 잠재적 범죄자들이 벌을 달게받는다. 떠난 지갑은 돌아오지 않았다. 주운 사람은 횡재했겠지? 사고가 없었으니 액땜했다 쳐야지. 여행 한번 다녀온 샘치고 잊어버려야지. 문득 소심한 마음이 기억을 들추자 미련이 잃은 지갑을 찾아버렸다. 머리가 지갑을 주워 집어넣자 죽은 지갑이 다시 살아나 버렸다. 지갑이 구천을 떠나지 못하고 머리 속을 헤맨다. 이젠 다시 지갑을 잃고 싶어도 잃어지지 않았다. *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돈만 들어서 찾을 방법이 없..

신처럼 쉬어라 -24.2.29.(목)

신처럼 쉬어라 -박원주-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은 신처럼 유종의 미를 쉼으로 장식하지 못했다. 고용한 신의 어명에 따라 노동의 저주는 가혹하기만 했다. 항상 일하라. 쉬지말고 일하라. 범사에 일하라. 거역의 인간이 쉼을 찾아나선다. 죽어야만 쉬는 운명 대신 인스턴트 쉼을 개척한기로 한다. 잠, 휴가, 방학, 퇴사.. 신이 누리던 쉼을 인간도 쟁취했다. 구속에서 벗어난 인간은 어디서나 쉬는 자유를 맛보았다.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호사를 누린다. 일해라 절해라 하는 모든 굴레를 끊고, 얽죄던 성과와 완벽주의를 끊고, 눈치와 코치를 요하던 모든 신경을 끊어버렸다. 자유를 넘어서 스스로 있는 존재로 짧은 휴가를 받은 신이 되었다. 짧고 굵게 안식했던 신을 누렸다. * 직원이 오늘부로 퇴사를..

오늘도 책임완수 -24.2.28.(수)

오늘도 책임완수 -박원주- 갖고 싶은 건 많지만 돈쓰긴 싫구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 책임지긴 싫구 내게 맞춰줬음 좋겠지만 잔소리하긴 싫구 확인했냐 말하지만 직접하긴 싫구 결정해라 말하지만 결정하긴 싫구 딱 그에 맞는 캐릭터를 그리며 “당신이예요“ 하면 “어머 이뻐라” 하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오케이. 오늘의 업무 끝. 오늘도 책임완수! * 일을 할때 생기는 책임 부분은 질질 끌면 일이 진행이 안되기에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야 일이 일사천리 진행된다.

대체 제물 -24.2.27.(화)

대체 제물 -박원주- 사랑이 그리워서 대타를 먹고 진짜가 그리워서 짝퉁을 먹고 기쁨이 그리워서 쾌락을 먹는다. 채워지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허전한 가슴이 지나던 가슴을 먹고 외로운 마음이 외로운 몸을 먹는다. 블랙홀이 우주를 빨아들이듯 욕망이 몸들을 집어삼킨다. 어디까지 가능하고 어디까지 허용될까? 무모한 식탐이 늘었다 줄었다 움직인다. 연극인지 실재인지 분간도 못하는 분신들이 널부러진 인격들을 삼키며 소화하고 있다. 낚시줄에 걸린 제물을 먹으려 몸이 쩍 벌리자 알알이 박힌 촉수들이 깨어나 춤추며 마지막 남은 몸뚱이를 산 제물로 바쳐버렸다. *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서빙하는 아이들이 심상치 않은 서비스를 한다.

비밀 오픈 -24.2.26.(월)

비밀 오픈 -박원주- 사랑하는 그대를 쪼갠다. 날 사랑하는 부분을 모으고 날 싫어하는 부분을 모으고 키질을 한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사랑사이로 사랑하지 않는 가루들이 부서져내린다. ‘아직은 사랑하는 조각이 많구나.’ ‘사랑하니까 비밀을 밝혀야지.’ “사실 난 ...” 한차례 지진이 지나가고 사랑하는 부분이 더 부서져내린다. 더 오픈해야할까? 더 오픈할 수 있을까? 그대가 날 떠나도 오픈해야할까? 아니 오픈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열었던 사랑이 사랑을 더 잃고 말았다. ”그건 비밀~“ 농담처럼 듣고 흘리는 비밀이면 좋겠다. 말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숨겨도 되고 오픈해도 되고 우리 사이 비밀이 사소했음 좋겠다. * 누군가에게 모든 사실의 진행 경과를 보고하는 건 책 한권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