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가을의 문턱에 눕다

가을의 문턱에 눕다 -박원주- 가을의 문턱에서 대돗자리를 꺼내 깔았다. 화석마냥 외로운 녀석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달빛이 이내 창가를 넘어와 뉘엿 내 곁에 다정히 눕는다. 눈이 부셔서 아래로 돌아 눕혔다. 까만 풀벌레 소리도 와서 눕고 애타게 우는 아기냥이 소리도 와서 눕는다. 빨리 애미냥이도 와서 누워야 할텐데. 다와서 쉬고 누워 잠들거라. 오늘 하루 수고함을 대나무의 살결은 알아 주겠지. 그내들도 속을 비우고 비우며 저 하늘을 채웠으니까. 이 펼친 돗자리는 여름밤 많이 넓고 저 은하수 많이 포근하단다. 어느덧 풀벌레 소리도 자고 아기냥이도 새록새록 잠들고 어미냥이도 와서 누웠다. 정겹게 모두가 둥근 지면에 누워 잠드는 이밤. 우리는 땅위에서 땅밑으로 가는 연습을 하지. 지평선처럼 평행하게 영혼을 누인..

풀벌레소리 흥얼대다

풀벌레소리 흥얼대다 -박원주- 가을밤 모퉁이서 풀벌레소리 들린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먼 소리일까 궁금해서 귀기울여 들어본다. "즐겁다. 즐겁다. 가을밤이라 즐겁다. 노래해서 즐겁고 시원해서 즐겁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돌림노래 이 노래만 불러 대샀네. 삶이 지치고 지루하지 않더냐? 뜨거운 내일의 태양이 걱정되지 않더냐? 어제밤 뚜꺼비가 또 온다고 하던데? 이 풀밭도 가뭄에 말라간다 카더라. 다가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꼬?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듣는듯 못듣는듯 또 찌르륵 노래하네. "즐겁다. 즐겁다. 가을밤이라 즐겁다. 노래해서 즐겁고 시원해서 즐겁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도돌이표 이 노래만 불러 대샀네.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나한테 사랑도 결혼도..

가을의 문턱에 눕다

가을의 문턱에 눕다 -박원주- 가을의 문턱에서 대돗자리를 꺼내 깔았다. 화석마냥 외로운 녀석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달빛이 이내 창가를 넘어와 뉘엿 내 곁에 다정히 눕는다. 눈이 부셔서 아래로 돌아 눕혔다. 까만 풀벌레 소리도 와서 눕고 애타게 우는 아기냥이 소리도 와서 눕는다. 빨리 애미냥이도 와서 누워야 할텐데. 다와서 쉬고 누워 잠들거라. 오늘 하루 수고함을 대나무의 살결은 알아 주겠지. 그내들도 속을 비우고 비우며 저 하늘을 채웠으니까. 이 펼친 돗자리는 여름밤 많이 넓고 저 은하수 많이 포근하단다. 어느덧 풀벌레 소리도 자고 아기냥이도 새록새록 잠들고 어미냥이도 와서 누웠다. 정겹게 모두가 둥근 지면에 누워 잠드는 이밤. 우리는 땅위에서 땅밑으로 가는 연습을 하지. 지평선처럼 평행하게 영혼을 누인..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박원주- 가던길을 가다가 문득 낮익은 곳에서 허공에 새겨진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매일 태양녁이 들고 새소리가 울리던 그곳 내시선이 멈춰진 그곳에서 어느덧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 응애응애 추운 겨울 동지날 유난히도 추웠드랬지. 따뜻한 온돌 아랫목이 아직도 날 데우니 말일세. "이눔 귀 큰거봐라. 나중에 커서 큰 인물이 되거든 내말하거라" 햇살 가득한 동네 구판장에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손주자랑에 여념이 없으셨지. 어린녀석은 기특하게 어머님 무거우실까봐 업히지도 않네그려. 어머니를 따라 동네 숲밑 집까지 아장아장 잘도 걷네. 왜 그때 아버지는 그리 술을 좋아하셨는지 몰라. 자식놈이 모는 좋은 차로 여행한번 못가보시고 말이지. 비가오면 처마밑 장독대에 고인 물을 가지고 토란잎과 놀고..

설레임

설레임 -박원주- 네가 나에게 다가와 너의 온기를 전하는 순간. 난 너무나도 아름답게 황홀하게 웃어대리라. 투명한 날개짓보다 더 가벼운 손짓으로 향기보다 더 은은한 숨죽인 목소리로 달빛 은은히 비치는 속옷고름마냥 부드럽게 내 비밀을 네속에 풀어 재치리라. 오해의 수많은 추억의 단상들. 단둘이 오봇이 눈동자속 너 날 보며 보리섶 한줌 불이 춤추다 날라가듯 훠이 훠이 달밝은 하늘위로 하염없이 미련없이 흩날려 버리리라~ 너의 흐르는 몸짓을 기대하며 너의 떨리는 목소리 되뇌이며 널 만날 날 널 대할 날 널 깨울 날 널 껴 안을 날을 되뇌며 오늘밤도 내일 밤도 그리움에 설치며 꿈꾸다 잠들리라 고백하던 너의 그말 수주웁던 나의 대꾸 두근거리던 그 설레임 숨이멋듯 멈춘 시간들 폭포수에 온몸이 젖듯 온몸에 폭포수가 젖..

스위치를 끄다

스위치를 끄다 -박원주- 흥겹게만 치던 지루한 키보드소리에 여기가 어딘가? 스르르 두눈이 감긴다. "너는 가슴한번 열지않고 사랑을 썼더냐? 한숨소리 한점없이 추억을 지우고 그토록 해맑게 웃어댔더냐?" 너는 디지털, 나는 아날로그. 만날듯 비켜가는 온-오프 스위치. 나는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그리고 나를 쓰는데 너는 그리도 쉽게 하루를 그리고 나를 지우는구나. 각본같이 잘짜여진 네 인생 시나리오보다, (그게 프로그램인지 벽돌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그 계획들이 즐거운 퍼즐일지도) 내 울음 뒤에 눈물을 닦으며 다시 쓰는 머쓱한 인생을 더 사랑해주며 꼭 안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