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1201

풀벌레소리 흥얼대다

풀벌레소리 흥얼대다 -박원주- 가을밤 모퉁이서 풀벌레소리 들린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먼 소리일까 궁금해서 귀기울여 들어본다. "즐겁다. 즐겁다. 가을밤이라 즐겁다. 노래해서 즐겁고 시원해서 즐겁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돌림노래 이 노래만 불러 대샀네. 삶이 지치고 지루하지 않더냐? 뜨거운 내일의 태양이 걱정되지 않더냐? 어제밤 뚜꺼비가 또 온다고 하던데? 이 풀밭도 가뭄에 말라간다 카더라. 다가올 겨울은 얼마나 추울꼬?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듣는듯 못듣는듯 또 찌르륵 노래하네. "즐겁다. 즐겁다. 가을밤이라 즐겁다. 노래해서 즐겁고 시원해서 즐겁다." 찌륵찌륵 찌르륵. 위힝힣 위힝힣. 도돌이표 이 노래만 불러 대샀네.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 나한테 사랑도 결혼도..

가을의 문턱에 눕다

가을의 문턱에 눕다 -박원주- 가을의 문턱에서 대돗자리를 꺼내 깔았다. 화석마냥 외로운 녀석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달빛이 이내 창가를 넘어와 뉘엿 내 곁에 다정히 눕는다. 눈이 부셔서 아래로 돌아 눕혔다. 까만 풀벌레 소리도 와서 눕고 애타게 우는 아기냥이 소리도 와서 눕는다. 빨리 애미냥이도 와서 누워야 할텐데. 다와서 쉬고 누워 잠들거라. 오늘 하루 수고함을 대나무의 살결은 알아 주겠지. 그내들도 속을 비우고 비우며 저 하늘을 채웠으니까. 이 펼친 돗자리는 여름밤 많이 넓고 저 은하수 많이 포근하단다. 어느덧 풀벌레 소리도 자고 아기냥이도 새록새록 잠들고 어미냥이도 와서 누웠다. 정겹게 모두가 둥근 지면에 누워 잠드는 이밤. 우리는 땅위에서 땅밑으로 가는 연습을 하지. 지평선처럼 평행하게 영혼을 누인..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박원주- 가던길을 가다가 문득 낮익은 곳에서 허공에 새겨진 아름다운 시를 보았네. 매일 태양녁이 들고 새소리가 울리던 그곳 내시선이 멈춰진 그곳에서 어느덧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 응애응애 추운 겨울 동지날 유난히도 추웠드랬지. 따뜻한 온돌 아랫목이 아직도 날 데우니 말일세. "이눔 귀 큰거봐라. 나중에 커서 큰 인물이 되거든 내말하거라" 햇살 가득한 동네 구판장에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손주자랑에 여념이 없으셨지. 어린녀석은 기특하게 어머님 무거우실까봐 업히지도 않네그려. 어머니를 따라 동네 숲밑 집까지 아장아장 잘도 걷네. 왜 그때 아버지는 그리 술을 좋아하셨는지 몰라. 자식놈이 모는 좋은 차로 여행한번 못가보시고 말이지. 비가오면 처마밑 장독대에 고인 물을 가지고 토란잎과 놀고..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만일(if)-나의 인생의 지표(Motto)같은 詩

만일 -루디야드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만일 뭇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탓할 때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일 모두가 너를 의심할 때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을 감싸안을 수 있다면, 만일 기다리면서 기다림에 지치지 않는다면, 속임을 당하고도 속이지 않는다면, 미움을 받고도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무 선량한 체, 너무 현명한 체하지 않는다면. 만일 꿈을 꾸면서도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왜곡되어 바보들이 너를 욕하더라도 너 자신은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즐거운 편지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 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의자(이정록詩)-사는게별거냐 ..의자몇개 내놓는거여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설레임

설레임 -박원주- 네가 나에게 다가와 너의 온기를 전하는 순간. 난 너무나도 아름답게 황홀하게 웃어대리라. 투명한 날개짓보다 더 가벼운 손짓으로 향기보다 더 은은한 숨죽인 목소리로 달빛 은은히 비치는 속옷고름마냥 부드럽게 내 비밀을 네속에 풀어 재치리라. 오해의 수많은 추억의 단상들. 단둘이 오봇이 눈동자속 너 날 보며 보리섶 한줌 불이 춤추다 날라가듯 훠이 훠이 달밝은 하늘위로 하염없이 미련없이 흩날려 버리리라~ 너의 흐르는 몸짓을 기대하며 너의 떨리는 목소리 되뇌이며 널 만날 날 널 대할 날 널 깨울 날 널 껴 안을 날을 되뇌며 오늘밤도 내일 밤도 그리움에 설치며 꿈꾸다 잠들리라 고백하던 너의 그말 수주웁던 나의 대꾸 두근거리던 그 설레임 숨이멋듯 멈춘 시간들 폭포수에 온몸이 젖듯 온몸에 폭포수가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