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성난 메두사 -24.1.16.(화)

성난 메두사 -박원주- 가끔 망막에 내 모습이 비친다. 거울처럼 선명한 상에 “누구지?” 동공을 연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못생겼니?” “성 내는 니 모습이요!” 얼굴은 경직되어 지진난 듯 실룩대고 눈매는 지켜떠 칼에 벨듯 날카롭고 콧구멍은 벌렁대며 콧김이 씩씩대고 입가는 삐뚤빼둘 못마땅해 찡그리고 핏대는 터질듯이 잔뜩 서서 위태롭다. 머리에 뱀 달린 메두사 얼굴. 보고나면 저주에 걸려 하루종일 시무룩 ‘나는 왜 또 참지를 못했나?’ 개복치같은 인내심에 밀려오는 짜증과 후회. 재발방지를 다짐하며 자아성찰과 반성모드. 다시 또 괴물이 나타날까 성을 참고 화를 꺼트린다. 식힌 화가 가라앉아 심연이 무겁다. 다시 또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 얼굴 위에 뱀처럼 가느다란 울화가 흘러내린다. 급..

비행하는 비행기표 -24.1.16.(월)

비행하는 비행기표 -박원주- 떨어져라 떨어져라 비행기표 하나 사며 사행성이 발동한다. 떨어지겠지 더 떨어지겠지 취소표 생기겠지 완벽한 여행 욕심에 오늘도 찾아온 결정장애. 주식 하면 패가망신한댔는데 비행기표 하나에 며칠분 인생을 걸었다. 내일은 사야지 내일은 사야지 결국 비싼 비행기표를 이 악물고 지렀다. 김장 때 배추값도 그랬지 여행 때 환전도 그랬지 다 때가 있었다 그걸 또 까먹었을 뿐이네 오늘은 어느 가게서 어떤 걸 사야할까? 내일이 또 막기 전에 미리 미리 사둬야겠다 * 땟때 크라비 갈까 씨엠릿 깔까 루앙푸라방 뉴질랜드 한국 이러다가 높아진 비행기표에 오물쭈물 한다.

전설의 썰풀기 - 24.1.14.(일)

전설의 썰풀기 -박원주- 서로를 향해 소리치면 세상이 바뀔까? 서로의 생각을 깍아대면 세상이 맞춰질까? 설득하고 설득 당하면 우리가 바뀔까? 전설의 썰을 푼다. 조용한 바닷가 서로서로 도란 앉아 공허했던 나날 외로웠던 서로를 걸치고 설익었던 생각을 숯불에 구워 먹으며 딱딱했던 마음을 뜯으며 허기를 채우고 고요해진 마음 속에 던진 한마디. 파문이 인다. 흔들린다. 너가. 흔들린다. 내가. 흔들린다. 우리가. 흔들린다. 세상이. 아 어쩌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 * 교회 목사님께서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육아 하산 -24.1.13.(토)

육아 하산 -박원주- 어른이 많은 생각 속에 살아서 아이는 아무 생각없이 걱정없이 살라 하네. 어른이 좋은 것만 찾고 중독에 빠져서 아이는 욕심없이 미련없이 순수하게 살라 하네. 어른이 지금과 여기를 쉽게 버려버려서 아이는 모든 걸 불태우듯 지금 열심히 놀라 하네. 이 고달팠던 육아 이 힘들었던 육아를 마치고 나면 이 쓸데없이 올랐던 어른을 하산하리라. * 주말 아이와 하루를 보내다보면 많은 귀여움 속에 어른의 부족함도 느낀다. 체력도.

영혼이 없네 -24.1.12.(금)

영혼이 없네 -박원주- 사랑해. 내겐 오직 너뿐이야. 공감해. 네 말이 백번 맞아. 힘들지. 진짜 너무 고생했어. ..영혼이 없네.. 한순간 너를 담으려 했던 실수들. 말로만 때우며 스킵했던 눈빛들. 미안. 이젠 매일 생각하며 네 목소리 되새길께. 몸과 마음 네게 붙어 널 먹고 마실께. 내 마음에 깊숙히 네 타투를 세길께. 싱싱한 내 영혼을 보여줄께. * 커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T형과 F형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공감하고 영혼을 담아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

나 연기 대상 -24.1.11.(목)

나 연기 대상 -박원주- 가족 다같이 주말드라마를 보다가 오열하는 슬픈 장면이 나오면 어머니 여김없이 눈물을 흘리셨지. 그때 아버지 한마디 거드시며 “어이구~ 여편네야. 저거 다 연기잖아.” 세상 살면서 제일 필요한게 연기지. 누가 누가 연기를 잘 하나? 부모 역할, 자식 역할, 남편 역할, 아내 역할, 사장 역할, 직원 역할, 대통령 역할, 국민 역할, 짜여진 각본 따라 잘 연기를 해야하지. 연기를 잘 못하면 이번판은 나가립니다. 모든 삶이 연기지. 잘 짜인 각본에 놀아나는 인생이지. 관례다 문화다 예절이다 배려다 벗어날 수 없는 의상들을 걸치느라 시간 쓰고 돈 쓰고 채워야만 넘어가지. 제일 힘든 연기는 “나”란 주연 연기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역할에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짓고..

미세먼지의 습격 -24.1.10.(수)

미세먼지의 습격 -박원주-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작다고 받은 멸시가 서러워서 쪼그라져 산 시절이 서러워서 작은 것들이 큰 것들을 공격해 댄다. 작은 뭉치가 돌격하며 큰 것들을 부숴 댄다. 피해자마냥 콜록대는 게 더 얄미워서 파도처럼 뒤덮으며 바다속에 쳐담근다. 세까만 습격에 큰 것들이 찢어지며 결국 항복하고 백기 투항한다. 처음부터 큰 게 어디 있으랴. 작은 것 없는 큰 게 어디 있으랴. 다시 안 작아질 큰 게 어디 있으랴. 작다고 놀리지는 말았어야지. 안 보인다 잊지는 말았어야지. 커지려고만 하지는 말았어야지. 먼지 한줌을 들이킨 큰 것들이 물 밖 뻐끔대는 물고기 마냥 물 속 뻐끔대는 인간 마냥 콜록콜록 숨가쁜 모습이 그저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기만 하여라. * 간만에 비가 내려..

연습의 붓칠 -24.1.9.(화)

연습의 붓칠 -박원주- 아기때는 아장아장 걷기 연습 학생때는 삐뚤빼뚤 글쓰기 연습 직장때는 잘부탁드립니다! 사회생활 연습 결혼때는 육아교육 갈아넣기 연습 멀쩡한 내모습 뒤에 얼룩진 연습의 그림자. 덧칠하고 덧칠하면 그려진 유화처럼 연습의 풋칠들은 어느덧 인생을 그려놓았다. 통 통 통 튀며 날아가는 물수제비처럼 할 수 없던 걸 결국 해낸 우리는 모두 능력자. 매일 매일 연습해도 안되는 것들도 언젠가 간절히 이루는 날 오겠지. 엉망진창 어설펐던 오늘 인생도 어느날 웃픈 과거 사진이 되겠지. * 골프 연습하는데 진짜 자세가 안나오고 힘이 들어가서 걱정이다. 언젠가 잘 되겠지.

미래의 메시아 -24.1.8.(월)

미래의 메시아 -박원주 두둥. 괴현상이 생겼다. 누가 현상을 보았다. 누가 현상이 이상하다 한다. 누가 현상이 치명적이라 한다. 누가 현상을 바꾸거나 없애자 한다. 누가 현상을 바꾸기 위해 기존 법을 바꾸고, 정족수 3분의 2 동의를 얻어 투표하고, 시행령을 만들어 세부 규칙과 절차를 정하고, 월 일정 회비를 걷어 운용하고 회계도 보고받고, 정례 호스트를 정해 간담회를 열어 진행상황 검토도 하고, 반대파 설득을 위해 언론홍보도 하고 공청회도 열자고 한다. (...) (’나서면 다하겠지?‘) (...) (’나대면 칼맞겠지?‘) (...) 결국 괴현상은 유지되었다. 현실은 이상과 한발짝 더 멀어졌다. 폭탄은 미래로 넘기기로 했다. 미래에 나타날 메시아에 구원의 믿음을 걸었다. * 모임의 총무가 되니 모임 운..

그 분 목소리 -24.1.7.(일)

그 분 목소리 -박원주- 일이 많아지다 가지치다 꼬여가다 팀장 꼬장과 고참 잔소리에 뚜껑이 열려 ‘아 그만 회사 때려칠까?’ 한숨에 명치가 답답한데,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당신이 아십니다.” “내 양을 치라.” 돈 없다는 바가지에 아내랑 한바탕 싸우고 묵비권 아이들과 널부러진 집안에 짜증나 누웠더니 잠은 안 오고 밤새도록 온갖 잡생각만 몰려드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당신이 아십니다.” “내 양을 치라.” 머리 아파 누었더니 허리까지 디스크 오고 되는 일 하나없고 일상이 지루하고 우울해서 ‘왜 살아야할까? 죽는게 낫지않을까?’ 자포자기 하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당신이 아십니다.” “내 양을 치라.” * 나를 배반한 사람을 찾아가 사랑하냐고 묻고는 그를 다시 쓰신다. 진정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