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매체 사이 -24.5.5.(일)

매체 사이 -박원주 얽히고 설킨 삶은 시작과 끝을 몰랐다. 눈앞에 진설된 일용할 양식은 누가 뿌리고 누가 키운건지도 몰랐다. 우리는 누군가의 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뿌리가 줄기에게 줄기가 가지에게 가지가 열매에게 무슨 선물을 건냈는지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하나로 얽어진 우리는 그저 서로를 맺을 뿐이였다. 나에게 걸린 너, 너에게 걸린 나, 서로에게 연결된 선들 사이로 어느새 촘촘히 걸린 축복을 맛보아 알며 먹고 즐길 뿐이였다. * 하나님은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사람을 통해 통치하기로 작정하신 후 사람이 하나님과 일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사용하신다.

잃어버린 것 -24.5.3.(금)

잃어버린 것 -박원주- 중요하다고 들고다녔는데 어느새 내 손에 없다. 어디다 두고 왔구나 찾으려면 다시 거기까지 가야겠구나 멀쩡한 걸 보면 그리 중요한 건 아닌가 보구나 한참 뒤에 잃은 걸 다시 찾아도 잃은 건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도 잃고 미련도 잃으며 흘리고 잃고 멀어져 버린 것 이제 내 손을 떠난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금 가진 것들을 소중히 하기로 했다. 와이파이처럼 나에게 달라붙은 연결들을 똑똑 천천히 당겨보기로 했다. * 신발을 두고 차에 내렸는데 다시 찾으러 가야하는데 그 중요성을 고민해 본다

가고 싶은 속도 -24.5.2.(목)

가고 싶은 속도 -박원주- 천천히 날아라 빨리 달려라 참견 말아라 천천히 날면 떨어지고 빨리 달리면 굶는다. 내 속도만 옳다는 건 교만한 말이지. 느린 사람에게 빠른 사람에게 내 속도를 강요 말아라. 언제 볼지 언제 안을지 언제 느낄지 모두가 원하는 시간이 있다. 모두가 가고싶은 속도가 있다. * 회사 생활을 하면 빨리 달리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달려야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익숙하니까 빨리 가지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곤대가 되는 소리겠지.

내 미래는 시체 -24.4.30.(화)

내 미래는 시체 -박원주- 난 뭘 좋아하고 뭘 잘할까? 내 미래는 무얼까? 난 어떻게 살아야할까? 사람들이 내 미래는 내 엄마 아빠란다. 내 미래는 내 할매 할배란다. 내 미래는 시체란다. 받아들일 수 없어. 엄마 아빠와 난 다를꺼야. 저 꼬부랑 할매와는 다를꺼야. 고민이 길어지고 이성이 머리를 맴돈다. 시체는 아니야 부인해도 죽는 건 사실이기에 결국 시체가 되기로 받아들인다. 내 미래는 시체란다. 시체를 위해 내가 사는구나. 밀려오는 절망에 나는 철학자가 된다. 시체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할까? 시체는 시한부 인생을 어떻게 견뎌야할까? 미래를 알아도 움직이는 시체는 고민이 깊다. 볼 수도 없고 보이지 않는 미래. 우리가 영원한 걸 아니까 영원이 있는 건 아닐까? 살아있지만 생명을 모르듯이 존재하지만 원..

생방송 배우 -24.4.29.(월)

생방송 배우 -박원주- 서로의 눈은 서로의 카메라가 된다. 서로를 바라보자 빛의 속도로 상을 맺고 곧바로 방송이 시작된다. 서로는 어떤 상을 맺을지 미리 세팅하기로 했다. 어떤 몸매에,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어떤 화장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목걸이를 하고, 어떤 가방에,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향수를 뿌리고, 어떤 집에서, 어떤 식사를 할지 미리 세팅했다. 짧은 방송을 위해서 시간과 돈이 필요했다. 여러 만남을 위해서 여러 채널도 필요했다. 서로는 서로의 카메라 속에 배우와 감독이 되었다. 드디어 세팅된 서로는 빛의 속도로 만난다. 레디 액션! “어머 반가워~ 원주야. 잘 지냈니?” * 아이가 네일을 받는데 무지 기뻐한다. 벌써부터 이쁜 걸 알아버렸다.

혀가 꼬이다 -24.4.28.(일)

혀가 꼬이다 -박원주- 뭐가 가장 쉬워? 말하는 게 가장 쉽지. 신도 말로 천지를 지었다잖아. 샬라샬라샬라~ 방심했더니 혀가 꼬인다. 두개도 아닌 하나뿐인 혀가 내 맘대로 안된다. 친하던 혀가 내 맘을 반역했다. 한 욕심에 꼬였구나. 귀를 막아 꼬였구나. 입만 뻥끗대 꼬였구나. 가슴이 대답하지 않아 꼬였구나. 허겁지겁 꼬인 혀를 풀었더니 혀를 엇다뒀는지 까먹었다. 가지런히 혀를 눕히고 가슴이 울리는 말을 들었다. 입 안 가득찬 말을 혀로 막았다. 머리 속 가득찬 말을 몸으로 막았다. 나는 신이 아니니 말대신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 다른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빨리 말씀하시니까 혀가 꼬이신다.

진화하는 스릴 -24.4.27.(토)

진화하는 스릴 -박원주- 안해본 것, 할 수 없던 것, 하고 싶은 것을 향한 서투른 날개짓. 거추장스럽던 날개가 날개짓이 되고 떨어지는 두려움이 나는 희열이 되었다. 기대하며 꿈꾸면 언젠간 되겠지. 나도 코끼리처럼 코가 길어질까? 나도 카멜레온처럼 피부색이 바뀔까? 나도 고래처럼 등에 코를 옮길까? 기대하며 꿈꾸면 언젠간 되겠지. 하늘을 날며 시간의 의미를 박찼다. 내일의 스릴에 나를 떨어뜨리자 나는 색다르게 꿈틀대며 진화해 나갔다. 기대하며 꿈꾸면 언젠간 되겠지. * 아이가 짚라인을 엄청 무서워하더니 곧 스릴을 느끼며 계속 탄다.

장난이야 -24.4.26.(금)

장난이야 -박원주- 반복된 삶이 무료해서 장난을 쳤지. 놀래키고 속이면 웃어줄 줄 알았지. 깍!! 근데 갑자기 네가 울어서 당황을 했어. 내가 심한거니? 네가 약한거니? 난 장난을 치고 웃고 싶었는데 널 잘 몰랐지. 장난으로 네 삶을 희롱하기엔 널 너무 몰랐지. 놀래키고 괴롭히고 놀리면 그게 장난이니? 장난으로 돌을 던지는 게 그게 장난이니? 장난치고 싶다는 욕심도 무례한 폭력이구나. 따뜻한 말한마디 해주는 고민이 필요했구나. 내 삶이 장난이 아니듯 네 삶도 장난이 아니구나. 네 웃음보다 네 웃음이 더 소중하구나. * 직장동료가 자기 생일이라고 생일 케잌을 사달래서 축하를 해줬더니 자기 생일이 아니란다. 장난인가 진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