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39

2πr[5] 경칩후 소리

경칩 후 소리 박원주 개구리야 일어나거라 봄이 왔단다. 얼었던 긴 혓바닥 햇볕에 풀어야지. 막혔던 숨구녕도 냉수마찰로 번쩍 뚫자. 쫄깃한 논두렁에 벌러덩 누워 수다스럽게 새 날을 노래 부르자. 18번에 주술이 풀려 만물이 춤추도록. 날개 있다 깝치는 파리가 구데기 까기 전에 입 달렸다 물뜯는 모기가 장구를 치기 전에 혓바닥에 찰싹 찰싹 뱀마냥 붙여서 먹자. 찬 겨울 미라 되어도 웃으며 든든히 잠들도록. 매서운 눈보라에 겨울잠을 뒤척이거든 지치고 헐벗은 사피엔스 님을 위해 고운 잠자리 하나 더 깔아 놓거라.

2πr[4] 소풍(逍風)-바람과 거닐다

소풍(逍風)-바람과 거닐다 박원주 바람을 따라 오솔길 따라 풍경 속 이정표에 잠자던 더듬이를 세운다. 끝없는 들녘 길은 촘촘히 풍경들이 채워져 있고 나의 산책을 기다린 듯이 간직했던 이야기를 읊어다 준다. 부드러운 흙 비늘을 손을 대어 쓰다듬자 드넓은 들판 그림 속으로 나는 스미어 사라져 버린다. 지나던 연근 동굴 속에 잠자던 연꽃 깨워보고 굵은 대추나무 허리에 시간의 껍데기도 붙여 본다. 햇살에 마당 뛰노는 흰 강아지 남매들도 강물 속 발 잠그고 물장구치는 물오리들도 거니는 낮선 시선에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담 없이 빨랫줄에 걸린 부끄럼없는 아주머니 옷은 미리부터 봄꽃무늬를 피워 걸어 놓았다. 길 저 끝에서 익숙한 풍경이 나를 불러도 다시금 되돌아와야 하는 발걸음의 연어들. 이제는 바람만이 들..

2πr[3] 눈(目)의 잎(口)

눈(目)의 잎(口) 박원주 찬란한 우주아래 거침없이 햇살이 하늘을 투과한다. 인간의 잎들은 보이지 않는 빛을 눈부시게 먹는다. 빛들은 몸에 스미어 까만 붓을 들고선 반대편에 조그만 밤을 그리어 놓는다. 빛 속에 숨겨진 풍성한 먹거리. 먹기 싫은 색은 반사되고 저마다의 잎 속으로 골고루 먹혀진다. 푸른색을 싫어하는 푸른 나뭇잎 푸른색을 좋아하는 붉은 장미꽃 흙에서 태어난 나는 흙과 같은 식성을 가지고 있다. 낮 동안의 따스한 포만감에 태양은 저물어 가고 둥근 지구의 그림자를 덮고 우리는 고대하던 잠이 든다. 잠은 빛들을 소화시켜 꿈을 만든다. 꿈들은 내일의 태양을 맞을 찬란한 여린 잎들을 피어내고 있다

2πr[2] 이력의 書

이력의 書 박원주 태어나 살아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세상은 이력을 쓰라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자취. 인생을 적어가는 기대 반 두려움으로 문제 풀듯 주관식란을 채워 나간다 이름, 성별, 주소, 전화번호 누구나 채울 수 있는 조각난 항목들. 의미없는 테트리스처럼 채워져 나간다 그적이며 적어가던 연필의 속도는 느려지다 고민하다 어느새 멈추어 선다 종이가 연필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알 수 없이 일어나는 분노의 쓰나미 내 인생이 이렇게 단순히 적혀진단 말인가 몇 글자 서술에 무너져 내리는 내 자존심. 흘러간 역사들조차 년대별로 치장되어 장구한 실크로드를 멋드러지게 쓰는데 하물며 생생히 걸어가는 내 발자취는 지렁이 길 희미하게 자취만이 남아 있다 파라솔이 펼쳐진 프라하의 찻집. 그 위를 흘러가는 흰 구름 ..

2πr[1] 먼지를 돌아보며

먼지를 돌아보며 박원주 어제와 동일한 계단을 오르다 수북이 쌓인 먼지 인사에 깜짝 놀란다. 휴지처럼 외면당한 채 목화꽃을 피우곤 검은 솜을 덮어쓰고 응달에 앉아 구시렁댄다. 무관심 속에 닳아 버린 나의 그림자. 내 앞길 속에 묻혀 져간 나의 뒷모습. 이제부턴 사분사분 너 닳지 않도록 조심해서 인생길 오르마 다짐을 한다. 빛 밝은 마당가에 먼지를 털며 헤어진 내 그림자 꿰매어 본다.

[고2詩] 추상실험

추상실험 박원주 “있소, 당신에겐 힘이 있단 말이오.” 두뇌 속 바다를 넓히고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앗! 잘못된 사고 -내가 언젠가 안중근의 손가락을 하나 더 자른 그 피가 아직도 나를 꾸짖는 무지의 사고-를 자유 여신의 청동 횃불에 던지려오 그리고 은하수 빗물을 떠다 부으리다. “있소, 당신에겐 힘이 있단 말이오.” 두뇌 속 바다를 넓히고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을 힘이 당신에게 있단 말이오. 썩은 두뇌의 고뇌를 뜨거운 바다에 쏟아 부어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을 용기가 당신에게 있단 말이오.

[고1詩] 뇌사(COMA)

뇌사(COMA) 박원주 사고의 회로가 끊어지려는 찰나에 고요한 수평선처럼 나의 뇌리에 진리가 여명을 뿌리며 다가선다 자서전을 펴들고 나의 미래를 관할한다면 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어야 하며 왜 어떤 존재는 또 다른 존재에 의해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有...무한의 자문, 無...유한의 공간. 제2세상의 법칙들이 무서운 압력같이 내 진실을 마취시킨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그 속에 존재하고 그 공간을 떠나버리려 시도할 때 그 힘은 내 존재를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난 단지, 아주 여린 살로 그 강철을 뚫어야겠지 허나, 뇌사에 빠져 무중력의 상태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진리-그 분과 황혼역의 그 섬에서 연인과 별과 함께 거니는 젊은 시의 청년과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를 얻기 위해 내 있는 힘을 다해 그의..

[고1詩] 여기선

여기선 박원주 나는 철학자요, 시인이란 대명제를 걸고 견강부회의 진모리, 자진모리를 마구 울린다 나는 나는 신이 나서 산허리 들쳐 메고 홍해 한번 갈랐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원인의 화살 -데카르트의 제1명제를 흔들-을 맞고 나는 앓았다. 오랜 시간을. 그러나 나는 한 시인이란 대명제를 걸고 비유를 써서 나를 의사가 되게 했다 직유로써 '훌륭하다'는 지나친 수식을 붙여 보았고 은유를 통해 그것을 합리화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반어를 몰랐다 의사가 자신을 치료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말이다 현실은 그 강한 힘으로 은유 아닌 은유로 나를 문둥이로 만들어 버리곤 낮선 외딴 곳에 던져 버렸다 나는 힘을 잃은 고독의 시인이 된다. 허나,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우발적인 역설의 혼. 상처받은 영혼들에 들려줄 고독이..

스위치를 끄다

스위치를 끄다 -박원주- 흥겹게만 치던 지루한 키보드소리에 여기가 어딘가? 스르르 두눈이 감긴다. "너는 가슴한번 열지않고 사랑을 썼더냐? 한숨소리 한점없이 추억을 지우고 그토록 해맑게 웃어댔더냐?" 너는 디지털, 나는 아날로그. 만날듯 비켜가는 온-오프 스위치. 나는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그리고 나를 쓰는데 너는 그리도 쉽게 하루를 그리고 나를 지우는구나. 각본같이 잘짜여진 네 인생 시나리오보다, (그게 프로그램인지 벽돌인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그 계획들이 즐거운 퍼즐일지도) 내 울음 뒤에 눈물을 닦으며 다시 쓰는 머쓱한 인생을 더 사랑해주며 꼭 안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