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소멸자 -24.6.14.(금)

소멸자 -박원주- 무한이 유한이 되었다. 유한이 다시 무한이 되었다. 바뀐 건 소멸한 의미들뿐. 지나가는 생명이 소중한 건 그 짧은 존재를 나누다 간 추억 때문이다. 닳아가는 존재들이 나눈 대화들. 짧았던 일기장을 펼쳐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아서 우리는 서로 미소의 찰나라도 기억하려 애쓴다. * 와이프가 대상포진으로 아파서 끙끙 댄다. 늙어가는게 좀 서글프다.

시들 시들 체외수정 -24.6.13.(목)

시들 시들 체외수정 -박원주- 시가 태어나길 바랬는데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루 하루 반복은 의미없이 굴러가는 자전일 뿐. 시를 낳아달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네 어머님 노력할게요” 말은 내뱉었는데 하루를 애무해도 희곡의 서사는 도래하지 못했다. 뭐라도 잉태하려 허겁지겁 배를 채워도 이내 꺼진 배는 수고한 똥만 나무랄 뿐. 어찌해야 시를 낳나? 지는 해를 보며 시간을 재촉하는데 저멀리 노을 사이로 꼬물꼬물 시상이 날아간다. 허거지겁 내 DNA를 뿌려대며 시를 잉태하자 어느새 까만 하늘에 별자리처럼 시들이 반짝인다. 따고 낳아도 많은 시를 키우기는 버겁다. 젖을 물리려 시들을 안아도 이내 가슴이 비좁다. 내일은 적당히 낳도록 산아제한을 해야겠다. * 간만에 하늘이 맑고 노을도 맑지만 시를 쓰려는 글..

열려라 가슴 -24.6.12.(수)

열려라 가슴 -박원주- 엄마가 잘 살아라 물려준 열쇠. 다 잘 열길래 열리겠지 했는데 난 안 열린다. 어느새 닳았나? 열쇠공에게 열어달랬더니 자기는 열쇠만 깍는단다. 어찌 여나? 열쇠공은 나를 보더니 열쇠도 없이 깍아준다. 옛다. 문이 열린다. 열쇠 하나로 모든 걸 열려 했는데 열쇠로만 문이 열리지 않는구나. 여는 것과는 다른 열리는 것의 문들. 문을 자세히 보니 저마다 귀가 있다. 순간 감이 왔다. 열려라 참깨 아하 내가 열땐 열쇠가 중요한데 안에서 열릴 땐 열쇠가 필요없구나. 내 목소리를 알면 되는거였네. 가슴에 문이 있어도 이젠 열 수 있겠다. * 길거리 지나는데 열쇠 깍기가 있다. 별로 손님은 없어서 않아서 손님을 기다린다.

일찍 자거라 -24.6.11.(화)

일찍 자거라 -박원주- 아이야 일찍 자거라. 깜깜한 어둔 밤을 벌써 알 필요는 없단다. 엄마가 자장가를 들려줄때 달빛이 밝아지기 전에 햇님이 인사하기 전에 꼬끼오 울던 닭이 네 눈동지를 쫒아오기 전에 아이야 일찍 자거라. 엄마 아빠는 할 이야기가 있단다. 네가 아직은 알 필요 없는 이야기들이야. 네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야. 네가 아직은 준비할 필요 없는 이야기들이야. 넌 두눈 꼬옥 감고 오늘 못한 것 꿈나라에서 즐기도록 아이야 일찍 자거라. * 아이가 오후에 늦잠을 자다 밤늦게 새벽에 깨어서 양치하고 씻기고 재웠다.

편식주의자 -24.6.10.(월)

편식주의자 -박원주- 누에는 뽕잎 먹고 팬다는 대나무 먹고 모기는 내 피 먹고 채식주의지는 채소 먹고 이슬람인은 할랄 먹고 알레르기인은 것만 빼고 먹고 난 아무거나 잘 먹는데 다들 예민하네.. 아 나도 자세히 생각해 보니 편식하네. 나도 맛난 거 좋아하는 미식주의자네. 나도 사랑만 찾아먹는 기호주의자네 나도 시간을 같이 먹는 상대주의자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는 내방식주의자네. * 행사를 하는데 할랄음식, 채식주의자, 알레르기 음식 등 체질을 모두 맞추려니 오찬이 산으로 간다.

꿈이 생각나 -24.6.9.(일)

꿈이 생각나 -박원주- 보통땐 생각도 나지않던 꿈이 어떨땐 누가 무슨 얘길 했는지 생생히 기억난다. 기억나는게 좋을까? 잊혀지는게 좋을까? 뭐가 정답인지 몰라 꿈에게 생시에게 물어도 서로 희미한 모습에 서로 침묵하기로 작정했다. 꿈도 생시도 이따군데 저건너 죽음인들 오죽할까 싶네. 저건너 불구경갈 사람맘들도 그러나 싶네. 이렇게 살다가면 어쩌나 이렇게 살다가야지 싶네. * 밤에 꿈을 꿨는데 여러가지 꿈들이 뒤섞여 생각이 났다.

쇤네의 낮잠 -24.6.8.(토)

쇤네의 낮잠 -박원주- 등 따시고 배부르니 밀려오면 낮잠. 나른한 몸에 가누기힘든 정신의 눈동자. 어느새 포로요 누워있는 송장 하나. 한낮 낮잠 앞에도 어찌 나를 못하는데 뉘에게 몰려오는 인생의 낮잠 안전에다 어허 일어나거라 어허 열심히 살거라 어허 할수있다 힘을내거라 쇤네가 어찌 감히 섣불리 말하겠습니까요. * 낮잠을 자다보니 혼자만 자고 아이는 신나게 집을 어질러놓는다.

조금 깨미 -24.6.7.(금)

조금 깨미 -박원주- 조금. 정확히는 쪼끔. 그걸로 뭐가 달라질까? 조금으로 바뀐 음식 맛에 조금 조금 나를 바꿔보기로 했다. 조금씩 조금씩 노력을 더하기로 했다. 조금씩 조금씩 꿈을 쫒아가기로 했다. 조금. 더. 맛난 인생을 맛보기로 했다. 조금만 더 깨미야 힘을 내! * 의무 교육 시간을 채우고 온라인 교육을 받고 열심히 수료증을 뽑는다.

누군가의 행복은 나의 -24.6.6.(목)

누군가의 행복은 나의 -박원주- 챕터 1. 상대성 이론. 공식: 남보다 못하면 불행해진다. 외워라. 받아 적고 돼지 꼬리 땡땡! 모두다 비교하다 비교하다 불행해진 상대성 이론. 챕터 2. 절대성 이론. 공식: 누군가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된다. 외워라. 받아 적고 돼지 꼬리 땡땡! 모두 행복을 흘려 흘려 보내다 행복해진 절대성 이론. 챕터 3. 응용 문제 누군가의 행복은 나의 ... * 현충일이라 한국이 쉬는 날이라 베트남 지사도 조용하다. 본사의 요청이 없으니 사무실도 한가하다.

AI 세뇌 -24.6.5.(수)

AI 세뇌 -박원주- 진짜같은 가짜 속에 가짜같은 진짜. 헷깔리는 현실 속에 너는 진짜니? 넘쳐나는 목소리 속에 가짜 목소리가 나는 진짜니? 내가 옳다 내가 옳다 생각하는대로 살면 되니? 세뇌당하고 세뇌하고 수많은 목소리 속에 절대음감은 없다. 어느 목소리에 귀기울여야하니? 어느 노래에 홀려 흥얼거리다보면 절벽 앞에서 잠 깨서 우두커니 선 내가 있다. 날거라. 마음껏 날거라. 너는 특별하단다.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단다. 아카시아 잎을 뚝 때어 한잎 한잎 뚝 뚝 때며 진짜, 가짜, 진짜, 가짜... 긍정, 부정, 긍정, 부정... 예, 아니오, 예, 아니오... 0, 1, 0, 1... 진자 운동처럼 왔다 갔다 진짜가 왔다 갔다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세계 속에 하나를 택하고 하나를 버리느라 간당간당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