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1157

머리를 ㅈㅏ르ㄷㅏ -23.11.6.(월)

머리를 ㅈㅏ르ㄷㅏ -박원주- 머리를 자른다 단두대에 머리를 얹고 지나간 세월을 읊으며 찰나의 참회를 한다 삭뚝 한 머리가 잘려 나갔다 함께했던 검은 추억들이 잊혀지길 기다린 듯이 한줌의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싹둑 또 한 머리가 잘려 나갔다 아둥바둥 연명하려던 줄이 끊기자 자유로운 연처럼 미련없이 떠나 버렸다 싹뚝 또 한 머리가 잘려 나갔다 성공도 재산도 연정도 모두 쏟아버리고 떨어진 낙엽처럼 다시 피지않을 낙화처럼 내 몸뚱이에서 날카롭게 떨어져 버렸다 싸악뚝 또 한 머리가 잘려 나갔다 매듀사의 머리처럼 애써 보지를 않고 이미 떠나간 검은 것들은 붙잡지 않고 무서운 형량을 감내하기로 했다 깔끔히 잘려진 머리를 두고 단두대에 놓인 매근한 목을 들고 다시 걸어나왔다 다시 길어질 머리가 벌써 목숨을 뚫고 움..

일반인 음소거 -23.11.5.(일)

일반인 음소거 -박원주- 나는 일반 관객입니다. 단정히 턱시도를 입고 연주회를 듣습니다. 콜록 콜록 어디서 기침이 멈추질 않습니다. 그게 나 인걸 알고는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나는 일반 성도입니다. 정갈한 자세로 엄숙히 예배를 드립니다. 꾸벅 꾸벅 어디서 누가 상모를 돌립니다. 그게 나 인걸 알고는 좀 부끄럽습니다. 나는 일반 국민입니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누가 정치 기사를 읽고 벌컥 욕을 합니다. 그게 나 인걸 알고는 괜히 민망합니다. 나는 일반 정상인입니다. 두다리 두팔 멀쩡히도 살아가기 바쁩니다. 한 사람이 난데없는 차에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게 나 인걸 알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는 일반인입니다”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과..

나는 음력 생일을 쇤다 -23.11.4.(토)

나는 음력 생일을 쇤다 -박원주- 옛날엔 달과 함께 시간이 흘렀다. 달이 차고 기울고 보름에서 보름까지 시간도 생일도 달과 함께 흘렀다. 전기가 들어오고 세상이 밝아지자 둥근 달은 까만 밤 속으로 잊혀졌다. 나는 아직 음력 생일을 쇤다. 매번 바뀌는 비번같이 기억은 어렵지만 내가 자란 옛 추억을 곁에다 두고 산다. 밤 늦게 야근하는 날이면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달이 기울었나 별이 더 밝나 지나간 세상을 까맣게 칠한다. 어릴적 쥐불놀이 둥근 달이 오늘 밤도 떴구나 그때 깡통보다 더 깡통같은 세상을 태워줄 달이 오늘도 시원스레 떴구나 어릴적 은하수를 밝히던 그믐달이 오늘 밤도 별들을 키질 하는구나 그때 청마루보다 더 빈 세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별이 오늘도 내곁에 떠있구나. 이맛에 나는 아직 음..

오늘 땡땡이친 놈에게 -23.11.3.(금)

오늘 땡땡이친 놈에게 -박원주- 매일이 반복되는 인간이, 매일이 규칙적인 인간이, 매일이 할일뿐인 인간이, 어느 작은 의지와 용기로 땡땡이를 친다면? 우선순위를 정하였구나! 삶의 기쁨을 발견했구나! 설레는 하루가 되었구나! 어제와 다른 오늘을 발견해서 더 좋았지? 더 즐거웠지? 응원하고 토닥여주자! 그 땡땡이는 허송세월한 수많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맹글었으니 캐캐묵은 한 자아를 벗어버렸으니 남 눈치에 찌든 시선을 잘라버렸으니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시발점이 되었으니 즐거움과 행복, 더 숭고한 가치를 찾아 떠났으니 땡땡 대신 딩동댕으로 딱딱해진 어깨를 한번쯤 주물러주자 * 세미나를 하는데 길어서 지인 것만 듣고 나머진 건너뛰기로 했다. 할일이 많으니 자리는 그정도만 지키는 것으로

본능 브레이크 -23.11.2.(목)

본능 브레이크 -박원주- 기침이 나온다고 기침하지 말어라 목 상할라 배고프다고 계속 먹지 말어라 살찔라 하고 싶다고 바로 하지 말어라 이기적일라 하기 싫다고 진짜 하지말지 말어라 부가가치 높다 죽고 싶다고 진짜 죽지 말어라 다 죽일라 살고 싶다고 막 살지도 말어라 거시기 아깝다잉 * 와이프가 기침을 계속 하는데 멈추지가 않아서 걱정이다

하루살이 시인 -23.11.1.(수)

하루살이 시인 -박원주- 시가 되고 싶었다 간절히.. 아름다움이고 싶었다 웃음이 있는 따뜻함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제도 오늘도 시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더 간절히 시가 되고 싶었다 다시 하루를 주우며 시를 써야지 시를 써야지 되뇌이다 하루를 멈춰세웠다 멈추지 않는 하루를 쫒아가며 시를 닳도록 부르며 시를 깍았다 나를 깍았다 시가 되고 싶었다 간절히.. 아름다움이고 싶었다 웃음이 있는 따뜻함이고 싶었다 * 감기 기운에 몸이 안 좋아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이 좀 싫었다

나이 먹방 -23.10.31.(화)

나이 먹방 -박원주- 하얀 눈보다 녹은 눈이 먼저 보여 눈 오는 날이 점점 싫어졌지. 돈계산 시간계산은 참 빠른데 자꾸 애들 나이는 까먹어. 사람보는 눈이 생겨 좋아했는데 새친구 사귀기는 어려워졌지. 생일도, 축제도 귀찮아했더니 할로윈 데이가 뭐하는 날인지도 몰랐네. 일상이 지루하고 귀찮고 새로운 것도 점점 감흥이 없어졌어. 지적질이 늘고 입만 살았어. ‘나땜 안그랬는데‘ 본전 생각도 났.. 아.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랬구나! * 할로윈 데이라고 다들 코스튬하는데 나는 별 감흥이 없다

야행성 몸뚱이 -23.10.30.(월)

야행성 몸뚱이 -박원주- 태초에 쪼개진 선악과처럼 빛과 어두움은 매일 반반씩 반복을 한다 밝은 낮을 분주히 마치고 어둠이 내리면 눈이 달린 인간은 동공을 더 크게 열고 적응이란 불을 켜고 주어진 밤을 탐한다 어디까지 즐길지 어디쯤에 멈출지 모두의 몸뚱이와 그 깊이는 다르다 서로 몸을 더듬으며 굴곡을 맞추며 적군인지 아군인지 킁킁거린다 나방과 나비처럼 비슷해도 다른 삶. 낮의 색깔에 익숙했던 나는 밤의 무채색에 익숙해지기 위해 피부마다 눈동자를 열어젖힌다 낮이 있어서 밤이 있다 밤이 있어서 낮이 있다 잠을 잘 수 없다면 눈을 더 크게 떠야한다 더듬이를 지켜세우고 긴 밤을 누벼야한다 밤이 깊다 낮에 그토록 딱딱했던 몸은 경계 없이 흐물흐물 보이지 않는 시간은 간격없이 흐물흐물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활동하는 ..

비어진 부담 -23.10.29.(일)

비어진 부담 -박원주- 순망치한. 누군가의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워야한다 바람이 지나가면 지나는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대로 그대로 두었다간 따뜻했던 우리 온기는 이내 사라지고 없겠지 다시 네가 오길 기다리며 네 빈자리를 내 온기로 채운다 서로 맞추었던 조각은 흐트러트리지 말자꾸나 서로 부르면 달려갈 정도 거리에서 허전하게 않게 머무르자꾸나 * 아내가 아파서 아이를 보느라 내 체력이 소진되고 있다. 힘내자

에너지 멸종 -23.10.28.(토)

에너지 멸종 -박원주- 줬다 뺃기는 어느 황망함처럼 젊은 시절을 꽃피우고 지는 한 청춘은 억울하고 분하다 세상은 내게 더 많은 걸 바라지만 내 한정된 자원을 대표하여 체력은 갈수록 뚝뚝 떨어진다 점점 닳아 마침내 꺼지는 배터리처럼 없으면 그저 억울할 뿐이다. 말 못하고 밤새 끙끙 앓던 식은땀처럼 아프면 그저 억울할 뿐이다 그렇게 내 젊음이 멸종되고 있다 그렇게 내 인생이 멸종되고 있다 그렇게 한 인간이 멸종되고 있다 * 육아를 하는데 점점 체력은 떨어지고 혈기가 왕성해지는 아이랑 같이 놀아주고 함께 이야기해주기가 어려워진다. 쉬지도 못하는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