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신의 꿈을 위해 20년을 인도의 대학에서 젊음을 바친 분을 만났다. 그는 대학교때 값없이 받은 꿈과 열정이기에 당연히 값없이 돌려주려고 자신의 젊음을 바쳤다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바쳐야할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이건 인생을 거는 도박과도 같은 것이기에 주식투자같이 자신이 가치있다고 판단한 믿음 만큼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나마 누구나가 아는 당연한 이치가 하나 있다면 '누구나가 사는데로 사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식에서도 남들과 같은 투자방식으로는 가치(돈)에 접근하기 어렵다.
남들과 다르게 살되 우위를 득하는 방법.
나만의 길을 걷되 남들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
인생의 도박을 최대한 즐기는 방법은 그 인생의 리스크가 한순간에 무너지더라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오늘을 최대한 누리며 사는 것이다. 즉 오늘까지 예정된 나의 운명을 모두 소진하며 알차게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마지막인 것처럼 삶을 소진하기에는 내일이 주어질 위험이 있고 보통은 나에게 내일이 주어져 버린다. 그래서 나에게는 오늘과 내일의 적절한 리스크 분산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을 즐기며 장점을 극대화하되 내일을 충전하는 것. 이것은 자동차의 가속페달과 브레이크처럼 예로부터 철학의 기본 뼈대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예가 절제를 중시하는 스토아학파와 쾌락을 중요시하는 에피쿠르스학파이다. 두 학파가 그렇게 치열하게 싸운걸 보면 둘다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기에 우리는 다시 소모전을 할 필요없이 적당히 반반 섞어서 살면 된다는 현명한 결론을 선택하자. 오늘이란 에너지와 시간을 남김없이 소진하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절제하며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살아도 내 인생은 정반합의 원리대로 절제와 쾌락의 조화속에 나라는 독특한 결과물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다만 이 반반이 어려워서 오늘을 절제없이 소진하다가 특정 중독의 늪에 빠지거나 실수를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또는 재미도 없이 무슨 기계마냥 직장이나 가정이나 일상속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리듯 사아가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남과 별반 다르지 않게 무의미한 반복만 되풀이하다 늙어 아프거나 병들거나 죽어간 인생이 대부분이다. 아마 그런 이의 죽음이나 이름을 그나마 기억했던 이조차 세월속에 뭍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는 늙음과 죽음은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신을 남기기 위해 미친 놈이나 살인마가 되거나 폭군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인생이란 자연처럼 나의 아름다움을 꽃 피우고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나의 향기와 꽃과 색과 이름을 누군가는 추억하게 만드는 것이 보람된 인생이 아닐까?
나만 즐거우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에피쿠르스의 욕망은 아주 짧은 이상적인 계획일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 절제없는 자유가 얼마나 남용되는지는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면 되지 않는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스토아의 욕망 또한 아주 짧은 이상적인 계획일 뿐 현실적이지 못하다. 만약 나의 모든 것을 주고 내 몸뚱이와 에너지를 헌신한다면 나와 나의 소유는 헌신이란 명목하에 순식간에 소진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답이 없는가 보다. 그 쾌락과 절제의 파도타기에서 균형을 잡고 쓰러지지 않기는 너무나 힘든 것이다.
내 인생에 또하나의 변수가 있다. 그것은 내 삶에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인생들이 동시간에 공존하는 사실이다. 내 인생만 생각하기에는 부모님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척, 친구, 동료, 국가 등 여러 인생들이 얽히고 설켜 살아가고 있다. 즉 나의 결정이 그들의 인생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결정도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부분도 있고 너를 위해서 존재하는 부분도 있다. 나 이외의 존재들을 위해서 나는 더욱더 절제와 쾌락의 서핑을 버라이어티하게 타야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란 중요한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나 없이 내 인생이 펼쳐질 수는 없기에 나는 나 인생에 있어 절대적인 주권자다. 그 주권과 통치를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는 있겠지만 그 양도의 결정도 순전히 내 자유의지에 따른다.
오늘도 복잡한 인생의 파도가 친다. 그렇다고 불안한 파도타기는 하지말자. 인생이 순간순간 도박이라고 생각한다면 불안하겠지만, 나를 온전히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그 신뢰는 내 인생의 거대한 선박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나에 대한 신뢰가 요동하지 않는 섬과 같이 절대적이라면, 수많은 파도는 해안선의 한낮 리듬일뿐 나를 넘어뜨리거나 불안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인생을 무엇에 걸 것인가? 매일 매일 고민하자. 그 고민은 순간순간 나의 뇌와 생각에게 물을 것이고, 나의 심장과 열정이 거기에 답해 줄 것이다. 인생을 걸 대상은 영원한 것으로 정하자. 사랑과 평화, 선, 진리같이 변하지 않기에 내가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가치에 투자하자. 그러면 내 삶이 끝나는 순간에도 내 삶은 영원속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인생을 언제 걸어야 할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정한다는 건 그만큼 먼길을 돌아가지 않는 지름길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경제적인 가치중에 시간만큼 득이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은 아무도 모르기에 그 때를 나는 준비하고 기다릴 뿐이다. 조급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겸손히 나의 몸을 낮추며 인내하자. 그것은 내 인생에게 더 큰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모든 걸 걸어야할까? 조금만 안정적으로 걸어야할까? 답은 없지만 건다면 최대치를 걸어보자. 누군가는 두려워서 배팅하지 않는 그 위험에, 나는 실폐하더라도 아픈 만큼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배팅해서 안 아플 바에야 많이 배팅하고 사랑하고 저질러서 많이 아파하고 고뇌하는 것이 나란 존재를 발견하고 나를 선명하게 색칠하는 데는 유리할 것이다.
오늘도 나의 인생이 흐르고 있다. 인생을 잡을 수도 요행을 바랄 수도 없기에 나는 다만 내 눈동자만 지킬 뿐이다. 인생이란 파도가 요동치는 이 순간에도 나는 든든한 섬이 되고자 한다. 오늘도 드넓은 나의 해변에는 수많은 파도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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