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를 하면 기분이 좋다.
정확히는 긴 방학을 한 듯한 여유가 좋다.
여러 분주한 일정으로 저녁시간을 채울수 있지만, 추운 날씨마냥 가뿐하지 않을 것 같은 내 스케쥴을 고려해서 그냥 간만에 쉼을 선사하기로 한다. 어느새 손에 들려진 만두, 찐빵을 허겁지겁 먹고 싶지만.. 우선 참고 냄비에 누릉지를 풀면서 두배로 행복을 끓이기로 한다. 거실 식탁에 앉아 뽀끌뽀글 익어가는 누릉지를 바라보면서 모락모락 만두와 찐방을 한입씩 배어문다. 정말 맛있다. 이쪽한번 저쪽한번 배어물었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아쉬운 존재감. 이젠 누릉지를 먹을 타임이군. 누나가 바리바리 싸준 파김치랑 깍뚜기를 후다닥 꺼내서 누릉지를 퍼먹으려는 찰나. 누릉지에 물이 좀 많아서 컵에 따워서 누릉지차를 소환하기로 한다. 구수한 누릉지차가 준비되기 무섭게 기다 어느새 새큼한 파인애플 홍차를 담워 우려내고 있는 투철한 행복 투자자.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퍼져나온 포만감은 어느새 내 얼굴까지 미소로 번진 지금..
따뜻한 거실이 너무 포근하게 느껴지는건 나만 그런건가? 배도 부르겠다 시간도 많겠다 멜론 음악도 틀고 조명도 은은히 낮추고 식탁에서 놓인 향초도 켜고 분위기란 분위기는 다 세팅을 하고선 낮익은 풍경들을 둘러본다. 저기 앞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 아참 이젠 크리스마스도 한달정도 남았구나! 벌써 일년. 스위츠 꽁무니를 찾아 일년만에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불을 켠다. 반짝반짝 밤하늘 별처럼 반짝이는 트리에 뭉글 추억이 다가와 밤하늘처럼 펼쳐져 은하수처럼 쏟아져버린다.
아~ 좋다. 포근함, 아늑함, 든든함, 향기로움, 따사로움.. 옷은 두껴워졌지만 영혼은 맨몸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기분. 갑자기 찾아온 겨울은 너무나 차가운데 그 차가움은 여름 냉수같이 내 주변의 온도는 너무나 따사로웠다. 식지않은 나의 풍경들은 언제나 따사롭게 나를 붙들고 있었다. 무릎을 덮은 극세사 이불의 맨들맨들함처럼 내 삶의 결이 이렇게 따사롭고 포근해서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이젠 못다읽은 책장을 펼쳐들고 읽다가 잠이 들면 되겠지?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다가 문득 서서 내 영혼에게 쉼의 닻을 선사하는 건 너무 뜻깊은 선물.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행복이 가까이 있을 줄이야.. 언제나 나의 곁에 머물러 있었는데 너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듯해서 조금은 미안하구나. 이젠 자주 숨을 고르듯 바람을 껴않듯 맨몸의 자유를 만끽해야겠다. 트리 불빛 한번, 향초 불빛 한번, 풍경들을 훑어대던 나의 시선은 이 행복감이 어디서 오는지 찾느라 분주하다. 아니야.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닌가봐. 그냥 지금이구나. 그냥 풍경에 내 시선을 풀어버리고 다시 투명하게 나의 몸을 벗는다.
'수(필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제와 쾌락이 공존하는 삶-2018.01.18.일 (0) | 2018.01.29 |
---|---|
사건과 확률속에 나의 선택 (0) | 2017.12.17 |
글쓰는 자위도구를 샀다 (0) | 2017.04.30 |
인생을 거는 도박은 언제 어떻게 해야할까? (0) | 2016.05.23 |
의미의 보물찾기-감추인 걸까? 보지 못한 걸까? (0) | 2016.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