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수)필

글쓰는 자위도구를 샀다

별신성 2017. 4. 30. 10:04

심심해서 글쓰는 자위도구를 샀다. 아이폰을 잘 쓰는 편인데 작은 아이폰은 틈틈히 생각나는 작은 시를 적기는 좋은데 수필이나 소설에는 안 맞아서 작은 노트북을 하나 새로 장만했다. 역시 키보드가 있고 화면이 10배정도 되니 든든하구나. 그래도 역시 옆에서 아이폰이 테더링을 도와주시 역시 기특한 아이폰님. 자위도구를 산 이상 다시 수필도 적고 소설도 쓰며 내 머리속의 정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며 생명력을 심어주어야겠다. 아직은 나도 살아있는 꿈들대는 욕망의 덩어리라서 머릿속에 꿈들대는 생각들을 풀어줄 해방구가 필요하다. 이 작은 몸뚱이가 가진 욕망을 가장 건전하게 풀려고 노력한 최적화된 자위도구는 역시나 글쓰기이다. 거창하게는 작문이지만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몇줄 끄적여도 시라고 포장하면 되니까. 이럴 땐 시가 형태가 없어서 좋긴하다만 내 시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너 읽으라고 쓰는건 아니고 날 위해 쓰는 일기 같은 거니까. 그럼 자위도구들을 정리해본다.

1. 시 

시를 쓰면서 느끼는 희열은 아주 짧은 시간에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형태를 이루어 탄생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내가 창조주로서 말한 그것이 시라는 피조물로 탄생하여 나를 노래하게 하는 카타르시스의 쾌감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에너지와 자극을 몰입해서 사정을 해야하기에 고도의 스킬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혼자 하는 사정이라서 그렇게 많은 에너지와 열정과 자세가 요구되는 건 아니다. 그냥 일상을 살다 보면 부지중에 번득이는 아이디어- 아 쓰고 싶다-가 생각나는데 그때 시를 적으면 최상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짧은 순간 짧은 구절에 새겨진 힘에 감탄하며 뿌듯한 창조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런 창조의 절차는 베스트 아이템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면 평소에 시를 쓰면 희열이 없을까? 아니다. 평소의 희열은 창조의 희열만큼 강하진 않지만 잔잔한 애무의 희열이 있다. 생각해보라.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창조의 그것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 그래서 여기서 생기는 괴리이  쾌감이 되어 잔잔히 내 일상을 애무하는 것이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이 어렵지 않다. 일상을 산다. 시를 적으려고 시도한다. 무얼 적을지 글감을 고른다. 시를 적었거나 반복된 글감은 지운다. 오늘의 글감이 정제되어 나온다. 과거에는 없었던 일, 나에게만 유일하게 일어났던 창조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살살 애무하면서 적으면 된다. 물론 화려한 미사어구는 없어도 된다. 이건 나의 일기장이요 비밀스런 보물찾기 보물로 세겨며 감추는 거니까.

2. 소설

아직 장편소설은 향기나는뮤즈이야기 하나밖에 안 적었지만 우화나 동화는 틈틈히 적었다. 아직 시나리오는 적었지만 소설로 탄생하지 않은 뼈다기 소설도 몇편있다. 줄거리는 죽이는데 아직 쓸 시간이 없다. 줄거리가 너무 좋아서 글로 쓰려했더니 다른 사람이 비슷하게 쓴 것도 있어서 어떻게 차별화 할지 고민한다고 못적은 것도 있다. 

소설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색다른 세계의 창조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내가 생각한 모든 시스템이 만들어진 우주인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상상력과 생각을 주인공들에게 녹아 넣을 수 있다. 즉 일종의 글로 된 영화인 것이다. 모든게 저마다의 생각과 삶으로 이곳 소설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것을 이곳에서 자아실현도 할수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즉 이 곳에서는 전지전증한 신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할 수있는 파라디이스를 꿈꾼다면 소설을 한편 적으면 끝! 단 천지창조는 쉬지않고 6일이상은 걸린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3. 수필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처럼 이건 그냥 생각나는데로 끄적이는 것이다. 배설의 창구 화장실의 느낌이랄까? 시가 아무리 형태가 없다지만 완전 없는 건 아닌 것이 음율이라는 규칙을 암묵적으로 지키기 때문이다. 너무 음율이 없으면 짧은 글인데도 읽기가 난해해서 독자는 머야? 이러면서 책을 놓을 것이다. 짧기에 기대한 바도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반면에 수필은 그냥 말하는 대로 적으면 된다. 내가 여기서 아야어요우유먹고싶다 적어도 욕하지 않는다. 진짜 그냥 말하는 대로 적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도 구어체를 문어체로 번역하는 작업은 필요한데 쓰다보면 사투리 쓰듯이 익숙해진다. 이게 어릴 때 방학숙제로 일기장을 적어서 그런 학습효과도 있다. 선생님은 아주 멋진 글을 원했겠지만 우리는 생각나는대로 그 빈 공백을 채우는 것이 급급했기에 생각나는대로 막 쓴 유경험자들 아닌가? 

수필은 이런 일기장 같은 곳이다. 내 생각을 여과없이 적는 곳. 단 그곳엔 나의 비밀이 있기에 읽는 독자는 정장차림의 내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팬티만 걸친 나의 본 모습에 놀라움도 느끼는 것이다. 아마 나의 근육에 놀랄 수도 있고 나의 나온 배에 놀랄 수도 있으니 어디까지 벗을지는 알아서 노출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은 다 벗어라고 솔직한 마음을 원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벗기엔 내가 너무 초라할 수 있으니 적당한(애메하긴 한 용어지만) 유혹을 해보시길.

4. 여행기

여행을 가면 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게 그 곳의 감정과 희열을 되살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영상을 찍으면 좋지만 지지대나 촬영도구가 멋지지 않으면 그냥 하드디스크 용량만 잡아먹는 추억이 될 수 있기에 사진이 가장 무난하다. 그런데 사진은 말이 없다.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이였는지 얼마나 기뻤는지 침묵하고 있다. 사진의 표정을 읽으면 되긴 하지만 내 표정은 언제나 웃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냥 좋았나보다 그정도뿐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글을 적는다. 그곳에서 적는 일기나 기행문이 가장 좋지만 놀다보면 바빠서 피곤해서 적기가 좀 힘들다. 우즈베케스탄에 갔을땐 일기장에 손수 매일 일기를 3개월간 적었는데 제주도 갔을땐 돌아다니기 바빠서 별로 적은게 없다. 그나마 울릉도 다녀와서는 블로그에라도 적어서 다행이지만 그것도 첫날것만 적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래도 기행문은 나의 추억을 담는데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록이다. 틈틈히 여행을 다니고 블로깅같은 여행기도 적어서 만방에 그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자선사업도 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