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글을 쓰는가?
왜 너는 글을 쓰는가?
무슨 돈을 벌려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위해 러브레터를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공개되기에는 너무도 비밀스럽고 가치를 논하기에는 주저리주저리 쓰는 독백같은 글들.. 무슨 계몽을 위해서도 아니고, 역사를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나의 음성이 듣고 싶을 뿐이다. 나의 생각을 알고 싶을 뿐이다.
세상의 수많은 글들.. 누가 다 읽고 누가 다 이해하고 누가 감동의 눈물을 다 전하겠는가? 특히 이 외딴 곳에 바닷가에 앉아서 읊조리는 듯 흘러나오는 나의 한탄은 내가 숨쉬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가 무슨 의미를 전하고자 글을 썼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나의 수고가 부족하고 나의 철학이 짧고, 무엇보다 나보다 똑똑한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먼저 다 고민하고 글을 남긴터라 나까지 수고로이 글을 쓸 필요성을 못느끼겠고,, 그것이 무언가를 기대하고 또 책을 들고 읽을 어느 독자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길이라 생각하고 가치있는 글을 못적겠다.
가치없는 글. 가치없는 말이다. 이글이 그렇다. 무슨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내 생각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무슨 쾌락을 찾는지.. 잃어버린 나를 계속 찾고 나란 정체성과 방향성을 연필이 부러지랴 조심스레 깍아나간다. 글을 쓰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 하얀 종이를 연필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애무하듯이 구석구석 신음을 채워나간다.
나는 어디에 서있나? 여기쯤인가? 영점을 바로잡아 본다. 내가 꾸던 꿈은 어딨나? 주섬주섬 풀어제겼던 옷고름을 다듬듯 그나마 남은 나의 꿈과 비전을 여미며 다독여 본다. 그래. 나는 아직도 숨쉬고 있어. 힘내야지.. 근데 그 힘을 어디다 쓸까? 그 힘으로 무언가를 꼭 해야할까?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데.. 그 열심이 향하는 결론을 모른채 달리고 있는 듯하다. 자기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면 나만 좋은데 그것이 최선인가? 다수의 공리를 위해 나와 가족, 어떤 소수의 한은 쌓아가도 좋은가? 수많은 의미들 - 실학, 공리주의, 합리주의, 인본주의 등 - 이 싸우면 그것만이 옳다고도 주장할 수 없는 유한한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서서 무어라고 지껄이고 있는가? 나의 소리를 누군가가 들어야 하는가? 그들에겐 그게 소음일지도 모르는데.. 잠잠하고 있을까? 그러기에는 입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거 아닌가? 결론은.. 눈치빠른 사람은 챘을테지만.. 답이 없다는 거다. 인생은 답이 없다. 나의 열심이 나의 이익이 나의 존재가 나의 비전이 어떤 대상에게는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것이 나란 존재이고, 내가 내뱉는 말과 글에 어떤이는 박수를 치고 어떤이는 눈살을 찌뿌린다. 모든이에게 박수를 받거나 모든이에게 핀잔을 받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가진 존재이고 그나마 다행인건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무언가를 위해 몸과 정신을 사용하는 존재란 것이다.
글을 쓴다. 연날리기처럼 어디로 날아갈지도 모르지만 왠지 연이 뜨면 재밌다. 글도 일종의 자위이다. 하악하악. 나의 세포가 살아서 숨쉬는 소리를 듣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영원한 것이 아닌 모든 순간적인 존재들이여 그 순간의 찰나의 신음소리를 듣고 사는 이들이여. 짜릿한 순간을 보내느냐 아니면 그냥 무덤덤함의 나열이냐는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누군가는 쾌락을 위해 살고 누군가는 정의를 위해 살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손가락질 하는 우는 범하지 말자. 누가 아는가 정의를 달성하는 짜릿한 쾌락과 쾌락을 선사하는 정의로운 노력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우주일지 모르니까.
정말 가치없지 않는가? 읽으면서도 가소로운 자음모음의 나열들이 무슨 활자인양 의미인양 에헴하고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럼에도 글을 쓰자. 왜냐면 나는 곧 글이고 언어이니까. 신도 세상을 말(언어)로 만들었다. 나도 세상의 일부라면 언어이지 않을까. 괘변같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메트릭스의 0101의 나열처럼 우리는 전자와 양자의 결합이고 어떤 요철의 조합들로 이루어진 자연어일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형체를 가졌지만 나사를 풀고 쪼개고 분리해보면 너도나도 결국 글이라는 말. 너도 글 나도 글. 글빨 죽이게 살자. 그래서 글을 쓴다. 나를 쓰는 것이다. 나는 나를 쓰는 것이다. 글로 나를 그리는 것이다. 데생처럼 의미없는 한문장한문장들이 모여 나를 그리는 것이다. 자세히 보라. 이렇게 의미없게 마구 쓰는 글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나의 맨 몸뚱이같은 사고이고 생각의 뉴런들이다. 신경을 통해 흘러가는 나의 찰나의 생각들이 뇌리에서 튀어나와 나를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틈틈히 글을 쓰는 것이다. 가치를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쓰는 것이다. 나는 글이기 때문이다. 없어질 듯 없어지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약한 존재로서 태어나 영원히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겨진 그런 글이고 생명이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 살아있는 것은 죽지 않고자 발버둥을 친다. 그것이 글이다. 번식은 멋진 말이고 섹스는 위험한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나를 전파할 생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글로서 내가 살아있음을 전파한다. 전파는 전파를 부른다. 파동은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배웠다. 내가 남긴 글들은 작은 파동으로 남을 것이고 파동은 이 글을 읽는 너의 생각에 너의 글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정확히는 영원히 진동할 것이다. 흘러가는 객체들 속에서 지금 진동하지 않아도 유한한 우주속에서 언젠가는 나의 울림이 너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진동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전혀 가치가 없는 글들을. 윤동주 시인이 너무 쉽게 쓰여진 시를 쓰며 개탄을 했듯이 나도 개탄을 할찌언정 시를 글을 쓰는 것이다. 결론은 가치가 없는 글이다. 하지만 가치가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이 한 인생의 결론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럼 모든 것이 헛된가? 아니다 이런 결론을 얻은 것은 헛되지 않지 않은가? 가치가 없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가 없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여기에 배팅해 본다. 그렇다고 이글이 가치있지는 않겠지만 그 가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왜냐면 가치라는 것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당신에게는 가치가 없다고 지금껏 읽은 이글을 모두 가치없는 시간이였다고 한탄하지는 말자. 나의 이 독백처럼 당신도 나의 진동처럼 일련의 생각을 머리칼을 빗으로 빗듯이 무언가를 동감하며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을테니까. 당신도 나도 글이고 진동이니까 이렇게 글을 읽다보면 함께 공명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 본다.
그대여 가치없는 글을 써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같은 개소리라도 좋다. 말하듯이 써도 되고 욕을 적어도 되고 하고 싶은 상상, 과격한 상상, 쾌락의 상상, 어떤 것이든지 나의 살아있음을 글로써 느껴라. 살아있음이 짜릿할 것이다. 마구마구 무언가 나의 필체의 역동성이 느껴질 것이다. 진동은 점차 진폭이 커지면서 거대한 가시광선처럼 나의 존재를 저멀리 별처럼 부풀어 오르게 할지 모른다. 아니면 x-레이 처럼 나의 본연의 id(무의식)을 꽤뚫고 들어가 발가벗은 나를 음미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나의 혓바닥이 손가락에 달린 것처럼 마구마구 지껄이는 것이다. 침을 질질 흘려도 좋다. 침을 흘리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침이 아까워서 뺃은 말이아니니까 무궁무진한 나의 글샘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윤활유처럼 글에 바르는 것은 더 건조한 나를 좀더 방임함으로서 본연의 나답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글을 쓰는 것이다. 그냥 쓰는 것이다. 쓰자도 아니고 그냥 쓰는 것이다. 너와 나가 같이 울리고 모두가 한 우주에서 시끄럽게 공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와 너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고 정체성의 채통을 수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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