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수)필

사소한 나로 살다.

별신성 2015. 3. 22. 00:33

한마리의 정자.
아버지의 꿈을 안고 그 아버지란 존재의 반을 품고 각기 다른 수많은 목표를 향해 모험의 길을 떠난다.
한마리의 난자.
어머니의 꿈을 안고 그 어머니란 존재의 반을 품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여정을 꾸렸다.
둘의 꿈은 한 점에서 만나 '나'란 현실이 된다. 반 반의 꿈은 모든 꿈을 나에게 배팅을 걸고 나('박원주')로 태어난다.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했는지, 무엇이 그 원대한 꿈의 여정을 '나'라는 현실로 시작하게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가 꿈꾸던 꿈을 나도 공유하면서 내가 탄생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
난 내가 받은 꿈의 가치만큼 살아가야할 사명감이 있다. 그들의 가치, 그들의 사랑, 그들의 열정과 젊음, 생명 들을 나에게 나눠준 순간 나는 원대한 나란 서막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작고 나약한 나는 자라나야 했고 수많은 지식과 관계와 사랑을 받아야만 했다. 어린 나는 그렇게 꾸었던 꿈만큼 부모님의 가치와 사랑과 열정과 젊음을 먹고 자라나야 했다.
하지만 꿈과는 너무나 먼 현실이란 벽.
나는 내 꿈만큼 자라나지 못했고 내 꿈만큼 배우지 못했고 내 꿈만큼 사랑을 받지도 못했다. 내 인생은 어느새 자라면서 부딪힌 수많은 상처들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난 아버지의 꿈도 어머니의 꿈도 나의 꿈도 잊어버린채 일상을 사는 한마리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고 그런 일상의 일상의 일상의 인간.
난 먹기위해 살아가고 그냥 살아있어서 사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본분인 것처럼 성실하게 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붕어빵과 같은 하루하루, 남들과 같은 붕어빵 일상. 그들과 동기화하며 동일하게 살고 느끼는 것이 나란 인간의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 앞에 놓인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어느새 생긴 새치와 주름. 그리고 그걸 응시하는 한 어린 눈동자.
누구냐 넌? 난 나지? 그러니까 넌 누구냐고? 난 원준데? 그러니까 원주가 누구냐고? 원주가 원주지? 그니까 넌 뭐가 다르냐고? 뭐 비슷한데? 그럼 넌 다른 사람이랑 같네? 아니 그건 아니고... 근데 뭐가 다르지?
나는 곰곰히 내가 뭐가 다른지 생각해 봤다. 생김새, 식성, 취미, 기호, 환경, 특기, 생각, 스트레스받는 종류까지 뭐가 하나 같은게 없었다. 그런데도 왜 난 그들과 동일한 삶을 살려고 이렇게 아둥바둥 노력하고 있을까?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또 그런 삶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이건 아닌거다. 그건 내 삶이 아닌 거다. 난 남들과 다르게 사는거다. 난 내 인생을 사는 거다! 난 나 '박원주'로 살아가는 거다!
하지만 나로 살아가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선 의식주부터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져 있었고, 문화, 철학, 사상, 기호 등 현재란 모든 것이 나란 현실-일상-을 이루고 있었다. 한번에 나란 패턴으로 바꾸기엔 너무나 예민한 신경조직들이 나란 존재를 얽어 메고 있었다. 나로 사는 것은 이렇게도 힘든거구나하고 넉두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나로 사는 즐거움보다 일상의 즐거움이 더 빨리 찾아오는 현실이 너무도 야박하고 버겁게 느껴졌다. 일상의 즐거움은 너무도 일상인 순간이 되어 있어서 그걸 참는 것은 (뭐랄까..) 매일 먹는 밥을 금식하는 것같은 금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번번히 그 일상으로 돌아가 일상의 즐거움을 즐기는 반복된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됐고 그럴때마다 거의 매일 후회를 반복했다. 내가 참 한심해 보였고 나란 '다른 인생'은 그냥 포기하는게 낫겠다라는 좌절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지! 그건 나에게 사명과 같은 내 길이였다. 그것을 포기하는 건 마치 신이 아담과 이브대신 로봇을 만드는 것같은 바보같은 짓이기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의 길을 걸어가기로 되뇌고 또 되뇌였다. 나로 사는 건 정말 힘든 여정이였다. 그건 아주 사소하지만 그런 사소함들이 모여서 내 인생이란 집합을 만들기에 그 사소함 하나하나를 충실히 사는 것은 너무도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사소함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는 내 모습을 볼때마다 나는 두번째 사소함은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다는 거대한 욕망과도 싸워야했다. 그 사소함에 승리하자.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은 그 사소함 때문이니까. 인생의 이목구비, 팔다리, 몸둥이같은 거대함들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어서 나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소함들-눈매, 콧구멍 크기, 눈썹의 농도, 웃을때 입모양들-은 너무도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일상의 눈매, 기상 시간의 크기, 여가의 농도, 즐거움의 입모양은 나를 나로 만드는 중대한 일인 것이다. 그 사소함은 사소함을 넘어 시간을 이루는 초, ,분, 시 같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인 것이다. 그 사소함에 성실하면 나란 거대함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고, 그 사소한 주름들이 나의 인생을 바꾸고 나로 살아가게 한다.
하지만 나로 사는 건 너무도 피곤한 일이다. 왜냐면 나는 남들이 제공하는 일상의 템플릿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자라나던 나는 어느새 꿈을 향해 자라기보다 어느새 익숙한 일상으로 자라나 있기에. 하지만 그 비밀-아니 사실-을 알면서도 바꾸기 힘든 것은 내 몸이 그 일상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나로 살고자하는 일탈은 나의 몸과 마음을 너무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 커져가는 일상의 욕망을 탈피할 힘은 나에게 없을까? 나의 이 사소한 절망들을 이길 힘이 정말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난 나를 믿는다. 그 정자가 이렇게 멋진 나를 만들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난 나를 믿는다. 난 그 사소한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로 살고자하는 그 사소한 발버둥에서 이길 것이다. 힘들어도 후회해도 나는 나로 나를 다듬어 길 것이다. 난 나로 살아간다. 난 나, 박원주니까. I am who is wonju.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