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수)필

죄와 죄사이에 서서

별신성 2014. 7. 9. 01:12
오늘도 나는 죄와 죄사이에 서서 기도를 드린다. 현재의 멀쩡한 삶은 순간의 찰나처럼 지나갈 것이기에 더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인간 삶의 본능이 죄를 향한 열망은 얼마나 강렬한지..자아(ago)란 욕구(id)는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수많은 식욕, 탐욕, 색욕, 정치욕, 명예욕로 기하급수적으로 세포분열을 해버린다. 죄의 욕구아래 좌정한 나의 절대왕정은 그 누구의 통치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나이기에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내속에 꿈틀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어쩌면 오늘도 더 간절히 나는 우주의 신에게 구원을 기도하는지 모른다.
죄와 죄사이에 서서 나는 무수한 법의 난도질을 당했다. 정죄의 칼날은 나의 생에 무수한 상처의 역사를 남겼다. 자존감의 상처. 비교와 열등감의 늪. 사랑받지 못하는 원인불명의 이유. 그런 과거는 또 나의 족쇄가 되고 나는 또 그 저주에서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치유되고 당당한 나로 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먼 일 같았다. 아.. 이 아물지 않는 죄의 혈루증에서 누가 나를 구원해 주랴. 나의 고뇌의 거미줄엔 이슬조차 머물지 않았다. 자아의 뇌사(Coma). 그 혼돈은 나란 정체성을 파괴하고 인생의 여정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 파괴의 정점. 그 허무의 정점에 서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번쩍. 그래! 아무 문제도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를 비난하는 건 내 속의 나 뿐이였다. 잘 그리니 못그리니 그런 건 내가 만든 틀이 였을뿐. 그래! 못그리는 건 없어. 당당히 나를 그리는거야. 나란 그림을 정확히 그릴 필요는 없어 못그리면 어때 무슨 추상화라도 나오겠지. 죄에게 꿀리거나 비굴할 필요는 없어. 비록 아직은 멋진 채색도 없고 종이 질감도 구겨져 거칠지만 그 스캐치가 언젠간 그림이 되고 조각이 되고 연극이 되고 누군가의 꿈이 될 거야. 이 짧은 생에 누군가에게 더 큰 여백과 여운을 주고가는게 나 원주의 인생이 될꺼야.
내가 갈구하던 그 태곳적 꿈. 열정. 언어. 요동. 그 거대한 초자아를 바라본다면 이 왜소한 현실에서 비좁게 초라하게 억울하게 살지말자. 나의 꿈맺힌 한은 꼭 풀자. 그렇게 살다 영원 속에 뭍히는거야. 영원.. 그 죽음의 카타르시스를 넘어서자.
오늘도 나는 죄와 죄사이의 싸인(sin) 곡선에 가슴을 맞대고 내 뛰는 심장소리를 듣는다. 내 가슴은 무엇을 갈구하는가. 죄인가 그 죄를 넘어선 희열인가 희열을 넘어선 나의 발견인가 나의 발견을 넘어선 알지못하는 궁극인가? 무수한 잠념의 잔가지를 제하다보면 본질이 남을까? 그렇게 나는 하나하나 내가 희열을 나눌 그대-꿈인지 지혜인지 사랑인지 모르지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대와의 클라이막스. 그 펼쳐질 내 인생의 전율을 상상해본다. 하지만 격한 외도와 오르가즘은 짧고 또 다른 갈증을 유발하기에 처음부터 내 안중에는 없다. 누구나 가진 의식의 복사도 나에겐 무의미한 회귀의 반복될 뿐이다. 헛되고 헛되니 해아래 모든 것-그 집합엔 쾌락과 수고와 젊음과 지식도 들어간다-이 헛되니 뜬구름같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영원한 가치로의 회귀. 영원한 우주의 품에 안기라라 잠꼬대같은 다짐을 해본다.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내 의미의 파편들을 모아보자. 멈출줄 모르는 시간과 덩그러니 놓인 공간속에 의미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오늘도 숨바꼭질을 한다. 의미의 파편들은 빅뱅의 잔재처럼 내 우주속에서 메아리 치지만 아직도 찾지를 못하겠다. 우주의 모든 의미의 파동들을 모아서 다같이 울리면 4부 교향곡보다 더 멋진 음악이 될꺼라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는 수 밖에.. 그 가치의 등가교환을 위해 소리를 듣는 소경이 되자. 한줌 빛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자. 빛에 오염된 세상을 벗어버리고 어두운 망막안에 그려진 파동의 영화를 만끽하자. 그리고 그 희열을 온 몸으로-혹한의 논보라를 헤치고 동상에 걸린 맨몸뚱아리를 녹차처럼 우려내듯- 세상속에 우주속에 우려내자. 거추장스러운 정죄의 시선을 벗고 빛에 눈뜨지 않은 해탈한 새끼 고양이가 되자.
그러기 위해선 자연의 언어 체계에 민감해 져야한다. 본질의 파동에 대한 민감함. 신은 말(word)이였고 모든 존재는 파동으로 구성됨을 명심하자. 태곳적 파동의 가녀린 떨림.. 그 언어로 나를 채우자. 나의 언어. 너의 언어. 엄마의 언어. 우리집 강아지의 언어. 앵두 향기의 언어. 나뭇잎의 손짓 언어. 비상하는 새의 날개짓 언어. 존재하는 모든 언어들을 들어보자. 그 속에는 깃든 의미를 해석하며 신의 언어를 배우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자.
오늘도 나는 죄와 죄사이에 서서 나를 되돌아본다. 싸인(sin)의 곡선인지 죄의 괘적인지 모를 무차별한 시간의 난사 속에서 윤동주 시인처럼 손바닥으로 발바닥로 나의 자아상을 눈물로 닦아본다. 번뇌와 해탈이 겁나게 반복되는 일상의 윤회속에서 어느 순간에 강림한 젊은 예수의 눈동자와 눈을 맞출 준비를 한다. 순간 그리스도를 배반한 베드로같은 그 눈맞춤. 부끄럽다. 그래도 이 눈물을 그치면 부활한 그리스도처럼 그 첫사랑의 원점으로 돌아가야한다.
캐캐묵은 쾌락과 절제도 중요한 논지는 아니다. 옛 선배들이 무수히 싸워주었으니 그런 헛수고를 다시 할 필요는 없다. 선과 악. 이런 아류작도 많이 듣고 재탕했으니 그만 우려먹자. 나에게 펼쳐진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실을 용서하는 연습부터 하자. 아담이 심어주고간 정욕의 정자가 몸속에서 우물밖 세상으로 나오려는 사실도 인정하자. 그런 인간이란 나의 속성(본질)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내 인생을 포멧(format)하는 시발점이니까. 시발. 나약한 인간인 내가 죄란 이율배반을 이길 용기는 어디 있을까? 인간이라는 굴레를 그대로 둔 채 더 위의 것을 더듬어 찾는 인생의 사춘기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진리의 질풍노도를 지나간다면 내 영혼도 성장해 나가지 않을까. 물론 과거 선인들의 지혜를 누가 녹화해 두었다고 한들 나에게 별로 유익은 없을 테니까 그런 날로먹고픈 미련은 버리자. 나를 믿자. 멋진 나로 눈빛을 갈고 닦자. 죄와 죄사이에 내가 서 있어도 내 영혼이 거룩한 신을 닮았을 테니까. 이젠 정죄의 늪을 지나 광야를 거닐자.

'수(필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드디스크를 열어 거울에게 물었다  (0) 2015.01.17
'안녕 헤이즐'을 보고  (0) 2014.11.19
딸기야! 죽었니? 살았니?  (0) 2014.04.13
큰 숙제, 작은 숙제  (0) 2014.03.26
두려움의 둥근 벽  (0) 2014.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