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안쓰던 하드디스크를 버리기로 큰 결심한 동료가 나에게 단단히 부숴버리라고 파쇄를 요청했다. 포멧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하드디스크의 특성을 알기에 확실히 와이핑(wiping)을 해달라는 특명이였다. 나는 웃으며 가장 쉽고 확실한 파기 방법은 그냥 망치로 부수는 거라고 말해줬더니 그럼 알아서 부숴달라하고 떠났다.
나는 내앞에 덩그러니 놓인 하드를 보며 먼지를 스윽 만져보았다.
하드디스크..
한때 누군가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그였다. 많은 추억을 담고 저장하고 꺼내보며 주인의 미소가 마냥 행복했을 그가 이젠 버림을 당했고 주인은 그 처형을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육각렌치로 하드를 열어 하드의 내부를 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드디스크를 모으고 열어보길 좋아했다. 눈에 보이질 않는 컴퓨터의 데이터를 영혼을 담아 모으는 마법의 물병처럼 모았고 마음이 울적할때면 가장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열어 거울을 꺼내보곤했다. 하드디스크를 열면 진공속에 고이 같혀지던 하드디스크 내부 은빛 디스크를 볼수있다. 사실 거울보다 더 정밀하고 깨끗한 것은 당연하다. 이 거울은 내 반사망원경에 달린 거울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은색인데 한번 보면 시각적인 투명함에 황홀한 보석을 캔 느낌이 든다. 손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지문이 바로 남기에 옆으로 잡아서 잘 들어야한다.
그 투명한 거울은 많은 추억을 담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나의 눈동자를 유혹하고 있다. 만질 수도 없고 이젠 그 추억들을 꺼내 볼 수도 없다. 관음증같이 보기만 해야하는 뭐 그런 색시함도 들어 동그란 거울을 내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가 거울에 비친 적날한 나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거울에게 중얼거린다.
거울아..
이젠 너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그 추억들은 아무도 꺼내 볼수도 읽을 수도 없구나..
내가 아름다운 너의 투명한 살결을 어루만져 안아주고 싶어도 내 손은 너무나 현실의 때를 지니고 살고 있구나.
너는 그렇게 다시 시간과 함께 진공속으로 잊혀지는 운명인게냐..
불쌍한 것..
그러다 거울 속의 나를 다시 보고 흠짓 놀란다.
나도 언젠가 나의 모든 추억을 고이 뭍고 저 진공속으로 뭍히겠지? 생각하니 그 거울에게 연민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손으로 스다듬다가 그만 누추한 지문이 얼룩 거울을 더럽히고 만다. 호호 불며 닦아보지만 조금전 처럼 깨끗하지는 않아 내 인생이 더러워진듯 마음이 상한다.
우리 인생은 언젠가는 저 기계처럼 낡고 어느순간 그 많던 추억이 무색할만큼 홀가분하게 훌쩍 떠나고 말것이다. 얼룩진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가다듬으며 방긋 웃어본다.
거울이 나에게 웃으니 멋지다며 자주 웃으라며 속삭이는거 같았다. 맞아. 웃으면 더 멋진데 왜 이렇게 인상을 쓰며 살았을까? 다시 웃어본다. 거울속의 나는 꽤 잘생겨보인다. 거울이 살았던 또 그 주인이 기뻐하며 담아주었던 추억보다는 더 알차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사람의 인생은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한 것일까?
인생은 삶이란 측면에서는 행복이요 축복이다. 하지만 인생이 끝이 있고 죽음이라는 유한성을 생각하면 불행이고 저주이다. 그래서 불행이냐 행복이냐는 나의 선택일 것이다. 당연 살아있는 나는 행복을 선택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죽음은 나에게 그냥 미래의 어느 한순간일뿐 그것에 많은 의미를 두며 슬퍼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기때문이다. 그리고 팁을 하나 주자면 그 끝을 다시 시작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 난 나의 시작도 몰랐기에 끝도 모르고 그 끝도 끝이라고 단정지을만큼 많은 지식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 끝이 다시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 믿음이 간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영원성을 믿으며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듯하다. 사실 나의 영원성은 나의 특별성과 관계가 깊은데 내가 유일한 존재인 특별성을 깨달으면 굳이 나의 인생을 유한한 육체속에만 가둘 필요는 없다는 영혼의 확장성을 이해할 것이다. 특별한 것은 가치가 있고 가치는 무한의 속성을 가진다. 모든 인생은 소프트웨어같이 보이지 않는 영혼이 있음은 누구나 안다. 저 하드디스크 거울속에 갖힌 추억의 데이터처럼 살아있는 영혼은 컴퓨터가 온(on)되기를 기다리듯 영혼도 육체가 죽어도 다른 인생의 부활(on)을 시작한다고 확신한다. 나의 특별함과 가치는 무한의 속성을 가지고 발현하고 있기에 나란 특별한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 행복한 나는 항상 행복한가?하는 문제가 생긴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현실. 한 인생을 다 논하기에는 미래도 길고 인생이 장기전이라 어렵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개인적인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기도 하고 가정이나 주변 환경이 암울했던 적도 많았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주변 환경이 무난하고 무탈하더라도 내부적인 나 스스로도 행상 행복하지 않다는 모순도 있다. 왜 나는 나 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는가? 노래하고 춤추고 웃고 즐기고 감사하면 되는데 나는 항상 노래하지 않고 웃지않고 긍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선택이란 단어를 쓴 의도를 알겠지만 나는 항상 옳고 바른 선택이 아닌 틈틈히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비율은 얼마나 될까? 하루 하루의 평균을 보면 생각나는 잘못이 몇개씩 있다. 그것을 빈도나 시간으로 계산하기엔 무리가 있고 나에게 영향을 준 정도로 보면 8:2에서 20%가 되는 듯하다. 그 비중을 더 줄이느냐는 것이 오늘이란 하루의 숙제겠지만 항상 잘못된 선택은 있기 마련이다. 무엇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하는지 나는 잘 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무시를 당하기 싫어서, 한순간의 즐거움, 남이 잘되는 것에 대한 시기 질투 등 이그러진 선택과 판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원인되어 저지르는 실수들이다. 이 원인들은 사실 나의 내부에서 흘러나와 나를 더럽힌다. 그 내부에는 항상 깨어진 나의 모습이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게 깨어져버린 나의 자아상. {사랑받지못함, 열등감..} = 이 부정의 자아상들은 사실 내가 받은 {사랑, 자존감..} = 긍정의 자아상과 비교하면 2%밖에 되지 않되지만 내부에서 흘러나오면서는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20%로 증폭되어버린다. 그래서 그 사소한 놈에게 속아 큰 사기를 당한 듯한 느낌에 더 짜증이 밀려오곤 한다. 이게 비단 나만의 현실이겠는가? 너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이고 살아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일 것이다. 다 알면서 당하는 사기. 2%의 속임수는 항상 달콤해서 우리는 그 짧은 사기극에 속아 20%의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기극에 당하지 않으려면 나에게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받고 있어! 지금 나는 너무 멋진 사람이야!"라는 현실을 되뇌이며 나를 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바른 현실감이 나를 100% 나의 인생에 충실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우리 육체는 의식주을 원하는 정욕의 덩어리이다. 이것은 아주 개인적이여서 아주 추운 날씨에 빵 한조각과 옷 한벌만 있는 현실에서는 그 빵을 모두 내가 먹고 옷도 내가 입는 것이 옳바른 선택인 것처럼 빠르게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버린다. 내 배가 채워지고 내 몸이 따뜻한 뒤 내 앞에 굶주린 친구가 보이고 동상이 걸린 친구가 보이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특권인 마냥 절대 포기하지 않는 탐욕도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가 원하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판단이 거의 틀리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알았을땐 변명을 하기에 바쁜 것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육체는 먹고 자고 안락한 것만 원하는 게 아니라 쾌락도 원한다는 사실.. 쾌락. 그 달콤함은 육체에게 기쁨을 주지만 그것 역시 항상 옳지 않음 아니 거의 그름을 알고 있다. 여기서 더욱 경계해야할 점은 쾌락이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식욕, 휴면욕 등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상대를 요구하는 성욕이나 권력욕 등은 쾌락의 특성상 더 빠르게 다 큰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는 나의 경계를 넘어서기에 추가적인 거짓말과 자기 합리화와 추악한 수습이 필요하기에 나의 양심과 이성을 회복 불능으로 오염켜버리니 아주 주의를 해야한다. 그래서 욕구나 쾌락이 나의 눈을 유혹하고 내 마음을 두드리고 내 이성을 마비시켜 나갈때 그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멀리 도망치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나의 육체됨-욕망과 쾌락-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나를 맹신하다보면 어느새 무너지고 황폐해져 후회하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점은 혈기가 왕성한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용납되는 문제는 아니기에 더 나를 다듬어가고 육체를 훈련하고 나의 가치, 나의 영혼에 투자하려 노력한다.
하드디스크를 열어 거울에게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사랑받고 있고 멋진 사람이야. 그런 나를 응원해주고 미소지어주렴. 내가 더 자주 노래하고 춤추고 웃을 수 있도록 틈틈히 너를 꺼내 나를 보게 해다오. 거울아 거울아 응원해줄꺼지?' 왠지 거울이 '네'하고 대답을 해주는 듯하다. 그렇담 거울아 거울아 이세상에서 누가 제일 사랑받고 멋진 사람이니?^^
'수(필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의 범위와 우주 평화론자의 주장 (0) | 2015.02.01 |
---|---|
눈내린날 (0) | 2015.01.30 |
'안녕 헤이즐'을 보고 (0) | 2014.11.19 |
죄와 죄사이에 서서 (0) | 2014.07.09 |
딸기야! 죽었니? 살았니? (0) | 201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