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수)필

두려움의 둥근 벽

별신성 2014. 1. 16. 23:54

나는 안락한 이곳이 좋았다. 편안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둥근 이곳. 누군가가 나를 품어주는 듯한 이 아늑함.

나는 이 평화가 영원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난 이곳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려움의 압박. 저 밖. 저 밖으로 나는 나가야하나? 저밖엔 무엇이 있을까? 흉칙한 괴물이 다니진 않을까? 엄청 춥진 않을까? 황량하고 추운 곳은 아닐까? 아님 산소가 없어서 질식할지도 몰라.. 그 두려움이 몰려 오면 올수록 더욱더 이곳이 좁게 느껴졌다. 이 딱딱한 벽을 나는 깰수 있을까? 아니야 나는 할수없어. 이 벽은 너무 딱딱해. 나는 할수 없어..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 지났고 이곳이 더 좁게 느껴져 나의 가슴은 죄어 왔다.

두려움. 난 이제 이곳을 나가야만 한다는 두려움. 나는 왜 이 안락한 곳을 굳이 나가야할까? 두려움이 머릿속을 꽉채워 넘치자 내 입술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구시렁구시렁. 또 나는 그런 내모습이 더 한심해 보였다. 이 쓸때없는 입술같으니.. 내 입술을 내리쳤다. 아얏.. 어?? 생각보단 내 입술이 딱딱했다. 혹시?? 할수 있을까? 이곳을 나갈수 있을까? 간만에 섬짓 스치는 희망 한모금에 난 벽을 두드려봤다. 역시나 딱딱하다. 다시 하루 이틀 삼일이 흘렀다.

어느날 밖에서 노래소리가 들렸다. 누가 부르는 걸까? 가끔은 짹째짹하는 노래소리가 들렀고 가끔은 쉬이잉하는 노래소리가 들렀다. 가끔은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도 들렸다. (주: 나중에 안 거지만 새소리, 바람소리, 빗소리였다.) 저 노래들은 나를 위해 부르는 걸까? 나를 꾀려는 나쁜 무리는 아닐까? 그 노래소리는 나를 기쁘게 하다가도 다시 나를 두려움이 몰아넣다. 그리고 나는 다시 멍하니 벽을 쳐다봤다. 나는 여기서 나갈수 있을까? 나간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먹을게 없어서 굶어 죽진 않을까? 이곳을 떠나는 건 무리야. 나는 할수 없어.. 그렇게 또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갔다.

어디서 향기론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지? 싱그러운 시큼한 냄새? 무슨 냄새일까? (주: 옆에서 꽃망울이 터트린 들꽃향기였다.) 하지만 두려웠다. 밖. 그곳은 이곳보다 넓은 곳이기에 내가 다 알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위험이 분명 도사리고 있겠지. 하지만 냄새가 향기로워 코를 더 벽가까이 가져다 댔다. 틱. 딱딱한 입술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꼈다. 벽에 입술이 부딪혀 이쁜 벽에 흠집이 났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내가 아끼는 이 안락한 벽에 흠집이라니 점점 이곳도 싫어졌다. 난 이 곳을 나갈수 있을까?

순간 내 눈에 그 흠집이 들어왔다. 혹시?? 입술로 저기에 구멍을 낼수 있지 않을까? 아니야. 구멍을 냈다가 다시는 수리할수 없을꺼야. 저 구멍으로 길다랗고 뽀족한 적들이 기어 들어올지도 몰라.(주: 뱀이나 지네를 이때는 더 흉칙하게 상상했다.) 구멍을 냈다가 이곳이 무너지면 어쩌지? 내가 무거운 벽돌에 깔려 죽을지도 몰라.. 닥칠 모든 상황들이 두려웠다.

꿈을 꾸었다. 나는 아주 가파른 높은 곳에 서 있었다. 밑으로 내려가야지 했는데 너무도 높아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저기 돌아나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고 기쁨에 나는 그곳으로 달렸다. 그러던 순간 나는 발을 헛디뎠고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나는 살려고 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밑도 끝도 없이 떨어졌다. 몸에 안간힘을 실어보았지만 허사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위에서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쯧쯧쯧. 역시 바보야. 머저리 같은 놈. 내 저럴줄 알았어. 크크크" 떨어지는 나의 눈빛과 그들의 눈빛이 부딪혔다. 냉소의 눈빛. 아.. 떨어지는 내가 너무도 쪽팔렸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긴거냐.. 그런데 아래에 둥근 물체가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그 모양. 내가 저기에 부딪히는 건가? 아.. 안돼애~ 비명을 지르다 잠에서 깼다. 휴~ 꿈이였구나. 나는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둥근 물체. 어느새 이곳엔 안락함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듯이 미친듯이 입술로 벽을 부딪히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시끄럽게 안이 울렸고 입술이 얼얼했다. 하지만 나는 쉬지 않았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작은 틈이 보였고 곧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사이로 약간의 눈부심이 들어왔다.(주: 달빛이였다)

내가 무슨짓을 한거지? 내가 지금 벽을 부순건가? 내가 자다가 미쳤나보다. 어쩌자고.. 어느새 뚫려버린 벽을 보자 다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제 적들이 저리로 기어들어올지 몰라. 나는 다시 부서진 부스러기로 구멍을 메우려 애를 썻다. 하지만 그럴수록 벽은 더 금이 갔고 구멍은 더 커져갔다. 밖에서 무슨 저음의 울음소리가 들린다.(주: 늑대소리였다) 순간 온몸의 털이 쭈볐섰다. 그렇게 밤을 꼬박 뜬눈으로 보냈다. 어제보다 더 밝은 빛이 들어왔다. 나는 슬그머니 빛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따사로웠다. 아직은 아무일도 없는거지? 누군가가 밖에서 나를 보고 있지는 않는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부서진 이곳은 나의 안식처가 되지는 못할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구멍으로 다가갔다. 밖은 어떤 곳일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스다듬으로 구멍밖으로 내 시선을 쏘아보았다. 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주: 하늘을 그리 생각했다.) 구멍을 너무 위로 냈나? 나는 다시 위에서 옆으로 구멍을 내기시작했다. 이미 금간 그곳은 어느순간 쩌억하며 반동강이 되며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젠장! 발가벗겨진 채 내동댕이쳐진 나.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숨을 곳도 없었다. 또 너무나도 두려웠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나.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이 흘러갔다.

밖엔 두려워했던 괴물들이 없었다. 또 산소도 충분했고 아니 그보다 더 시원하고 부드러운 산소였다. 춥지도 않았고 황량한 곳도 아니였다. 두려움보다는 현실은 더 평화로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려움이 사라졌다. 두려움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푸른 하늘. 또 바람이 불면서 내 팔을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햇살도 내 피부를 덮어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새로운 풍경에 신이 났지만 어젯밤의 무리로 인해 몸이 너무 피곤했다. 어느새 나는 따스한 햇살속에 깊은 잠에 들었다. 

꿈에서 나는 아주 넓은 둥근 벽을 보았다. 그 벽이 내게 말했다. "이전에 내가 살던 그 둥근 벽처럼 너로 이곳을 가득 채워보렴. 이곳이 좁게 느껴질 때까지.. 할 수 있겠지? 넌 할 수 있을꺼야. 그리고 혹시나 이 넓은 둥근 벽을 다 너로 채웠다면 또 두려움이 몰려올꺼야. 저번에 처럼 순식간에 말이야. 하지만 걱정하지마. 넌 또 이 벽을 부술수 있을테니까 말이야."

꿈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내 깃털은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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