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서 물오른 딸기가 불끈 땡겼다. 음전하를 잃은 이온이 그 반쪽을 갈구하듯 간밤에 시장통 마트로 향했다. "떨이요! 1+1해서 8천원!" 어느새 내 손엔 딸기 두상자가 들려져 있었고 나는 어느새 딸기 한상자를 까서 흐르는 물에 정갈히 씻고 있었다. 무슨 세례식마냥 딸기의 죄를 사하며 하나씩 하나씩 냠냠 미션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역시 봄엔 봄 딸기가 몸보신엔 최고여!' 뱃속에 쌓여가는 딸기는, 옛날 마당한켠에 키우던 딸기가 흰 꽃을 피우고 간신히 열매를 맺고 노심초사하며 익기를 기다리다 누구보다도 먼저 따먹던 그때의 딸기맛과 흡사했다. 스폰지같은 딸기의 육즙은 내 입술뿐 아니라 내 마음의 모세혈관까지 촉촉히 적시어 주고 마음녘으로 흘러넘쳤다. 마음속 세포들이 전율하는 카타르시스의 소리들이 속에서 석류방울 터지듯 조용히 탄성을 터트렸다. '딸기의 숭고한 정신은 두고두고 기억하며 기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고이고이 딸기의 숭고한 맛을 이리 저리 탐닉하며 음미했다. 그런데 그때.. 잔인한 상상의 판도라 뚜껑은 열리고..
'이 딸기는.. 죽은겨? 살은겨??'
한줄기 명제는 내 뇌리를 때리고 기스를 스윽 내고 지나갔다. 정말 이 딸기는 죽은 겨? 살은 겨? 난 산 딸기를 먹는건가? 죽은 딸기를 먹는건가? 나는 살아있는 딸기를 먹는다고 생각은 했는데 막상 조금씩 상한 딸기를 보니 마냥 산 딸기라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 딸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 보자!' 우선 딸기의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되집어본다. 딸기양은 비닐하우스의 고운 옥토에서 3월 태어났다. 하얀 꽃도 피우고 앙증맞은 주금깨도 키우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따사로운 태양을 받으며 젊음의 나날들을 향유하고 있었다. 그때 그토록 상냥하던 주인은 배신의 칼날을 휘드루고 딸기는 자신의 몸에서 절단되는 일생일대의 잔혹사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딸기양은 죽었는가?'라는 의문이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선 '그 딸기양을 하나의 객체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사실 딸기양은 딸기 식물의 열매로 인간으로 따지면 생식기와 같은 존재이다.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 볼 것인가?하는 것은 생사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다. 사과나 감과같은 과일나무류는 확실히 열매로 번식하지만 딸기는 주로 기는 줄기로 번식하기에 채소류인 딸기에게도 동일한 객체권을 부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긴 하다. 하지만 인터넷상에 딸기 열매에서 딸기씨를 하나하나씩 뽑아서 싹을 틔운 후 심고 재배하신 호모 딸기엔스 딸기엔스 분들이 계시기에 그분들의 공로에 힘입어 딸기에게도 과일나무열매와 동일한 객체권을 주기로 한다. (땅땅땅!) 이렇게 함으로서 딸기가 딸기나무의 일부분이였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은 먼저 일단락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절단된 시점에 딸기는 바로 죽었는가?와 같은 문제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은 살아있는 물고기의 머리를 동강 잘라낸 그 0점인 순간에 그 물고기가 죽었는가? 살았는가?와 같이 심각한 실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서 펄쩍 뛰니까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았다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따르고, 두 눈이 증명하듯이 모가지가 댕강 날아가 있으니 죽었다라고 언도하기에는 물고기가 너무 파닥거린다. 산낙지 다리같은 그런 생명 력(力)과 생명 실존은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그래서 확률적으로 20% 살았다라고 지혜롭게 말해야하나? 싶다가도 뇌사나 식물인간같이 살았으나 죽은 생명체들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아무튼 여기서 그런 문제는 패스! 우리는 딸기를 하나의 객체로 보고 논리를 단순화하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것을 누리도록 하자. 자. 딸기는 그 절단의 순간에 하나의 객체로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한다. 그러면 그 객체인 딸기는 살아 있는가? 몇몇 딸기를 자세히 보니 곰팡이가 핀 흔적도 보이니 딸기의 생사 여부를 100% 살았다고 장담하기엔 이르다. 물론 사람처럼 병에 걸린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병에 걸린 것은 우선 죽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자. 그럼 과연 딸기는 살아 있는가? 사실 딸기에게 객체권을 부여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준 주금깨 딸기씨앗은 겉으로는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딸기씨앗은 딸기열매의 5%도 안되고 나의 입맛에 조차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논거인 객체부여론의 의미가 빛을 바랠 수도 있지만 논지의 일반화를 위해서 인정하고 딴지 없이 딸기의 생사여부를 다시 살펴본다. 사실 딸기육즙 속은 건강하고 맛있었다. 추릎! 간혹 세포들의 비명소리도 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포의 탄력성과 향기, 신선도, 맛 등 객관적인 근거로 추정되는 딸기의 생명은 과학적으로는 별 무리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정말 레알 딸기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오늘도 나는 산 딸기를 먹었다고 자신하지만 산 딸기는 아무런 말이 없이 조용하다.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이토록 어려운 작업인가 싶다. 엊그저께 살았던 딸기가 절단된 뒤에도 죽은 증거가 없고 멀쩡하게 살아있기에 딸기가 살아있다고 단정 지어도 별 무리가 없겠지? 바이러스는 평상시에는 무생물로 있다가 환경이 갖추어지면 생물로 변신해 번식을 한다는데, 딸기도 딱 그 정도의 생명 존재력을 지녔으면 좋으련만 결국 딸기는 그보다 더 연약한 한줌의 생명을 붙들고는 내 뱃속으로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딸기는 정말 죽은건가?? 딸기 형상이 변형되었다고 죽음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문제는 계속 복잡하다. 그 문제는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 시간에 논의해 보도록 한다. <2부, 딸기쨈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별들에게 물어봐! (커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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