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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쥴 테트리스 -24.7.4(목)

스케쥴 테트리스 -박원주- 달력 위로 스케쥴이 내려온다. 시간이란 속도에 맞춰 일이 내려온다. 누가 주는 건지 어떻게 생기는 건지 포장하듯 급히 쌓으며 테트리스를 한다. 빠르지 않아도 놔두면 쌓이고 이리저리 돌려도 삐긋하면 심란해진다. 위태하게 쌓았다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수습은 오롯이 나의 몫이지. 내려오는 일, 다가오는 일, 돌발적인 일, 모양도 제각각인 스케쥴의 퍼즐. 꼼꼼히 신경쓰기엔 머리가 아프고 대충대충 살기엔 피해가 예상된다. 내려오는 일이 나를 보며 시선을 맞춘다. 애써 시선을 피해도 어딘가 쌓인다. 어느새 스케쥴의 빈자리가 다 차버렸다. 다음은 어찌할꼬? 머리속이 복잡해도 오늘의 게임은 여기까지! * 아이 교육과 방학 일정, 특강, 회사 일정, 휴가, 가족 만남, 비행기, 공휴일 등등..

번개 소스 -24.7.3.(수)

번개 소스 -박원주- 같은 건 지겨워. 번개 한번 치자. 반복된 건 재미없어. 번개 한번 치자. 내가 신이 되는 반란의 시간이야. 모든 윤회를 끊고 단도직입으로 희번득! 마른 일상이 우르르꽝! 진동을 한다. 가끔은 쳐야하는 양념의 맛이야. 번개 한번에 생명이 소모품이란 현실을 잊고, 번개 한번에 사람이 부속품이란 망상을 잊고, 번개 한번에 인생이 영원하다는 희망을 끊는다. 한번쯤 신이 뭐하는지 상상이나 하자구. * 동료들과 스크린 대회를 열어 참석했더니 스크린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네.

정도 껏 -24.7.2.(화)

정도 껏 -박원주- “정도껏 해!” 항상 듣는 익숙한 말. 해석이 달라 애매한 말. 눈치껏보단 복잡한 말. 대충보다는 어려운 말. 알아서보단 난해한 말. 평균보다는 높은 말. 결론이 담긴 미래지향적 말. 말없이 눈치껏 대충 알아서 해야하는 말. 모두가 정도 껏 하는 그 말. * 회식자리에서 정도껏 말하고 정도껏 먹고 정도껏 대응하는 게 참 어렵구나.

요구사항의 처리 -24.7.1.(월)

요구사항의 처리 -박원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고객이 입을 열자 혓바닥이 들썩들썩 마디마디 요구사항이 주렁주렁 열린다. ”네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혓바닥에서 떨어진 열매들은 어느새 싹이 나고 가지를 치고 또 열매를 주렁주렁 연다. “네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네 다음 고객님~” ”네 다음요~“ 요구사항은 먹지도 못하는 열매를 잔뜩 달고 어느새 거대한 숲을 이룬다. 내가 진상이라 자랑이라도 하듯 열매는 또 싹이 나 두눈을 부릅뜬다. ”네 고객님. 양식을 채워주세요.” 양식을 채우지 못한 열매들부터 가차없이 버린다. 요구사항들이 날 좀 보소 목청을 높인다. “네 고객님. 처리 담당에게 말해둘게요.“ 요청사항들을 수확하기엔 손이 모자랄 뿐이다. “네 고객님. 내일 확인해서 말씀드릴게요..

버스 경로 -24.6.30.(일)

버스 경로 -박원주- 들리는 소문엔 그리 간다했는데. 알아본 바로는 그리 해야했는데. 노선과 현실은 판이하게 다르네. 오늘도 버스는 다른 길로 떠나네. 나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내게 어떤 경고도 없이 낮선 곳에 떨궈 놓고 그곳을 즐기라네. 처음엔 당황하다 이제는 그러려니. 버스가 뭐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지. 기차가 탈선한 것도 아닌데 다시 가면 되지. 버스가 아는 대로 가는 게 행운인거지. 허허. 낮선 다리 처음 본 풍경이 나를 반긴다. 항상 새 곳 찾아 새 버스 타듯이 새로운 정거장도 곧 익숙해지겠지. 원치 않는 목적지도 곧 익숙해지겠지. 버스 타듯 인생 타듯 다 지나가겠지. * 버스를 탔는데 원래 구글의 경로와 다르게 가서 당황의 연속.

꿈에 부픈 달팽이 -24.6.29.(토)

꿈에 부픈 달팽이 -박원주- 비가 와서 달팽이가 여행을 나서네. 흥겨워서 꿈꾸며 먼길을 떠나네. 내리는 비에 춤추는 위태한 달팽이들. 사람에게 밟힐 줄 생각을 못했구나. 한 놈 한 놈 주워서 화단으로 던져주네. 조심히 다니거라. 네 길이 안전해 보여도 네 집이 튼튼해 보여도 세상 밖은 위험하니 큰 길은 말거라. 지루해도 비좁아도 좁은 길로 다니거라. 비가 와 흥겨워도 선은 넘지 말거라. * 주말에 아이랑 키즈카페 가서 놀다보니 하루가 다 가버린다. 밤에 아이랑 달팽이가 밟히지 않게 주우며 또 하루를 보낸다.

첫 시험 -24.6.28.(금)

첫 시험 -박원주- 똥만 싸도 칭찬 받던 아이가, 밥만 먹어도 대견스럽던 아이가, 일어서기만 해도 박수받던 아이가, 이젠 영어로 첫 면접을 본단다. 뭐라나 궁금해 귀 대고 듣는데 뭐라고 쫑알쫑알 떠들며 웃는다. 언제 이렇게 자란건지.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흐른건지. 그저 대견하구나. 그저 뿌뜻하구나. 여지껏 산 것처럼 살아내면 되는거지. 한시름 한단계 넘어가면 되는거지. 웃고 즐기며 그렇게 사는거지. 고생했다. 내 새끼. 잘했다. 내 아기. * 영어 유치원을 알아본다고 갔더니 아직 어린 아이에게 테스트를 해보고 반을 넣는단다. 어릴 때부터 시험이라니 아이들이 벌써부터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