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 우기
-박원주-
찬 비가 보슬보슬 대청마루에 내리네요.
질퍽해진 빈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다
바람에 날리는 비를 피해 벽에 기대 앉았어요.
어머니 제봉틀 담요도 챙겨와 덮었네요.
청마루 밑 야옹이도 어느새 올라와
내곁에 골골골 잠들어 버렸어요.
하늘도 구름도 나도 냐옹이도
비내리는 날 마당극을 잔잔히 즐기고 있네요.
밖엔 찬 비가 계속 내리네요.
마당에 폐인 물꼬를 따라
내 시선도 내 주름도 따라 흐르네요.
장독대에 떨어지는 처마끝 빗방울.
뚜껑에 동그란 파문을 그리며
점점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네요.
저마다의 다른 음색의 자장가는
옛날 어머니가 들으셨던 그 자장가예요.
간만에 빗소리에 토란토란 토란잎은
싱글싱글 신나게 널뛰듯 춤을 추네요.
감나무도 곧 노란 감꽃을 피우고
앵두나무도 곧 하얀 앵두꽃을 피우고
생명있는 존재들은 저마다의 꽃을 피워내겠죠.
호흡있는 당신도 곧 피어 나겠지요.
할머니는 못자리 물대러 가신대서
오실 때쯤 아궁이 불지펴야지 했는데
빗소리에 그만 잠들어 버렸어요.
할머니 대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냐옹이가 도망치다
마당에 발도장을 마구 찍어놨네요.
그래도 쏟아지는 잠은 어쩔수가 없어요.
할머니가 마지못해 솥에다 누릉지를 끓이네요.
오늘 저녁 아궁이 메뉴는 고구마.
고구마 구워먹고는 온돌방 아랫묵 누웠어요.
포근한 이불을 덮고선 달콤한 꿈나라로 가네요.
촉촉히 내리는 단비에 하늘도 땅도 풍경도
간만에 단잠에 젖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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