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해부학 시간 -24.2.15.(목)

별신성 2024. 2. 16. 06:35

해부학 시간
-박원주-

“거울아 거울아 이제 난 어떡하면 좋겠니?”
거울을 앞에 두고 싸인 나를 벗는다.
거울은 나를 제일 잘 알고있다.
벗은 날 많이 봐와서일까
날 바라보는 시선이 익숙하다.
벗고 싶어 하나둘 옷을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피부를 벗는다.
벗고 싶어 하나둘 머리를 벗는다.
널부러진 나를 주섬주섬 헤집으며
해부학 시간에 쿵쾅대던 그 심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무얼 사랑하고 있니?’
심장을 룰렛처럼 돌리며 어디를 향해 뛸지 묻는다.
돌고 도는 피처럼 돌고 도는 사랑은 정처가 없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머리를 알코올에 꺼냈다 담갔다 반복하며
머리에 쓰여진 글자를 읽어보려다
알코올에 흥건히 고인 여러 글자들을 건지며
남은 미련을 끼워맞춘다.
‘나는 무얼 느끼며 살고 있니?’
핏줄인줄 알았던 신경들이 이렇게 길어서
나는 그리도 아파하고 아파하며 살았던걸까?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신경들을 난도질한다.
‘나는 무얼 먹고 살아야할까?’
똥이 가득찬 창자야
똥이 차도 썩지않고 살겠다고 바둥대는 창자야
니가 가련하구나 내가 가련하구나
순대마냥 가련한 창자를 부여잡고 한바탕 곡을 한다.
‘나는 어찌 살아야할까?’
간이 부었다.
그래서 내가 여지껏 살아낸 걸까?
기특한 간에게 칭찬을 몇마디 건내본다.
‘나는 이제 무얼 해야할까?
나머지는 왜 달려있는거야
쓰잘데기 없는 것 같아 남은 걸 걷어차니
내가 더 아프다.
내도 이리 쓰잘데기 없었나?
밀려오는 동질감에
이놈들 묵묵히도 일했구나
성실히도 빈자리를 채웠구나
나에게 던질 말들을 자화자찬 위로한다.
’나는 누구일까?‘
이목구비.
이리저리 살짝만 조정하면 이뻤을텐데
어쩌지도 못하고 이게 숙명이려니 운명이려니
어딘가 아쉬운 모양새에 기분이 나빠 거울을 쳤다.
쨍그랑!
“상담 시간이 끝났습니다.”
“다음 고객님은 7영업일 후 방문해주세요.”
벗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깨진 유리를 보니 알알이 잔소리가 심해
몽땅 싸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 직원이 한국 다녀와서 갑자기 상담하고 싶다고 해서 상담하는데 퇴사 이야기도 하고 개인 이야기도 하는데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마음 속으로만 응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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