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하루
-박원주-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정오.
벌써 하루의 절반이 지났다.
하루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을 시간을 아는 건 다행이지만
곧 마칠 시한부 하루는 계속 침몰하고 있다.
죽음이 생각을, 생각이 오후를 점령하자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들은 파업을 선언했다.
우유부단했던 오전처럼 보낼 시간이 없다.
오전을 곱씹으며 반성할 여유도 없다.
새롭게 알차게 남은 반을 꾸며도
하루는 정해진 끝을 향해 계속 흘렀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자정.
눈을 감았다.
결국 오늘이 죽었다.
블럭 하나에 무너진 높다란 젠가처럼
작은 틈 하나에 터져버린 거대한 댐처럼
꽁초 하나에 다 타버린 울창한 숲처럼
원인 모를 찰나에 멀쩡했던 인생이 끝나버렸다.
무슨 오류로 생명이 끝나는지 모르고
무슨 의도로 인생이 끝나는지 모르고
운명의 장난처럼 하루의 인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땡. 땡. 땡. 땡. 땡. 땡.
6시.
눈을 떴다.
다행히 어제 하루가 죽었다.
꿈처럼 다시 맞이한 오늘 하루.
거울에 맨몸뚱이를 비추며 얼굴을 꼬집고는
오전 호흡을 길게 쉬며 인생을 가다듬었다.
* 바쁜 하루를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니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가 다 가고 야근을 마치고 퇴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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