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 사냥
-박원주-
땅에 박힌 귓구멍에 고막이 산다.
갑자기 하늘에서 입이 열리고
바람이 치고 천둥이 치며
귓구멍에 속속 박힌 고막들을 사냥한다.
쏘아대는 입과 버티는 고막.
입이 쌓인 생각들을 쏟으며 맹공을 한다.
고막이 긴장하며 귓구멍을 틀어 막는다.
진동이 생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말이 마음속을 때리지 못하게
귓구멍 깊숙히 안으로 숨는다.
‘그만해. 시끄러워’
‘시간 아까워’
인내의 끝이 다가와도 고막은 말 못하는 벙어리.
필름처럼 옛 고요가 떠오를 뿐이다.
아 태초에 천지를 지은 고결한 말이 그립다.
아 태초에 6째날 전 그 고요함이 그립다.
흘러가는 이 시간은 우리가 함께한 추억이 될까?
까만 갯벌 위
마지막 남은 입을 쩍 벌리고
고막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누웠다.
입이 사냥을 마쳤다.
* 모임 2차에서 모임을 주도하시는 분의 거침없는 입담에 두손두발을 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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