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A대장의 사건 개요(D-300일간)
D-day: 어느 봄,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다. A대장은 부하들을 모두 전쟁터로 보내 놓고선 자신은 집에 홀로 남았다. 어느날 저녁, 침대에서 자다 일어난 A대장은 옥상을 서성이다가, 옆집 B씨가 나체로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A대장은 B씨에게 반하고 만다.
D-1: A대장은 사람을 고용해 B씨의 뒷조사를 했다. 알고보니 B씨는 자기 부대 C대위의 아내였다.
D-2: A대장은 부하를 시켜 B씨를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 A대장은 꿈틀대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B씨를 강간하고 만다. 그러나 A대장은 사건을 무마하고자 B씨를 입막음 하고선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B씨는 임신을 하고 만다.
D-32: B씨는 황급히 A대장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A대장은 임신 사실을 숨기기로 작정한다. C대위가 자기 아내 B씨와 자게 해 임신을 덮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전쟁터 현장에 나가 있던 B씨의 남편 C대위를 불러 들였다.
D-33: A대장은 C대위를 만나 전쟁 상황을 묻는척하며 "간만에 집에 가서 목욕도 하고 쉬어." 하며 술과 음식을 보냈다. 그러나 C대위는 집에 가질 않고 부대 동료들과 함께 밖에서 잠을 자 버린다.
D-34: A대장은 C대위가 귀가하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해서 C대위를 불렀다. "왜 먼 길을 왔는데 집에 가서 쉬지를 않는거지?". C대위는 "지금 전쟁터에서 상사와 동료들이 텐트에서 밤낮을 지내며 밖에서 진치고 정신 없이 싸우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혼자 모른척하며 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쉴 수 있겠습니까? 대장님께 맹세코 저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A대장은 고심하며 C대위를 하루 더 있게 했다.
D-35: A대장은 C대위를 불러 자신과 함께 마시고 술에 취하게 했다. 그러면 술에 취해 집에 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만취한 C대위는 집에 가질 않고 초병들과 함께 또 밖에서 잠을 자고 만다.
D-36: 결국 A대장은 C대위에게 자신의 계략이 안먹히는 것을 알고는, 그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A대장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수족 D대령에게 편지를 써서, C대위에게 편지를 부쳤다. 편지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C대위를 전쟁이 가장 치열한 최전선으로 내보내고 나서, 너희는 뒤로 물러나 그가 적군의 칼에 맞아 죽게 해라"
D-37: C대위는 전쟁터로 복귀해 D대령에게 A대장의 편지를 전해주었다.
D-38: D대령은 전쟁 중 적진에서 가장 강한 용병들이 있는 곳을 알아낸 후 C대위를 그곳에 보냈다. 성에서 적군이 나와 기습공격을 했고, 몇몇 사상자와 함께 C대위도 결국 죽고 만다.
D-39: D대령은 A대장에게 사람을 보내 C대위의 죽음을 알렸다.
D-40: A대장은 C대위가 죽었음을 듣고는 D대령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한다. B씨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한다.
D-47: B씨는 남편 C대위의 장례를 치렀다. 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A대장은 급히 B씨를 데려왔다. B씨의 임신이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A대장은 B씨를 아내로 맞아 들인다.
D-300: B씨는 A대장의 아기를 출산한다.
A대장은 B씨를 성폭행하고, C대위를 살해하고, B씨를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하지만 이때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완전 범죄가 일어난 것이다.(2Sa 11)
#신이 침묵한 시간, 300일.
위 사건의 A대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잘 아는 다윗 왕(David)이다. 그는 성경의 최고 위인이자 성군으로 칭송받는 존재이다. 그러면 왜 신은 잘못한 인간에게 이토록 오래 참는 것인가? 왜 신은 성폭행범, 살인범, 절도범에게 300일 씩이나 오래도록 참아내는 것인가? 신의 입장에서는 살인이나 성폭행이나 절도나 다 같은 죄니까 죄의 크기는 의미가 없어서 일까? 회개할 시간을 주려고? 이때까지 정을 생각해서 일까?
신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매일 죄를 짓고 사는 인간-나를 포함해서-에게는 어쩌면 참 고마운 일이다. 죄에 대한 즉결 심판은 없으니 말이다. 혹시나 그게 실수였다면, 300일은 만회하기 넉넉한 시간이다. 회개든, 용서든, 보상이든, 복구든, 잘못된 걸 뒤집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어쩌면 다행이다. 어쩌면 신에게 300일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300일 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명확한 결말을 보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죄 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게 아니라, 명확한 끝, 결말, 그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건지 말이다. 거짓말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번 거짓말 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죄 안 지은 사람은 있을찌언정, 한번 죄 지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죽음을 낳는다"는 말처럼, 내 노선과 결말을 명확히 정할 시간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게 한번의 실수였다는 변명을 듣기 싫어서, 그 변명에 단번에 "넌 죄인이야!"라고 단정짓는 차가운 신이 되기 싫었는 지도 모른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는 있다. 다윗도 실수 하니까. 그러나 실수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선 안되겠지. 그 실수에서 돌이키지 않고, 실수의 반복을 용납하는 순간, 나는 그 실수의 노예가 되어 버리니까. 실수가 내가 되게 해선 안되겠지. 실수도 인과론의 세계에서는 큰 나비효과를 일으킴을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춘 즐거운 칼춤 한번에 누군가의 목이 댕강 날아가는 어마무시한 인과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실수에 대한 처절한 대가를 알아야 한다. 그게 자숙이든, 보상이든, 복구의 시간이든, 더 많은 희생이든...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처럼, 실수에 썩은 내 살을 도려내야, 뼈는 멀쩡하게 살아서 내 존재가 유지되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다. 실수하는 인간에게, 실수하는 인간이 되는 정의(definition)는 없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실수하는 인간이, 완벽한 신이 되어야하는 숙명의 아이러니다. 인간이 신이 되려 했던 처음 그 벌을, 이제서야 등가교환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아. 신의 침묵.. 그 긍휼에 감사한 마음과, 그 침묵을 활용하려는 욕망이, 함께 공존하는 또다른 살인의 밤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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