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멋진시와글과여운들 16

즐거운 편지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 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의자(이정록詩)-사는게별거냐 ..의자몇개 내놓는거여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폭포수 추임새가 절로 나오는 漢詩 두편(야보 도천, 신흠)

대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하나 일지않고 달이 물밑을 뚫어도 물위에 흔적조차 없다. -야보 도천(冶夫道川)- 죽영소개진부동(竹影掃階塵不動) 월륜천해랑무흔(月輪穿海浪無痕) 오동은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번을 이지러지도 그 본질이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신흠(조선중기 문인,1566~1628)의 야언(野言)-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묻는다 -휴틴 겨울편지中-

묻는다 - 휴틴 - 땅에게 묻는다; 땅과 땅은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존경하지 물에게 묻는다; 물과 물은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채워주지 풀에게 묻는다; 풀과 풀은 어떻게 사는가? -우리는 서로 짜여들어 지평선을 이루지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에게 묻는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우리들이 달려가는 비포장 지방도로-박상천

우리들이 달려가는 비포장 지방도로 박상천 우리들의 삶은 고속도로가 아니다. 비포장 지방도로, 마주오는 차가 보이지 않는 폭 좁은 일방통행의 비포장 지방도로를 달려 터덜거리며 터덜거리며 그곳으로 간다. 덜커덩거리며, 덜커덩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 되돌아갈 수도 없고 앞길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우리들의 비포장 도로. 돌멩이가 튀어 부서지고 망가지며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모습들. 몇 킬로쯤 남았다는 이정표도 없는 비포장 지방도로를, 우리는 덜커덩거리며 달려간다. 무작정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