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유전법칙
-박원주-
"그 사람 어때요?"
둘만의 시간에 뜬근없이 날아와
내 귓가를 울리는 질문.
아뿔싸 내가 관계를 잘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살았구나
반성할 시간도 없이
수많은 생각의 파도가 뇌리를 때린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일까?
선의일까 악의일까?
정말 그게 궁금한 것일까?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지만
어떤 힌트의 관용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제 제한 시간 60초.
뇌는 풀가동으로 회전한다.
그 사람이 궁금한걸까?
내가 궁금한걸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가 궁금한걸까?
그(질문자)에 대한 나의 태도가 궁금한걸까?
그 사람과 내 사이를 오해하는건 아닐까?
그 사람이 뭔 잘못을 저질렀나?
내가 뮌 잘못을 했나?
솔직하게 말해야할까?
돌려 말해야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누설하진 않을까?
돌려 말하면 친근하지않다고 느끼지 않을까?
고작 그는 눈을 한번 깜박였는데
나의 생각은 수천리 퍼즐을 달려갔다가
최적화된 단어들을 골라
결국 입을 연다.
쏟은 말.
곧 나의 실수.
그에게 선사하는 나의 빌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내 몫이 아닌데
방심하는 순간 사고가 났다.
말과 말과의 섹스.
나의 말과 그의 말은 후끈한 섹스를 한다.
곧 말은 나의 말과 그의 말을 반반 닮은
색다른 말을 낳았다.
그의 말을 들은 그들은 또 색다른 말을 낳았다.
그들의 말을 들은 다른 그들도 또 색다른 말을 낳았다.
말은 계속 말을 낳았고
소문이라는 거대한 종족을 이루었다.
내 말이라는 이름은 달고 있지만
나의 말과 전혀 닮지않는 소문의 종족들.
말들은 말들을 계속 낳았고
내 후손이라고 날 아빠라 불러대며
내 말에 책임을 요구했다.
근데 난 네 아빠가 아니야!
너의 멀고도 먼 조상 아담이였어.
난 너희와 거의 무관하니
날 아빠라 부르며 달려들지마 제발.
'비타민 시++ > 옴니버스연습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례 그 민박집에서 -15.04.10.금 (0) | 2015.04.11 |
---|---|
늦꽃 -15.04.09.목 (0) | 2015.04.09 |
우물 가까이 -15.04.07.화 (0) | 2015.04.08 |
열렸게 닫혔게 -15.04.06.월 (0) | 2015.04.06 |
부활과 부활사이 -15.04.05.일 (0) | 2015.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