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해무와 숯꽃 -26.3.28.(토)

별신성 2026. 3. 29. 12:51

해무와 숯꽃
-박원주-

바다가 안개를 뱉었다.
전혀 보이지 않는 앞길.
섬 사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걸었다.
바다는 날 삼키지 않으리.
길은 끊어지지 않으리.
안개는 쉽게 걷히지 않는다.
걷힌 안개 사이로 간간히 나만 보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주저앉았다.
울까?
울음도 별 도움이 안되겠지.
멍 때릴까?
흘러가는 시간은 흘러간 걸음만큼 고되겠지.

안간힘을 짜내 모닥불을 피웠다.
타는 불 속으로 모든 불소시개를 태웠다.
아무것도 없는 안개속에도 불은 빨간 숯꽃을 피웠다.
끄지 않으면 꺼지는 않을 불꽃.
불은 더 태울 것을 구해오라 손짓 한다.
더 맹렬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불에 넣은 고구마가 익는다.
불에 넣은 조개가 익는다.
불에 넣은 물이 익는다.
불에 넣은 시간이 익는다.
불에 넣은 마음이 익는다.
불에 넣은 모든 것은 타기전에 익는구나.
사람도 익는구나.
타 죽지 않으면 탐스럽게 익는구나.

익은 것을 먹으니 삶은 삶도 맛나다.
해무가 앞을 가려도 불처럼 나는 여전하다.
불에 넣은 해무도 익는다.
익은 해무를 먹으니 해무도 맛나다.
막막하던 해무도 먹고나니 트럼 한점 뿐이다.
찰싹이는 파도 익더니 먼 수평선까지 익는다.


* 서해 바다 놀러 갔더니 해무가 앞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