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옴니버스연습장

나뭇잎 여정

별신성 2013. 11. 11. 01:24
나뭇잎 여정

- 박원주 -

가을녁 동산에 올라
무심코 낙엽을 밟고 지나다

뻐끔거리는
고동같은 낙엽 하나를 들고는
귓가에 가져가 대어다본다.

여름철 우렁찬 느티나무 매미소리
봄한켠 못다핀 아카시아 바람소리
철수네 모깃불 영희네 수제비국
한잎 한잎 우려나는 나뭇잎 인생.

신기함에 더 가까이 다가가
바닷가 모래같은 낙엽 위에 누워
메말랐던 나의 몸을 축이어 본다.
잎잎이 우려나는 내 인생의 잔영들.

모든 걸 벗고 대지에 누워
떠나는 여정은
이내 인생과 무척 닮았다.

어여쁜 꽃잎도 없이
아무런 열매도 없이
굳게 잡았던 나무의 손을 놓아 버리고
미련없이 떨어지는
나무로부터의 자유로운 해방.

그리고
나뭇잎은 바람결에 돛을 올리고
살았을제 그토록 꿈꾸던 항해를
이제라도 자유로이 떠나간다

나를 둘러싼 가치의 나무.
그리고 그 잔 가지들.
나는 미련없이 이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을까?
지금이나 나중이나 이 가치는 변하지 않을까?
영원하지 않는 부분에 갇힌 나는
언젠간 이것들을 놓아야하지 않을까?
그땐 아무런 존재나 의미나 시간도 없이
나뭇잎처럼 가벼이 훌훌 떠날수 있을까?

나는 애써 나뭇잎의 입술을 문질러보지만
나뭇잎은 말없이 그냥
이 작은 손도 훌훌
놓아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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