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주의보/향기나라뮤즈이야기

#1.14 삶이란 머피의 법칙

별신성 2012. 4. 27. 23:12

고통과 신음..

이는 살아있는 존재들만이 낼 수 있는 축복의 노래이다.

 

 

#1.14 삶이란 머피의 법칙

 

들꽃마을에는 알수없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알수없는 먼지같은 뿌연 흑색가루가 허공을 뒤덮고 있었고 한 마디로 식물에게서 동물의 시체썩는 냄새가 났다. 나도 여기서 이 전염병에 죽는구나라는 두려움이 내 머리속을 메아리치며 뒤덮었다.

"가..가까..이 가다가는 우리도.. 위..험하겠어. 리겔. 사태가.. 너무 심각해.."

"...그...그렇겠지?"

나도 베델의 떨리는 말속에 더이상 가까이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베델도 두려움에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멀리서 벌 한마리가 휙 날아오면서 검은 먼지 가루를 우리 쪽으로 휙 뿌렸다.

"아악!"

나와 베델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벌에게 놀란것이 아니라 검은 가루때문에 나도 전염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위이잉~윙윙~"

또 다른 벌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는 부리나케 그곳을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헉헉.."

벌의 날개짓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우리는 속도를 늦췄다. 갑자기 두려움에 도망친것이 머슥해 서로 쳐다보았다.

"음 음,.. 소장님께 우선 이 참담한 상황을 알려야겠어. 전염성도 빠르고 상황도 심각한 것같아."

"그래!"

우리는 허겁지겁 튤립나라로 날아갔다. 가는 길에 또 아까 그 벌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당황스러웠다.

"음..오늘따라 벌들이 많이 날아다니는군.."

 

튤립마을에 도착하자 가엘 소장님은 튤립마을을 수습하시랴 정신이 없으시다.

"소장님. 상황은 좀 나아졌습니까?"

"보다시피.. 속수무책일세.. 죽어가는 튤립들만 보고 있자니 가슴이 메어져 온다네.."

가엘 소장님은 정말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신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때 생명의 숲 연못에 사시는 헤라아주머니께서 허겁지겁 급하게 날아오셨다.

"수고많이시죠? 향기나라에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기에 물속에서 보고만 있을수 없어서 달려왔어요. 제가 머라도 도와야 될듯해서요"

"아닙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동요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생명의 숲 연못의 분들까지 나서실 필요야..."

"아니예요. 생명의 씨앗도 푸른 색에서 빛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어요. 무언가 향기나라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 같아요. 우리가 합심해서 막아야될듯해요"

그때 또 대원이 부리나게 말을 전했다.

"큰일입니다. 튤립마을 안쪽에 생존한 튤립들도 옆 허브마을의 전염병에 감염된 듯합니다!!"

"머라고?!!"

튤립마을 안쪽을 본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마을 안쪽에서는 벌써 물집들과 함께 검은 흑색의 먼지 가루가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안밖으로 난리구만..저 안쪽만이라도 지키려했더니 이젠 무엇을 지켜야될지도 모르겠구나..아.."

가엘 소장님의 한숨소리에 저 멀리 하늘의 검은 구름이 유난히도 시커멓게 보였다. 순간 왠지 향기나라의 미래를 보는 듯한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설상가상이라는 머피의 법칙. 잘못될 수 있는 일은 하필이면 최악의 순간에 터진다. 나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만들어진 향기나라인데..어떻게..이렇게 한순간에..이렇게 되냐고!! 어떻게!!"

나는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또한 우리가 노력한 이 많은 노력들이 모래성처럼 거대한 파도에 부서져 내리는 느낌이 몰려왔다. 아 이런것이 인생무상인 것인가. 특히 이 향기나라에서 이룩한 이 무수한 문명의 발자취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멸망할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들었다.

"리겔아..."

헤라 아주머니께서 나를 토닥여 주셨다.

"다 해결될꺼야. 걱정말거라. 우리에겐 아직 생명의 씨앗이 있지않니? 씨앗이 있는한 향기나라는 없어지지 않아."

"그죠..어떻게든 해결되겠죠?"

"그럼!. 우리는 그 많던 메뚜기때하고 싸워이겼잖니. 너가 힘을 내야 가엘 소장님을 도와드리지. 향기나라의 젊은 일꾼이 이렇게 나약해서 되겠니?"

헤라 아주머니께서 토닥이시며 쌩끗 미소를 지어보이신다.

'그래. 내가 힘을 내야지. 정말 힘든 건 가엘소장님과 죽어가는 이들인데..'

"킁킁?"

'이 향기는 머지?'

순간 헤라 아주머니에게서 싱그런 향기가 느껴졌다. 산뜻한 물풀의 향기. 꽉찬 수소둘산소하나의 향기. 봄의 싱그러운 향기.

"물이야!!"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동에서 서로 번개가 치듯 스쳐 지나갔다.

"소장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라니?"

"생명의 숲 연못의 물을 활용하는 겁니다!!"

"물을 가지고 어쩌란 말인가?"

"수공입니다! 물을 활용하는 겁니다."

순간 가엘 소장님과 나는 맞장구를 쳤다.

"바로 그거야! 똑똑한데! 수공이 있었군. 튤립마을이 생명의 숲옆이니 아주 딱이구만. 이놈들을 질식시켜 버리자구!!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군. "

우리는 부리나캐 생명의 연못에서 물을 끌어오도록 방법을 연구했다. 속이 빈 대나무를 활용해서 연못의 물을 튤립마을로 우선 끌어오기로 했다. 소리치는 비명의 경계선에서 수로를 파고 급하게 물줄기를 끌어왔다. 수로를 물로 든든히 채우자 점점 비명소리는 사그라 드는듯 했다.

"이제 땅속 놈들도 섯불리 수로근처로 접근을 못하겠지. 건들이면 수로가 터져 질식할테니. 하하"

우선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가엘소장님은 메뚜기때와의 전쟁때 큰 공을 세운 식충 식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물을 이용한 수공에는 습지식물들많큼 능한 식물도 없을 뿐더러 저 애벌레들을 처리하기에는 식충 식물들만큼 효과적인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전보를 받은 식충식물들이 속속 도착했다.

전투력이 강한 파리지옥부터 후방지원에 능한 끈끈이주걱, 통풀들이 대거 달려 왔다.

"반갑네. 동지들~이번에도 신세를 좀 져야겠네."

"별말씀을. 우리도 변방에 살다가 향기나라의 핵심으로 인정받으니 뿌듯하기만 하네. 듣기로는 애벌레들을 수장시킨다고 들었네."

파리지옥의 수장인 '칸'이 먼저 전략을 물었다.

"맞네. 보다시피 생명의 연못의 물로 수로를 가득 채웠네. 이제 이물줄기를 애벌레들에게로 뚫어버리면 애벌레들은 수장되어 버릴걸세. 살려고 땅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될걸세. 그때 처리를 부탁하네."

"오~오늘은 아주 풍성한 만찬이 되겠는걸? 하하. 이럴줄 알았으면 가족들도 모두 데려오는건데 거참 아쉽구만. 애벌레는 별미붕에 별미인데 말이야. 하하."

끈끈이 주걱의 수장인 '넵'이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가. 하하. 이렇게들 모여있으니 든든하군 그래."

"그래. 땅위로 튀어나온 애벌레 처리일랑 걱정말고 빨리 식사준비나 해주게. 하하."

호전전인 식충식물들은 수로를 중심으로 길게 늘어져서 애벌레들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렸다.

"대원들은 수로의 물꼬를 뚫어서 애벌레쪽으로 돌려라!!"

가엘소장의 지시에 일제히 대원들은 고여있던 수로의 별을 애벌레쪽으로 허물었다. 그러자 물에 잠긴 땅속 애벌레들이 땅속에서 발버둥을 치자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수공을 못이긴 애벌레들이 땅위로 스물스물 기어나오자 기다른듯이 파이지옥들과 끈끈이주걱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퉤퉤. 그런데 생각보단 흙이 묻어서 맛이 없군구만."

파리지옥들은 그냥 애벌레들을 씹다가 통풀속으로 뱉어 버렸다.

"흙은 좀 거르고 줄수 없겠나. 더럽게 시리. 하하"

통풀들은 입을 쩍하니 벌리고 파리지옥이 던지는 애벌레들을 차곡차곡 먹어 치웠다.

땅속에서 기어나온 통통한 애벌레들은 곧 풍성한 만찬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답이 없어보였던 애벌레 사태가 점점 수습되어 가는 듯했다.

물끄러미 지켜보시던 가엘 소장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튤립의 비명횡사가 엊그제 아니 몇시간전인데 이렇게 뻘리 사태가 수습되어서 다행이다.

"이제 이정도면 됐지 않은가? 이제 배도 든든하니 부르니 우리는 이제 가보겠네.."

"아 그러게나. 너무나 고맙고 수고들 했네."

"고맙긴. 우리도 향기나라의 일원임을 잊지는 말게나. 간만에 만찬 즐거웠네."

수고한 식충식물들을 이끌고 파리지옥 칸부터 집으로 돌아갔다.

향기나라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튤립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수로의 물꼬가 터져 점점 튤립마을로 스미자 흙탕물과 안쪽마을의 전염병 가루가 범벅이 되어 더 난장판같았다. 사태의 수습에도 모두가 마냥 즐거워할수가 없었다.

"소장님. 튤립마을은 1/3정도의 튤립이 쓰러졌습니다."

"음..안타깝지만 다행일세."

대원의 보고에 가엘소장님은 지친 목소리가 역력했다. 어쩌면 지쳤다기보다는 아직도 엄습해오는 저 전염병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소장님은 튤립마을 안쪽에 퍼지는 검은 가루들을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 세균인지 바이러스인지도 모르는 전염병은 어찌한단 말인가..답답하군.."

우리모두는 애벌레의 공격에 대한 승리를 자축하기보다 저 밀려오는 까만 전염병의 공포에 다시 전율해야했다.

인간세계에서도 흑사병으로 유럽이 멸망할 뻔했다고 들었다. 그런 인간도 버거워했던 바이러스를 우리 향기나라가 잘 버텨낼수 있을까? 인간문명에 비해서 아직 부족한 우리 향기나라인데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막막하기만 하다. 이렇게 막막함으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덮어버리는 저 전염병을 보니 이제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주마등같이 내 인생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래도 난 여한이 없이 잘 살았으니까 행복했노라라고 말하겠다. 내 인생은 아름다운 향기였다고 말하리라. 이내 못다핀 내 향기는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생각을 몇시간했는데도 튤립마을에는 고요함이 감돈다. 비명이 멎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가? 이상하군. 아까의 전염속도라면 지금쯤 남은 튤립마을도 초토화 되었을텐데 말이다.

"소장님 이상합니다."

"머가 말인가?"

"아까전에는 검은 가루가 급속도로 퍼져서 금방이라도 튤립마을이 오염될듯했는데 이상하게도 아까전 그대로입니다."

"그대로라고? 설마?? 급성 전염병이 그대로 일리가 있는가?"

"정말 입니다. 한번 보십시요. 아까전에는 저기 햇살바위근처까지 오염되었는데 지금도 저기까지입니다."

가엘소장님은 멀리서 햇살바위근처를 내다보았다. 나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확산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있었다.

"희안한 일이네요..우리가 한거라고는 애벌레와 싸운거 밖에 없는데..애벌레의 죽음에 세균들도 두려움을 느낀건가요?"

"그러게 말일세.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가엘 소장님과 나는 이 잠간 동안의 유예 시간에 기뻐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왠지 뜻밖의 행운이 어울리지 않게 짧은 집행 유예 기간이 주어진듯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이 짧은 유예기간에 작은 희망을 배팅해봐도 될까? 이 불규칙한 인생의 사인(sin) 곡선속에서 0이란 지점에서는 웃어도 될까? 여기가 저점이라는 확신만 있다면 맘놓고 울겠는데...나의 모든것이 무너지는 길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정확히 내딛일수 있을까? 그리고 연약한 향기를 가지고 아무일도 없었던듯 새로이 원래의 추억을 지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