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개인이 모이면 이기적인 집단이 될까.
사소한 이기심이 모이면 거대한 이기심이 될까.
#1.16 작은 이기심들의 합산
"긴급 속보입니다. 죽음의 계곡 남동쪽 얼음바위협곡에서 발생한 중심기압 935hpa 허리케인이 발생했습니다. 허리케인은 반경10Km, 풍속 42m/s으로 현재 호수마을 동북방향으로 빠르게 접근중입니다. 이번 허리케인은 보통 바닷가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10배 웅축시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검은 바이러스로 인한 막대한 사상자로 발생한 시점이라 에너지정책국의 발빠른 귀추가 주목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북극에서 생기던 오로라가 지난밤 향기나라 팽나무 언덕 상공에서 7분가량 관측되어 시민들의 반응이 격앙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건 또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지. 오로라는 또 뭐지. 나라에 망조가 들었나.. 에구.'
보통 상쾌한 아침햇살에 찌르래기소리에 맞춰 광합성을 시작하던 나의 하루 일과가 점점 험난한 속보들 덕에 더 분주해지고 있다.
"소장님. 소식은 들으셨지요?"
"그래. 안그래도 비대위 소집을 전보했다네."
가엘 소장님과 나는 에너지 정책국 임원들과 모여 다가오는 허리케인이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향기나라에 미칠 영향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였다.
"나라에 망조가 든게 확실합니다. 이제 어찌합니까? 보건국과 치안국에서 바이러스도 매듭짓지 못한 상황에서 저희가 무슨 대비를 한단 말입니까? 바람만 불어도 바이러스가 전나라로 퍼질 판에..나참..허허.."
기상청장은 소장님과 나를 들으라고 대놓고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네.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신속하지 못한 점은 반성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샘물로 우선 국가재난상태는 수습한 상태이니..."
"수습하다니요? 지금 다죽어가는 판에 저게 수습입니까? 바이러스에 걸린 향기들은 다 죽었어요. 샘물로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허리케인도 올라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렇게 말귀를 못알아들어서야 원.."
모두가 아니꼬운 시선으로 소장님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죽음앞에서 누가 초연할수 있으랴.. 비대위에서는 허리케인으로 인한 물리적인 피해보다 바이러스의 전국적인 확산을 염려했다. 지금 이상황에서 허리케인의 급습은 바이러스의 소용돌이 속으로 모두를 몰아넣고 말것이다. 하지만 우선 얼마남지 않은 저 생명의 샘물을 어떻게 활용하여 허리케인으로 인한 확산을 막을지는 막막했다. 우선 상태가 심각한 허브마을에 사용하여 허브를 소생시킨후 허브향기를 가지고 향기들을 치료하는 방안도 고려되었지만 허브들의 상태가 좋지않고 지금 그런 장기적인 대안들은 논의의 대상도 아니였다. 또 기존에 바이러스로 타격을 입은 곳에 복구용으로 사용할지 지금도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호숫가 마을부터 방어용으로 사용할지도 서로의 이권이 얽혀있어 뚜렸한 대응방안이 나오지가 않았다.
"자자.. 서로 지역적인 이권들은 내려놓고 이야기합시다. 이렇게 해선 답이 없어요. 답이.."
그렇다. 생명의 샘물이 양이 많다면야 분무기로 공평하게 뿌려 나누면 좋겠지만 생명의 샘에서 발원하는 물로 차츰차츰 채워지는 생명의 호수의 특성상 어느 누가 이 위기상황에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할까. 그리고 생명의 샘물을 섯부르게 다 사용해버린다면 생명의 씨앗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사실 이 모든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하나 격어보질 못했지만 말이다. 계속 이어지는 논방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그사이에 허리케인은 점점 다가오고 바이러스는 점점 퍼지고 있었다.
비대위는 서로 책임회피와 막막이 오고가더니 급기야 서로의 이익속에 의미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나와 가엘소장님은 허탈하게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참 막막하구만 리겔. 바이러스가 생명의 샘물로 저지선을 그어놓았지만 허리케인이 온다면..."
가엘소장님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면 이대로라면 인간계의 아틀란티스 문명처럼 향기문명도 영원히 식물계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누구하나 기억하는 식물이 없이 그렇게 자연은 흐르고 흐를 것이다.
이때 또 급하게 헤라 아주머니께서 긴급히 달려 오셨다.
"소장님. 수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채워져야하는데 점점 더 줄어들고 있어요."
"샘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오면 채워지고 있을텐데 왜 그런거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수압은 가면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어요. 이러다간 저희 물풀들도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우리는 다시 생명의 샘주변 호수를 샅샅이 점검해 나갔다. 호수가는 소용돌이 없이 잔잔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누군가가 샘물을 당겨서 끌어가고 있군."
우리는 물줄기를 따라가보았다. 물줄기는 튤립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튤립마을로 가서 따져 물었다.
"생명의 샘물이 말라가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하는 짓이냐니?? 몰라서 묻수? 내 새끼 살릴려고 물좀 먹이고 있수다. 뭐가 잘못됐수??"
당돌한 튤립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생명의 샘물이 언제부터 니꺼 내꺼 도장 찍어 놨수? 먹고싶으면 먹고 쓰던 물 아니우?? 그리고 어짜피 물도 거의 바닥 났는데 우리보고 가져가지 말란 소리는 윗대가리 너희들만 먹고 살겠다는 소리 아냐??"
나는 아무리 튤립마을이 초토화되었다고 하지만 막 내뱉는 말에 울컥했다.
"아니 이 아저씨가! 지금 소장님께 무슨 막말입니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너가 리겔이냐? 그래 말잘했다. 니가 시퍼한테 순순히 잘해줬으면 일이 이지경까지 안왔지. 향기들은 다 알아. 니가 괜히 시퍼 화를 돋우는 바람에 일이 이지경까지 왔다고. 시퍼가 시키는대로 그냥 들어주면 어디 덨나냐? 우리가 다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 뭐 이제 속이 시원하겠네. 바이러스도 다 퍼졌고 생명의 호수도 말라가고 허리케인도 오면 다 죽을 텐데 후련하겠어 응? 머 이제 저 생명의 씨앗도 시들겠지. 뭐 그래 다같이 죽자 죽어. 더러워서 이 물 안먹는다. 어짜피 죽을꺼. 에잇!"
순간 나는 멍해져 버렸다.
'이게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시퍼의 잘못인가? 너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 내가 시퍼가 원하는대로 향기나라의 정책을 협조해 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하긴 인간세계는 자본주의체계라던데 경쟁을 통한 시스템도 공산주의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그럼 더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씨앗해독집을 찾아서 시퍼에게 협조해야 하는가..'
"리겔.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돌히 하는가."
가엘소장님은 튤립아저씨를 다독이다가 멍하니 서있는 나를 툭쳤다.
"튤립마을이 생명의 샘물의 효능을 알아버렸으니 곧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겠구만. 정말 이러다간 바이러스에 죽는게 아니라 생명의 씨앗이 죽어버려서 향기문명이 멸망할지도 모르겠네. "
저기서 또 황급히 헤라 아주머니께서 뛰어오신다.
"큰일났어요. 들꽃마을부터 허브마을, 오이마을 할껏없이 마구 생명의 호수 가장자리를 허물어 뜨려서 물을 끌어가고 있어요. 이러다간 저희 물속 산호마을은 수압을 못견디고 쓰러지고 말꺼예요. 도와주세요."
생명의 호수에 다다른 우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여기저기에 물을 끌어쓴다고 생명의 호수 경계는 거의 다 허물어져 버렸었다. 저쪽에서는 서로 물을 끌어가겠다고 싸우는 향기도 있었다. 또 조금이라도 퍼 나르려고 물통을 챙겨온 향기들도 보였다.
"아아아~~아~"
어느새 헤라 아주머니는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져버렸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수압이 너무 낮아져서 그럴꺼야. 아직 마른 것은 아니니 우선 참아보세."
아 내가 보기에 딱히 방법이 없다. 벌써 생명의 호수는 초토화가 되어버렸고 공공재에 익숙한 향기나라에 공권력을 사용해서 제재하기에는 모두의 상황이 죽음앞의 등불이기에 그들도 죽음을 불사할 것이다.
시퍼..바이러스..허리케인..소갈...이렇게 모든 상황은 꼬이고 꼬여 풀수없는 실타레처럼 엉켜버렸다.
바이러스는 저 없어진 샘물의 양만큼 당분간은 세력이 약하겠지만 곧 우리 향기나라는 멸망하겠지.
그나저나 생명의 씨앗은 생명의 샘물없이 얼마나 버텨줄까? 저 씨앗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우리 몸뚱이인 식물의 죽음은 고사하고 향기문명도 모두 전멸되고 말것이다.
저 생명의 씨앗은 시퍼가 소유하려했던 것인데.. 씨앗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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