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남단의 섬, 제주도...
구름이 머무는 언덕처럼
어머님의 젓가슴같이
포근한 오름들
하얀 파도를 맞이하는
바다의 기암 해식 절벽
해가 여기서 솟을까?
성스러운 성산 일출봉
정다운 밭담사이로
한가로운 말들의 푸른 만찬..
제주의 아름다움은 나열만해도 시구같은 정말 정답고도 낮선 비경들이였다. 지나간 탐방기간을 돌아보면서 뿌듯하고 생생한 추억의 발자취가 남는 것은 풍경과 자연이 내 곁에서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제주의 돌담구멍을 지나 산방산을 돌던 바닷바람이 이곳까지 흘러 불어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비경의 삼다도(三多島)였지만, 돌과 바람보다도 역사의 아픔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곳이였다. 그리고 또한 역사속 상처의 혈흔이 더 많이 가슴깊이 응어리지고 석화(石化)된 외로운 섬이였다.
많은 견문이 중요시 되는 대학생활에서 내가 선택받은 학생으로서 비행기를 타고 이 섬의 짠 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뿌듯했다. 그리고 아직 분단의 아픔이 가시지 않은 현대사에서 제주 4.3 항쟁의 아픔의 동굴을 기어가고 더듬으면서 체험한 소중한 시간이였다. 또한 같은 동시대의 우리에게 이념과 인권, 역사에 대해 하나됨과 상생(相生)의 전략이 우리의 몫임을 조금이나마 부담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의 탐방기였다. 제주 4.3 항쟁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자연 비경속의 역사를 손으로 가슴으로 느껴보았다.
다랑쉬 오름에서 멀리 보이는 평야들을 본다. 그리고, 멀리서 아닌 직접 그 곳에서 느꼈던 제주의 비경에 감추어진 문화 유적 탐방기를 풀어 보고자한다.
우리의 일정은 이래와 같았다. 시간과 느낌의 흐름에 따라 펜을 들어본다.
가마오름진지동굴-일제강점기 격납고-섯알오름 학살터-산방산-송악산 해안동굴-백조일손지묘-삼의사비-추사적거지-도깨비도로- [1박] -와홀본향당-선흘주민 피신처-다랑쉬 오름-성산 일충봉-해안도로-환해장성-너분숭이 애기무덤-곤홀동 거욱대-관덕정- [2박] -천지연폭포-주상절리-오설록박물관-한림공원
#문화유적탐방 첫째날 ( 6월 22일 )
태풍 디엔무가 무사히 일본으로 비껴가고 비행기는 구름사이를 헤집고 무사히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습하고 해조류 냄새같은 바람은 괜히 코와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재미있으신 우리의 제주 김기사님과 제주 4.3연구소 장윤식선생님의 탑승으로 우리의 모험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간 유적지는 가마오름 진지동굴이였다.
가마오름의 진지동굴은 그동안 제주도내 1백13곳에서 확인된 3백44개 진지동굴 중 총 연장 길이가 1.2㎞로 도내 최대규모이자 태평양전쟁 말기 58군단 사령부 지휘부 주둔지로 추정돼는 곳으로 일제의 침탈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평화박물관에 들어가서 가마오름과 관련된 일제 강점기와 평화 영상을 본후 전시관의 여러 유물과 책자들을 보았다. 동굴 구축용 땅다짐기, 조명기구, 측량기, 카메라, 발동기, 망원경, 소총탄약상자 등과 조선시대 화승총과 일제 때 공출했던 놋그릇, 일본군복 등도 선보였다.
아직도 너무나 새것같은 일제 군복을 보면서 '아직 해방후 50년밖에 되지않았구나~'하고 새삼 가까운 전쟁의 소리를 들었다. 일제의 찬란한 아시아의 철도역들과 창씨개명 책자를 보면서 역사에 수동적인 인간의 비애를 느꼈다.
아직 정부의 미흡한 지원으로 전쟁과 4.3은 제주의 짊어질 십자가가 되어있었다. 평화박물관도 이영근 사장님께서 사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태고 이래로 흘러오는 역사의 큰 물줄기라도 국가에선 읽을 수 없었을까? 정부를 탓하기보다 역사의식이 없고 무관심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캄캄한 진지동굴은 정말 오새와 같았다. 언젠가 베트남전의 땅굴과 휴전선의 땅굴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요세같은 땅굴속에서 헤메고 있는 나를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아직 2.3.4 진지동굴은 발굴이 안된 상태이다. 벽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서 벽에 난 곡괭이 자욱을 넌지시 만져보았다.
다음은 섯알오름 학살터로 차를 돌렸다. 버스가 지나가기에는 좁은 시골의 넓은 감자밭이 알뜨르 평야이고 옛날의 알뜨르비행장이였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본이 제주를 대륙침략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현재 비행장 동북쪽 탄약고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비행장 부대 시설로 만들어진 격납고도 여러군대 남아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감자의 저장고로 쓰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내 최대의 일제시대 군사유적지라 한다.
역사적으로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도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병력 6만-7만여명을 제주도에 주둔시켰다고 하니 당시 제주도인구25만여명에 비하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들이 건설한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을 보면 그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해 볼수 있었다. 가미가제호 조종사들도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연합군이 만일 제주로 상륙하지 않고 이 오키나와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적한 시골길의 감자밭일 뿐이니 역사의 무상함을 느꼈다.
버스에서 내려서 섯알오름에 올랐다. 오름이라기엔 너무 낮은 언덕같은 이곳이 4.3의 흔적지이다. 제주 4.3 항쟁 당시, 1950년 음력 7월 7일, 132명의 무고한 양민이 정부군에 의해 이곳에서 무참히 학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뼈조각하나 안보이고 그냥 깊은 수렁만 보일 뿐이였다. 지금은 쓸쓸히 표지판만이 서 있을 뿐이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과 인생과 웃음을 추억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그저 작디 작은 총알하나가 무고한 생명을 뚫을 수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그들이 애처로울 뿐 이였다. 고 김선일 선생님처럼 무고한 피가 아직 이 땅에 남아서 우리의 역사를 꾸짓고 있다는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백제일손지묘를 가면서 산방산을 보았다. 돔모양의 제주의 오름과는 다른 정말 신성해 보이는 산이였다.
옛날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슴을 향하여 쏜 화살이 잘못하여 옥상황제의 궁둥이를 맞추어 버렸는데 화가난 옥상황제가 손에 잡힌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집어 던진 것이 이곳에 날아와 형성 되었다고 한다. 실제 백롬담과 둘레길이가 비슷하다고 한다. 온통 암벽으로 덮여있어서 금방이라도 앞으로 쏟아질 것아 영기서린 산같았다. 근처의 용이 승천하는 것같은 용머리 해안언덕도 있고 어머니 품같은 송악산도 있어서 산방산 주위 경관은 도화도의 복숭아꽃만 피었다면 정말 무릉도원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올인'과 같이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산인 송악산의 해안진지동굴을 들렀다. 바닷가에 내려가면서 현무암이 풍화되어 생긴 특이한 해안모래를 밟으면서 장난도 쳤다. 퇴적층이 바닷물에 곱게 층층이 해식되어 바람으로 세겨놓은 듯한 바위들. 거기다 화산 활동으로 송송이 버섯처럼 박혀 있는 화산암들은 바위를 더욱 요염하게 만들어서 계속 나의 손이 가게했다.^^해안모래를 밟으면서 해안동굴에 들렀다.
이 동굴은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들이 미공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하여 배/어뢰를 감추기 위해 인공적으로 파놓은 군사용 동굴이다. 빼어난 해안 절벽의 경관에 숭숭 뚫어진 구멍들... 더욱이 그곳이 인간이 만든 최악의 작품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니... 안타갑기만 한다.
백제일손지묘에 들렀다. 백조일손(百祖一孫)'이란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날 한시에 죽어 누구의 시신인지도 모르는 채 같이 무덤도 같고, 제사도 같이 치르니...' '조상이 다른 백여 할아버지가 한날 한시에 죽어 뼈가 엉키었으니 후손들은 마땅히 이 무덤 모두를 자기조상 묘처럼 받들라, 그 자손은 하나다'라는 기막히고 기구한 이름이다.
올해초 광주 5.18 민주화 공원에 들린적이 있다. 비석에 세겨진 부모님과 친구들과 고아원장님의 기구한 편지와 시와 글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었는데 이곳엔 그런 봉헌할 자신의 온전한 몸과 비석도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내 몸이 수많은 시체와 썩어 뼈의 주인도 모를 지경이니 그 영혼들은 얼마나 대한민국(大恨民國)을 한탄할건가....장선생님은 이곳은 5.18같이 공원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훼손없이 보존하겠다고 쓸쓸한 묘지를 둘러보셨다. 군부독재때 깨어진 추모비의 조각을 보면서 또 한번 울었을 영령들의 아픔의 망치소리를 막아줄 역사는 우리의 몫이리라~ 비문의 안타까운 시를 읊어본다.
'송악산 앞 바다는 어제처럼 푸릅니다 산방산 끝에 닿을 절규하던 그 울음이 오늘은 메아리 되어 뼈속까지 스밉니다. 오손도손 모여 앉아 식은 밥 나눠먹던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보며 끌려가던 그 날은 하늘은 온통 오늘처럼 타더이다. 죄 지은자 하나 없고 죄 없는 자만 묻혀 백 서른 둘 뼈가 엉켜 한 자손이 되옵니다 이 설움 시대를 탓하며 옷 소매를 적십니다. 억울한 죽음에도 꽃이 핀다 하더이다 빨간 전설로 피어 새가 운다 하더이다 석류꽃 가슴에 피어 붉게타게 하소서. 진실을 빗돌에 새겨 참 역사를 세웁니다 향 피워 두 손 모아 술잔 가득 따르오니 다 잊고 이 땅을 안아 고이 편히 쉬소서'
대정읍 삼의사비를 들렀다.
삼의사비(三義士碑)는 서기1901년 신축교란(또는 이재수의 난)을 주도하였다가 처형된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 세 장두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정읍 보성리에 세운 것으로 건립
삼의사비는 신축년 농민항쟁의 선봉에 섰던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세 장두를 기리기 위해 봉기의 진원지인 대정읍 안성리 마을 우물터에 세워 놓은 비석이다. 이들은 1901년 당시 봉세관의 가렴주구, 세폐 이와 결합한 천주교 세력들의 횡포 및 교폐에 대항하여 농민군을 이끌고 항쟁을 일으켰다.
삼의사비는 정부에 대항하는 제주도민의 곧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비석도 군사정권시대에 세워졌다고 하며 그 당시엔 대단한 용기였다고 한다. 지금은 옛 비석을 땅에 묻고 더 크게 만들었다. 비석을 보면서 국가의 위정자와 국민의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왜 결론은 평행선 위에 놓여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삼의사비옆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유배지인 추사적거지가 있다
추사 선생님의 유배시 은거하시던 집과 박물관이 소담하게 있다. 박물관을 둘러 보면서 억울하게 유배당한 시대의 문필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았다. 암행어사까지 하면서 옳은 길을 걸었던 위인이 왜 여기서 글을 남기고 세월을 보냈어야했을까... 역사의 굴레바퀴에 작디 작은 문필의 아픔을 독특한 문체를 보면서 그 속에 감추인 생각이나마 읽어보면서 위로를 삼았다.
숙소에 오면서 도깨비도로에서 신기한 현상에 의아해 하기도 했다.분명 내리막인데 오르막처럼 보이니..착시현상같은데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숙소에 들러서 짐을 풀었다. 남자의 비율이 23:7로 열악한관계로 족구과 농구운동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 버렸다. 식사후 조별 토론회를 가졌다. 경북대 학생끼리 학교의 홍보와 학교의 발전방향등을 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서먹서먹하던 분위기는 없어지고 "학생위주의 홈페이지만들자. 전광판만들자 동문과 기업체 후원받자"하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화기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토론은 속전속결, 게임도 잠깐했다. 공개 발표회에서 3조는 홍보와 관련된 연기도하면서 치열한 경쟁상대였던 4조의 정치적 성향의 장호형과 당당히 1위를 함으로 문화상품권을 나누어 가졌다. 외진 호텔에서 이야기도하고 게임도 하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문화유적탐방 둘째날 ( 6월 23일 )
성산일출봉팀이 새벽아침에 성산을 등산했었다. 물론 날씨 탓에 맑은 해는 보지 못했지만 학생들의 모험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오늘은 4.3의 절절한 사연들을 파헤치기에 일정이 빠듯했다. 긴 바지에 전등 무슨 일이 일어날지 더운 날씨에 마냥 설레기만 하다.
4.3의 유적지답사에 앞서 선사의 전설을 안고 있는 와흘 본향단에 들렀다. 창조신화가 세계적으로 드물지만 창조의 전설을 담고 있는 와흘리의 400된 팽나무 숲을 방문했다.
와흘 본행단에는 반지의 제왕에 나왔던 거대한 나무인 신목이 서있는데 아주 장엄하고 신성해 보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나무가 있었다니 나무줄기의 흐름은 용이 휘감듯이 멋진 자태가 과연 신목다웠다.
신목은 오색찬란한 비단으로 꾸며져있어 성스러워 보였다. 거센 역사의 풍파에도 제주의 신앙은 든든히 서있어서 아픔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숲같았다.
본향단을 지나 선흘리의 목시물굴에 들렀다. 제주 4.3피난현장으로 4.3당시 죽임의 광기를 피해 피신했다가 숨어들었던 굴이 발각되어 학살당한 굴이다.
굴속을 들어간다고 하시길래 두리번거리면서 튀어나온 돌을 찿았는데 땅속에 감추인 땅굴로 들어가실 줄이야~ 한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굴의 입구를 지날 때 비명소리가 안팎에서 들려왔다. 정말 굴은 어둡고 거칠었다. 어두컴컴한 굴속은 안은 꽤 넓었다. 이곳에서 한 200명정도가 모여 살았다니...
촛불을 들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굴의 중앙에 다다랐을 때 아기 고무신과 여러 생활품들이 보였다. "불을 끕시다." 장선생님께서 그 때의 주민들의 심정을 느껴보자면서 불을 끄라고 했다. 깜깜한 어두움 정말 창세전의 흑암이 뒤덮었던 그때처럼 굴속 주민들의 미래와 희망은 이보다 더 어둡고 서글펐으리라. "악~뭐 지나갔어"그런 마음을 이해나 하는지 몇초도 안되서 비명소리와 불켜라고 아우성들이다. 나의 삶에 그때 이곳에서처럼 그런 참담한 절망과 죽음의 공포가 있을까? 정말 행복한 나는 더 열심히 살아가야할 사명감을 느꼈다.
제주도는 오름의 고향이다. 호주나 유럽평야의 언덕을 오르는 것 같은 오름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아기자기하게도 모여서 서로 속삭이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묵묵히 참아왔던 오름을 생각하면 오를 때 결코 마음편하게 오를 수없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랑쇠오름도 다랑쇠굴과 함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곳이다. 지난 1992년 제주 중산간 지역의 작은 동굴에서 4·3 당시 희생된 주민 11명의 유골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11명의 유골이 발견된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과 부근에 있는 다랑쉬오름은 오늘의 4·3 현장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유적지이다.
더운 날씨에도 산을 보면 정상에 서는 성미라 제일 먼저 정상에 올라 오름을 한바퀴돌아보았다. 오르면서 흘렀던 땀 때문에 정상의 바람과 풍경은 더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의 고향인 창녕의 화왕산의 갈대숲을 온 것같은 화산오름의 구릉지는 아주 포근했다. 오름을 돌아나가는 바람에 춤을 추는 풀들.. 멀리서 있지만 가까이서 내 귀에 속삭이는 듯한 햇볕을 품은 오름들 가족들.. 멀리 보이는 바닷가의 모습들.. 정말 자연의 절묘한 구도와 나를 향한 배려에 '여기다 정자하나 짓고 눌러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시원한 해안도로를 따라서 드라이브를 했다. 고려 삼별초항쟁을 했던 환해장성의 성벽들도 보고 만리잔성보다 긴 밧담과 주위의 작은 섬들도 보았다. 그리고 4.3의 남은 유적지들을 차례로 들렀다.
너분숭이 애기무덤은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 있다. 해안마을인데도, 4.3 당시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곳이다. 흔히 ‘북촌사건’ 내지는 ‘너분숭이사건’이라 말한다. 1948년 1월 17일과 18일에 발생한 사건으로 군경토벌대는 마을 주민들을 북촌초교에 집결시켜놓고 차례로 이곳으로 끌고 와 총살시킨 것이다. 무려 320명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은 밭이었고, 지금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곤흘동 사라진 마을의 옛터도 방문했다. 바닷가에는 거욱대를 세워서 재앙을 막고 제를 올리기도 한다고 한다. 저기 보이는 마을의 담과 문들이 마을이였다니..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가 정답게 살았을 마을이라니 좀처럼 와 닿지 않았다. 이렇게 제주에서 사라진 마을이 77개나 된다고 한다. 참 한이 서린 섬인 것 같다. 작은 손가락의 상처의 말다툼의 상처도 죽을 때까지 남는 법인데 역사의 아픔에도 이렇게 당당하게 살고 있는 제주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관덕정이라는 옛 관아에 들렀다. 이 곳이 4.3의 처음과 끝을 맺는 곳이라고 한다. 사소한 생각의 차이가 이념의 차이를 만들고, 이념의 차이가 역사의 차이를 만들어 버린 아픔에 대해 씁쓸했다. 고문하는 기구에서 곤장도 때리고 주리도 틀어보면서 장난도 쳤지만, 4.3 항쟁의 시작과 끝을 위정자들이 이곳에서 활약을 했지 않았겠는가.
#문화유적탐방 셋째날 ( 6월 24일 )
마지막 여정인 오늘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관광시간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왔다. 올라오는 장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로운 제주 자연탐방은 즐겁게 시작되었다. 천지연 폭포를 들러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힘찬 물줄기를 보았다. 비가 와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정도까지의 경관을 느끼진 못했지만 오르는 길에 사랑에 대해 논하는 시가 적흰 나룻배가 기억에 새삼 남는다. '뜨거운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이 였다. 그때는 감명을 받았는데 인생의 기억이 이렇게 약할 줄이야~ 정답고 멋졌던 제주의 풍경과 느낌, 추억들도 시간과 함께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
대포동 바닷가에 들러 흰 파도에 부서지는 육각형의 주상절리를 보았다. 총소리로 얼룩진 제주의 역사처럼 구멍이 숭숭난 현무암 바위들.. 그런 빈 마음을 들고 바위들은 멋진 육각형의 조화를 만든다. 바닷물이 위로라도 하듯 시원스레 바위의 구석구멍까지 씻어주고 하얗게 부서진다. 이 구멍난 제주의 현무암같은 역사를 누가 이 바닷물처럼 씻어줄까.. 역사의 녹이 구멍사이에 안기전에 하루빨리 제주의 치유와 탐라의 제건을 꿈꾼다.
잠시 오설록에 들러 자연 속의 녹차 밭도 거닐어보았다. 병풍 속의 작은 새같이 푸르름이 마냥 좋았다.
제주만의 독특한 한림공원을 방문했다. 코끼리발바닥같은 크기의 야자수와 희귀한 선인장과 나무향내들 때문에 눈 운동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잘 가꾸어진 분재와 석재들도 "저게 150년이야?" 할 정도로 정제된 아름다움이 흐르고 있었다. 안개속을 뚫고 시원한 화산 동굴속을 지나가는 것도 신비한 느낌이다. 아쉬운 건 비 내리는 날씨 덕에 해수욕을 안 한게 미련에 남는다. 제주의 송악산자락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몸 한번 못 담가본 것이 후회가 된다. 압록강에 갔을 땐 이때 안 담가보면 언제 담가보랴 하고 팬티바람에 친구들과 압록강서 수영한 것이 너무 뿌듯했는데..바람결에 묻어오는 제주의 미역바람이 더 내 몸을 부르는 것 같다.
이로써 제주의 경북대 여름 문화탐방이 끝나고 비행기는 바다를 건너 일상의 내륙에 도착했다.
한 나라안의 이방섬에서 임한 며칠 간의 문화기행은 색다른 느낌과 추억을 그렸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비경들에 눈이 놀라기도 했지만, 그 속에 파묻혀 있는 역사의 상처와 추억들에 마음이 놀라기도 했다. 이번 여행이 나의 인생에서 작으마한 역사의식을 깨웠으리라.
2년전에 중국 류하 삼원포에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국토의 정상 백두산을 보면서 장엄함과 민족의 정기를 느끼기도 했고, 압록강 녁의 북한주민의 모습에 마음 아파도 했었다. 그때 헐벗은 북한의 산봉우리를 보면서 다짐했었다. '그들은 우리의 핏줄이고 가족이기에 통일을 이루면 북한에 가서 북한을 내 가족같이 품어보겠다고.'
지금은 국토의 남단 끝에 와있다. 오름들의 정겨운 속삭임과 하얀 파도의 돌림노래는 아무 일도 없는 전원의 자연인 듯 들린다. 하지만 총부리를 겨누던 북한의 북경선 같은 흔적이 왜 이리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건지. 눈에 보이는 과학과 물질이 판치는 요즘이지만 내 마음에서 역사에 대한 의식이 요동치는 것은 그때와 일반이다. 나쁜 사람은 나뿐 인 사람이라 했던가?.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개인적 이기적 야망만을 위한 삶보다 역사에 대한 소명을 가진 삶을 살고 싶다. 상생과 윈윈(WIN_WIN)전략이 요구되는 역사의 배경엔 그런 타인을 향한 열린 일꾼이 필요함을 반증함이 아닐까?
역사는 과거이기에 그것에 얽매여 울고 살순 없다. 하지만 역사는 스승이라 했던가. 돌아보면 옛 사람들과 같은 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사는 많은 길들을 예시해 주는 거울일 것이다. 우리도 넓다고만 생각하고 무지하게 걷었던 길이 첩경이 아님을 새삼스레 깨닫는 것을 보지 않는가. 또한 4.3의 항쟁을 돌아보면서 현실의 성실함 못지 않게 과거를 돌아보는 성찰의 중요성도 배웠다. '말과 혀로 아닌 행함으로 이루는 것이 역사다'란 것도 뼈저리게 느낀다. 멋진 다랑쉬 오름과 해안절벽의 비경이 아직 눈에 아른거려 눈을 감고 싶지만, 4.3 피난굴의 어두움에 눈을 뜨고 싶기도 하다. '보는 눈은 즐거웠으나 들어온 마음은 아팠던' 몸과 마음에 의미 있는 탐방기였다.
하지만 자연과 역사와 젊음이 함께 어우러진 즐거운 추억이였음을 선택받은 자들은 흐뭇해 할 것이다.
여름문화탐방 여러분 모두들 수고했습니다~^^.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진실을 마음에 새겨 참 역사를 세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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