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를 씹다
-박원주-
어머님이 다듬어주시던 멍게만 삼키다
이제사 내가 멍게란 걸 다음어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멍게란 자가 보인다
도깨비같이 뿔이 두개인데 뿔은 아니요
하나는 입이고 하나는 출구란다
하나는 십자(+)고 하나는 일자(ㅡ)란다
출입을 구별하고자 표식을 달아두고서
폭발물 해체작업처럼
출입을 구별해 잘라라 한다
험난한 몸뚱이는 험난한 삶을 버리고
악착같은 뿌리는 악착같던 생을 버리고
과일 속 과즙에만 관심이 있는 내 앞에 놓여
내 삶을 봐주십사
내 생을 봐주십사
잠깐의 머뭇거림을 기대하며
마지막 작별을 도마에서 묵묵히 펼치고 있다
사소한 생도 생을 견딘 역사가 있구나
존재를 버리는 것도 떠나보내는 절차가 있구나
약육강식의 삶에도 가공이란 노동이 있구나
식욕과 노동의 등가교환도 부가가치가 있구나
해체되어 뻐끔되는 의미의 분자들에
칼은 든 내가 사뭇 놀란다
멍게는 나에게 바다를 주고 떠났다
그러나 잠깐의 음미를 거치고서 나는,
멍게의 생을 잊었다
다시 생생한 바다를 만나고자 나는,
바다의 맛을 잊었다
#멍게 #손질
*어제 남은 멍게를 오늘 손질해서 먹었는데 죽은 줄 알았던 멍게가 살아나 많은 고심이 됐다
'비타민 시++ > 옴니버스연습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쉿! 앞담홥니다 -21.11.23(화) (0) | 2021.11.23 |
---|---|
가을이 가는 문턱 -21.11.22.(월) (0) | 2021.11.22 |
두드러기 힌트 -21.11.20.(토) (0) | 2021.11.20 |
누구의 일인가? -21.11.19.(금) (0) | 2021.11.19 |
한낮 포옹 -21.11.18.(목) (0) | 2021.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