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πr::나란점들의모임/내인생퇴고록

응답하라! 2015! (@서울역 후암동)

별신성 2016. 2. 26. 02:16

간만에 서울역 출장. 회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호텔을 잡고선 바로 남산을 올랐다. 대구에서 올라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역 후암동에 살면서 마음이 울적할때나 심심할 때나 주구장창 올랐던 동네 뒷산 남산. 지금은 공사로 기존 길이 바뀐 걸 빼고는 모든게 다 그대로였다. 다른 거라곤 이방인이 되어 우두커니 서있는 나뿐.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를 응얼대며 정상을 오를 때의 후련함은 여전하네. 휘황찬란한 저 서울시내를 바라보며 내것인양 야호를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야심한 밤인지라 메아리는 맘에만 덤아두고 유유히 일상으로 내려왔다. 뜬금없이 소월길을 걷다보니 이전에 살던 골목이 그리운지 발길은 어느새 후암동을 걷고 있었다.
내가 가래떡을 사먹던 떡방앗간, 리모델링 됐지만 한결같은 시장, 그 좁은 골목, 원룸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다만 내가 중고로 구매한 작은 냉장고만 버려진건지 덩그러니 밖으로 나와있을뿐. 좁은 골목을 걷다 문득 눈앞에 마주친 목련. 매일 아침 수영장을 지나가며 정들었던 그 목련. 목련은 매년 봄 하햫게 골목을 수놓았던 그대로 올해도 어느덧 또 새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마다 목련이 필때면 감격에 겨워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는데 올해는 추억을 못찍어서 좀 아쉽네. 좁은 골목을 거닐다보니 응팔의 마지막 장면같은 쓸쓸함이 갑자기 밀려왔다. 아마도 그건 내 삶의 빈자리를 언젠가 누군가에게 미련없이 내줘야하는 복선 때문이겠지. 아 그렇게 나의 봄은 다시 왔지만 나는 원래의 그곳에 없었다. 익숙함을 비우고는 어느새 다른 위치로 옮겨져버린 나. 흐르는 시간처럼 흐르는 장소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늙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존재들로 북적대던 대지도 드넓은 지평선을 누군가에게 안겨 주려면 조금씩 자신을 비워가야겠지. 언젠간 나의 빈자리가 누군가에게 드넓은 지평선이 되길 바라며.. 난 다시 정든 곳을 박차고 일어나 다시 외진 이방인의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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