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시++ /추억의습작들('08) 27

2πr[4] 소풍(逍風)-바람과 거닐다

소풍(逍風)-바람과 거닐다 박원주 바람을 따라 오솔길 따라 풍경 속 이정표에 잠자던 더듬이를 세운다. 끝없는 들녘 길은 촘촘히 풍경들이 채워져 있고 나의 산책을 기다린 듯이 간직했던 이야기를 읊어다 준다. 부드러운 흙 비늘을 손을 대어 쓰다듬자 드넓은 들판 그림 속으로 나는 스미어 사라져 버린다. 지나던 연근 동굴 속에 잠자던 연꽃 깨워보고 굵은 대추나무 허리에 시간의 껍데기도 붙여 본다. 햇살에 마당 뛰노는 흰 강아지 남매들도 강물 속 발 잠그고 물장구치는 물오리들도 거니는 낮선 시선에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담 없이 빨랫줄에 걸린 부끄럼없는 아주머니 옷은 미리부터 봄꽃무늬를 피워 걸어 놓았다. 길 저 끝에서 익숙한 풍경이 나를 불러도 다시금 되돌아와야 하는 발걸음의 연어들. 이제는 바람만이 들..

2πr[3] 눈(目)의 잎(口)

눈(目)의 잎(口) 박원주 찬란한 우주아래 거침없이 햇살이 하늘을 투과한다. 인간의 잎들은 보이지 않는 빛을 눈부시게 먹는다. 빛들은 몸에 스미어 까만 붓을 들고선 반대편에 조그만 밤을 그리어 놓는다. 빛 속에 숨겨진 풍성한 먹거리. 먹기 싫은 색은 반사되고 저마다의 잎 속으로 골고루 먹혀진다. 푸른색을 싫어하는 푸른 나뭇잎 푸른색을 좋아하는 붉은 장미꽃 흙에서 태어난 나는 흙과 같은 식성을 가지고 있다. 낮 동안의 따스한 포만감에 태양은 저물어 가고 둥근 지구의 그림자를 덮고 우리는 고대하던 잠이 든다. 잠은 빛들을 소화시켜 꿈을 만든다. 꿈들은 내일의 태양을 맞을 찬란한 여린 잎들을 피어내고 있다

2πr[2] 이력의 書

이력의 書 박원주 태어나 살아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세상은 이력을 쓰라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자취. 인생을 적어가는 기대 반 두려움으로 문제 풀듯 주관식란을 채워 나간다 이름, 성별, 주소, 전화번호 누구나 채울 수 있는 조각난 항목들. 의미없는 테트리스처럼 채워져 나간다 그적이며 적어가던 연필의 속도는 느려지다 고민하다 어느새 멈추어 선다 종이가 연필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알 수 없이 일어나는 분노의 쓰나미 내 인생이 이렇게 단순히 적혀진단 말인가 몇 글자 서술에 무너져 내리는 내 자존심. 흘러간 역사들조차 년대별로 치장되어 장구한 실크로드를 멋드러지게 쓰는데 하물며 생생히 걸어가는 내 발자취는 지렁이 길 희미하게 자취만이 남아 있다 파라솔이 펼쳐진 프라하의 찻집. 그 위를 흘러가는 흰 구름 ..

2πr[1] 먼지를 돌아보며

먼지를 돌아보며 박원주 어제와 동일한 계단을 오르다 수북이 쌓인 먼지 인사에 깜짝 놀란다. 휴지처럼 외면당한 채 목화꽃을 피우곤 검은 솜을 덮어쓰고 응달에 앉아 구시렁댄다. 무관심 속에 닳아 버린 나의 그림자. 내 앞길 속에 묻혀 져간 나의 뒷모습. 이제부턴 사분사분 너 닳지 않도록 조심해서 인생길 오르마 다짐을 한다. 빛 밝은 마당가에 먼지를 털며 헤어진 내 그림자 꿰매어 본다.

[고2詩] 추상실험

추상실험 박원주 “있소, 당신에겐 힘이 있단 말이오.” 두뇌 속 바다를 넓히고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앗! 잘못된 사고 -내가 언젠가 안중근의 손가락을 하나 더 자른 그 피가 아직도 나를 꾸짖는 무지의 사고-를 자유 여신의 청동 횃불에 던지려오 그리고 은하수 빗물을 떠다 부으리다. “있소, 당신에겐 힘이 있단 말이오.” 두뇌 속 바다를 넓히고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을 힘이 당신에게 있단 말이오. 썩은 두뇌의 고뇌를 뜨거운 바다에 쏟아 부어 삐뚫어진 지구축을 바로 잡을 용기가 당신에게 있단 말이오.

[고1詩] 뇌사(COMA)

뇌사(COMA) 박원주 사고의 회로가 끊어지려는 찰나에 고요한 수평선처럼 나의 뇌리에 진리가 여명을 뿌리며 다가선다 자서전을 펴들고 나의 미래를 관할한다면 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어야 하며 왜 어떤 존재는 또 다른 존재에 의해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有...무한의 자문, 無...유한의 공간. 제2세상의 법칙들이 무서운 압력같이 내 진실을 마취시킨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그 속에 존재하고 그 공간을 떠나버리려 시도할 때 그 힘은 내 존재를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난 단지, 아주 여린 살로 그 강철을 뚫어야겠지 허나, 뇌사에 빠져 무중력의 상태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진리-그 분과 황혼역의 그 섬에서 연인과 별과 함께 거니는 젊은 시의 청년과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를 얻기 위해 내 있는 힘을 다해 그의..

[고1詩] 여기선

여기선 박원주 나는 철학자요, 시인이란 대명제를 걸고 견강부회의 진모리, 자진모리를 마구 울린다 나는 나는 신이 나서 산허리 들쳐 메고 홍해 한번 갈랐다가 어느 날 문득 어떤 원인의 화살 -데카르트의 제1명제를 흔들-을 맞고 나는 앓았다. 오랜 시간을. 그러나 나는 한 시인이란 대명제를 걸고 비유를 써서 나를 의사가 되게 했다 직유로써 '훌륭하다'는 지나친 수식을 붙여 보았고 은유를 통해 그것을 합리화하려 애썼다 하지만 나는 반어를 몰랐다 의사가 자신을 치료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말이다 현실은 그 강한 힘으로 은유 아닌 은유로 나를 문둥이로 만들어 버리곤 낮선 외딴 곳에 던져 버렸다 나는 힘을 잃은 고독의 시인이 된다. 허나,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우발적인 역설의 혼. 상처받은 영혼들에 들려줄 고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