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逍風)-바람과 거닐다
박원주
바람을 따라 오솔길 따라
풍경 속 이정표에 잠자던 더듬이를 세운다.
끝없는 들녘 길은 촘촘히 풍경들이 채워져 있고
나의 산책을 기다린 듯이 간직했던 이야기를 읊어다 준다.
부드러운 흙 비늘을 손을 대어 쓰다듬자
드넓은 들판 그림 속으로 나는 스미어 사라져 버린다.
지나던 연근 동굴 속에 잠자던 연꽃 깨워보고
굵은 대추나무 허리에 시간의 껍데기도 붙여 본다.
햇살에 마당 뛰노는 흰 강아지 남매들도
강물 속 발 잠그고 물장구치는 물오리들도
거니는 낮선 시선에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담 없이 빨랫줄에 걸린 부끄럼없는 아주머니 옷은
미리부터 봄꽃무늬를 피워 걸어 놓았다.
길 저 끝에서 익숙한 풍경이 나를 불러도
다시금 되돌아와야 하는 발걸음의 연어들.
이제는 바람만이 들녘에 남아
못다 거닌 걸음을 따라 외로이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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