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의 書
박원주
태어나 살아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세상은 이력을 쓰라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자취.
인생을 적어가는 기대 반 두려움으로
문제 풀듯 주관식란을 채워 나간다
이름, 성별, 주소, 전화번호
누구나 채울 수 있는 조각난 항목들.
의미없는 테트리스처럼 채워져 나간다
그적이며 적어가던 연필의 속도는
느려지다 고민하다 어느새 멈추어 선다
종이가 연필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알 수 없이 일어나는 분노의 쓰나미
내 인생이 이렇게 단순히 적혀진단 말인가
몇 글자 서술에 무너져 내리는 내 자존심.
흘러간 역사들조차 년대별로 치장되어
장구한 실크로드를 멋드러지게 쓰는데
하물며 생생히 걸어가는 내 발자취는
지렁이 길 희미하게 자취만이 남아 있다
파라솔이 펼쳐진 프라하의 찻집.
그 위를 흘러가는 흰 구름 조각같이
고풍스런 내 자취를 남기어 놓고 싶은데
글자의 두께만큼 가녀린 인생을 새기느라
이력서 종이가 시름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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